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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정세는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과 무차별적인 관세정책은 정치, 경제, 그리고 동맹 등 거의 모든 분야와 영역에 걸쳐 기존 국제질서의 급격한 재편을 추동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유럽연합은 치열한 세력 경쟁을 펼치면서도 상황과 쟁점에 따라 협조가 동반되는 강대국 외교 정치를 구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주요 국가들은 약소국의 이익이 희생될 수 있는 강대국의 협조에 대비하여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하면서도 강대국들의 상호 경쟁을 활용하여 국익을 증진하기 위한 탄력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외교 안보 정책을 꾀하고 있다.

강대국의 시대와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하는 자강의 시대가 중첩되고 병존하는 오늘날의 국제정세에서 명분과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상황 변화에 유연하며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외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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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국익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외교는 오늘날 국제정세의 흐름에 부합한다. 특히, 국익과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외교는 거센 외풍을 헤쳐 나가는 이재명 정부의 튼튼한 바람막이 외투이자 진짜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대외정책의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참고로, 지난 이명박 정부의 성숙한 세계국가에서 제시한 창조적 실용주의는 대미 의존 지향의 편승 외교로 일괄하여 상황 변화에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강조한 창조적 실용주의는 위선적이고 개념을 오용한 가짜 실용주의 외교에 지나지 않았다.

실용주의 외교의 철학적 기반은 미국에서 탄생하고 발전한 실용주의(Pragmatism)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실용주의 사고의 기본 원칙은 인간 사회가 직면한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에 집중하면서 이를 분석하고 문제 해결을 지향한다. 실용주의 관점에서 현실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불확실해서 새로운 증거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물론, 신념이 종종 필수적 역할을 한다고 믿지만 실용주의 철학은 가장 유용하고 신뢰할 수 있는 준거로 경험을 중시한다. 또한 실용주의 관점에서 변화는 원래 본성적인 것이지만 그러한 변화는 인간 사회의 퇴보가 아니라 진보를 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 행동의 모든 영역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 실용주의는 능동적인 실천을 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실용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실용주의 외교는 다원주의 세계를 강조한다. 어떤 특정의 이론 체계만으로는 세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어 탈이념을 지향한다. 실용주의 외교는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혼합하여 이념적 유연성과 탄력성을 중시하고 목표 달성을 지향한다. 또한 현재 및 미래 외교 문제 해결 지침으로 경험을 중시한다. 경험은 다양한 믿음의 효용성을 결정하는 최선이자 유일한 준거 기준임을 강조한다. 즉,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각에 있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주의가 힘과 안보, 자유주의는 상호 의존과 국가 간의 관계, 그리고 구성주의가 사회적 관계와 정체성을 강조한다면, 실용주의는 경험에 기초한 문제 해결과 진보적 변화를 강조한다.

또한 실용주의 외교는 진화적 변화와 점증주의를 선호하고 혁명적이고 급격한 변화나 현상 유지 를 지양한다. 실용주의 외교는 변화하는 환경에 끊임없는 적응 과정을 중시한다. 이런 점에서 때때로 실용주의 외교는 기회주의나 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나 이는 일관되고 고정된 이론 체계를 거부하는 실용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실용 외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아가 실용주의 외교는 외교 정책의 목표와 수단의 연속체를 강조한다. 즉, 실용주의 외교는 외교 정책 목표와 수단을 구분하는 것에 회의적이며 정책 목표와 수단 간의 조화를 중시하고 무한정의 외교 정책 목표를 경계한다. 특히, 실용주의 외교는 국가의 외교 목표는 매우 다양한 원천에서 파생되며, 이는 항상 논리적으로 일관되거나 양립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실용주의 외교는 현실주의의 기본 원칙인 국가 안보에도 지대한 관심을 둔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가이익이다. 즉, 국익은 중요도와 시급성에 따라 우선순위에 따른 등급이 매겨진다. 일반적으로 국익의 등급은 사활적(핵심적) 국익, 중요한 국익, 그리고 일반적 국익 등으로 구분된다. 이재명 정부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사활적 국익은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 수호와 국민통합,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다. 대외적으로는 주권과 영토 수호, 평화로운 한반도 수호와 선린의 이웃 관계를 구축하는 걸로 설정할 수 있다.

강대국의 시대와 자강의 시대가 중첩되고 병존하는 시대 상황에서 실용 외교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기능하기 위해서는 주권자인 국민의 바람과 의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이를 국가 의지로 표출시킬 수 있는 새로운 외교 안보 정체성 구성이 필요하다. 외교 안보 정체성은 국제무대에서 안보 행위자로서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조직하고 정의하며, 대외정책 관련 목표와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 인가의 문제이다. 한 나라의 외교 안보 정체성은 국제관계에서 그 국가의 존재 이유, 국가 위상과 국격, 그리고 국가의 대외정책 방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외교 안보 패러다임의 정수이자 전략의 핵심적 요소이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중추의 외교 안보 정체성을 근간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진짜 중추 국가 대한민국의 국가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 중추란 사물의 중심이 되는 자리 또는 핵심 부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추의 전략적 함의는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개척해 나가겠다는 자기결정의 원칙이다. 따라서 중추 국가는 스스로가 중심을 잡고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하는 가운데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외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국익을 증진하고 동맹 협력을 강화하더라도 지나치게 강대국에 의존하는 것은 지양한다.

지난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대외정책 기조로 내세웠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라는 강대국 진영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전략적 자율성은 고사하고 그나마 갖고 있던 세계적 중견국이라는 한국의 위상과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글로벌 중추 국가는 중추 국가 개념의 오용이자 가짜의 위선적 중추 국가였다. 지구상의 어떤 중추 국가도 자신의 자율성을 져버리고 기꺼이 강대국에 편입한 나라는 없다.

2025년 6월 4일 국민주권 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통해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 대전환의 위기를 국익 극대화의 기회로 만들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점을 피력했다. 현실의 국제정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국익 중심 실용 외교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효용성을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중시해야 한다.

한반도와 동북아 주변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용쟁호투 양상의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강대국 경쟁 구도에서 우리의 외교 안보의 초점과 무게중심은 미국이냐 중국이냐, 전략적 모호성, 혹은 전략적 명확성의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 관계와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자강 부분을 어떻게 가져갈 것 인가에 놓여져야 한다. 즉,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핵심적 관건은 강대국 관계와 자강의 요소를 어떤 비율로 어떻게 배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전략적 고민과 판단은 이재명 정부의 안보 동맹 정책에서 가장 중요하다. 굳건한 한미동맹이 외교의 기본 축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정책과 변화된 안보 환경을 반영하여 안보 자율성을 강화하는 가운데 동맹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역대 정부가 습관처럼 해온 것처럼,단순히 군사력 위주의 동맹 강화가 아니라 동맹의 정책 협의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동맹의 호혜성을 키워 우리의 안보 자율성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동맹의 호혜성은 한미 양국의 고유한 국익을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상황에 따른 동맹이익의 영역과 종류에 대한 활발한 협의를 통해 호혜적이고 건강한 동맹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특히, 군사력 중심의 한미동맹 강화를 무조건적 국익으로 인식하고, 한반도 역외 군사 분쟁에 참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는 국익의 무리한 확장이자 능력과 관여(수단) 간의 불일치로 알려진 리프만 격차(Lippmann Gap)라는 강대국 외교 정책의 고질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최적화를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고 또한 경계해야 한다.

국민주권을 존중하고 진짜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이재명 정부가 이제 막 출범했다. 출범하자마자 외교 안보 진용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이재명 정부는 6월 15~17일 캐나다 G7 다자 정상회담에 첫 외교 무대를 밟게 되었다. 비록 출범 이후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이지만, 이재명 정부가 국익 중심 실용 외교로 이번 G7 다자 정상회담을 무난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길 기대하고 또한 기원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강대국의 시대와 자강의 시대가 병존하는 현재의 국제정세에서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진짜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대외정책의 튼튼한 초석이 되어야 한다. 이번 G7 정상회담이 그 길을 여는 성공적 첫 여정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수형씨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입니다.


#국익중심실용외교#중추의안보정체성#대외정책의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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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soophd) 내방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박사 평화재단 연구위원 글로벌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역임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역임 노무현 정부 통일외교안보정책실 행정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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