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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rito de Ol IG: @herib3rto ⓒ herib3rto on Unsplash
구순의 어머님은 이제는 노환으로 큰 병원과 요양 병원을 오가며 지내시는 처지가 되셨다. 이제는 기저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생활하셔야 하는 처지임에도 가끔 간병사 분들의 대우가 당신 뜻에 맞지 않으실 때면 역정을 내시곤 한다. 그 역정의 근간에는 내가 누구인데 당신들이 나를 이렇게 대우하느냐 하는 노여움이 담겨 있다.
'내가 누구인데'의 그 누구라 함은 그 시절에 대학을 나오고, 학교 선생님을 하셨다는 의기양양한 자부심, 꺾일 수 없는 자존심 같은 것들이다. 어머님이 그런 모습을 보이시면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데 싶어 면구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60 고개 언덕을 넘노라니 그 어머님의 '내가 누구인데'가 남의 얘기가 아니었음이 깨달아진다.
홀로 되어 빵집 알바를 시작할 때만 해도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시절이 시절이라고, 그 알바 자리도 녹록지 않아졌을 때 나는 지난 시절 내가 살아왔던 이력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았다. 오랫동안 독서 논술 교사를 해왔던 경험,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간들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배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그리고 비록 산 넘고 물 건너였지만 군부대 장병들과 책을 매개로 만날 수도 있었다. 뒤늦게 배운 그림책으로 성인 인문학 수업도 해보았다. 꾸준하게 이어왔던 나의 시간들이 이렇게 보답받을 수도 있구나 하고 스스로 감동했던 시간이었다.
환갑을 넘기고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그런데 요즘은 늙은 축에 끼지도 않아 잔치도 안 한다는 환갑을 넘기고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환갑 잔치 대신 아이들과 함께 멀리 여행을 다녀온 기쁨도 잠시, 이곳 저곳 강좌에 내놓았던 이력서가 다 퇴짜를 맞는 낭패를 겪었다. 내 이력의 일천함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더 절감하게 된 것은 '연세'가 된 내 나이였다.
물론 기존에 해오던 지역아동센터나, 가족센터에서 하던 저소득층 학생 지도는 계속할 수는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을 보완해오던 다른 수업들이 날아가자, 그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일은 노년의 호구지책을 다 감당해 줄만하지는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 것이다.
여행을 가기 얼마 전부터 어금니가 아팠다. 흔들릴 정도로 아팠다. 진통제를 먹고, 잇몸 치약으로 달랬지만 이제는 그 치아들을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알아보니 임플란트 한 대 값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잇몸 이식까지 한다면 돈 백 만원은 훌쩍 넘긴다 했다.
이런 식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나잇값을 하는 것들이 생긴다. 고지혈증 약을 먹기 시작했고, 병원에 갈 때마다 당뇨 경계인임을 자각시켜 주었다. 그저 먹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을 터인데, 노년의 시간에는 무임승차하는 객들이 자꾸 늘어난다. 친구는 임플란트 대신 값 싼 틀니를 하겠다는데 그게 어디 맘처럼 그렇게 되냐는 말이다.
그러니 일 년에 삼 분의 일은 놀고 먹어야 하는 일에만 노년의 호구지책을 맡길 수 없는 처지다. 그래도 아직 그 일들을 놓지 못한 채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급한 마음에 알바를 나가보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빵집 알바 하던 때 이곳 저곳 몸 고생 하는 것을 봐서 질색했지만, 답답한 마음을 덜어주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마음이야 구직 사이트에 올라오는 이러저러한 알바를 다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거기에서도 '연세'가 발목을 잡았다. 요즘 제일 인기 있는 알바라는, 쿠* 포장 알바를 신청했는데 나이 제한에 걸렸다. 카페 알바는 언감생심, 식당 알바는 물론,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그럴 듯한 알바들도 마지노선이 50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화장품이나 빵 포장 같은 것들이었다.
새로운 노년의 답안지를 받아들다
그런데 레깅스에 박카스로 중무장하고 나섰던 알바의 시간들을 지내며 나는 노년의 또 다른 답안지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기본 일당 8만 원. 누군가에게는 코웃음을 칠 돈일지도 모르겠지만, 노년의 내 한 몸 보살피기에는 기꺼운 금액이다 싶었다. 거기에 비록 길거리에 나서면 할머니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제공하는 공짜 차비를 비웃을 만큼 그곳에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현역으로 자리매김하는 '어르신'들 또한 존재한다.
굳이 알바가 아니더라도 찾다 보면, '노익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에는 내가 넘어서야 할 관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구순의 어머님도 놓지 못하시는 바로 그 '내가 누구인데'이다.
<타짜>에서 김혜수가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하듯이, 내게도 그런 마음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음이 깨달았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왔고, 나름 '인텔리'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부여잡고 있는 내 자신이 거울처럼 비쳐진 것이다. 빵집 알바를 하건, 화장품 알바를 하건, 그건 알바이고, 책을 읽고, 코칭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정체성으로 삼아 몇 십 년을 살아온 내 자신 말이다.
어쩌면 내가 60 고개 언덕을 힘겹게 오르며 놓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은 바로 그게 아닐까 싶었다. 나 뿐 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세대 많은 이들이 대학을 나와 저마다의 직업을 가지고 그 정체성으로 몇 십 년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퇴직을 하고, 환갑을 맞이하여 길게 드리워진 노년의 길 앞에서 저마다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제 오랜 시간 내가 입었던, 이제는 낡아버린 옷을 벗는 게 두려워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계속 자신의 그 정체성으로 나머지 삶도 이어갈 수 있으면 그 또한 복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한 사람들이면 대부분 정년을 맞이하여 한 사이클의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독서 코칭 수업이 아쉬웠고, 그림책 인문학 수업을 아직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어디 나 뿐일까.
아쉽기도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열일했던 그 시간이 늦가을의 화려한 단풍처럼 '서강대 나온 여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물이라 여기자고 마음 먹어 보았다. 지난 몇 십 년간 '인텔리'로 살아온 삶을 내려놓은 채 또 다른 선택을 하는 그곳에 또 어떤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를 일이다. 그저 알지 못하는 길을 선택하는 두려움이 지나왔던 모든 것들을 움켜쥐게 만드는 것일지도.
이제 홀가분하게 노년의 호구지책이 될 만한 직업을 찾기 위한 새로운 길에 나서보고자 한다. 당당함은 자고로 '지갑'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하니. 지갑이 보람이 되고, 행복이 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