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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을 지나 상 프란시스쿠 성당으로

 에보라 왕궁
에보라 왕궁 ⓒ 이상기

리스보아 관광을 마친 우리 일행은 테주강을 건너 동쪽으로 이어진 A6 고속도로를 탄다. 이 길은 포르투갈 알렌테주를 동서로 관통해 에스파냐의 바다호스(Badajoz)로 이어진다. 리스보아에서 에보라까지는 140㎞로 1시간 30분쯤 걸린다. 리스보아에서부터 흐릿하던 날씨가 에보라에 도착할 때쯤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에보라 왕궁 주변 주차장에 차를 멈춘다. 그리고는 레푸블리카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다. 에보라 항소법원에서 푸블리코 공원으로 들어가면 에보라 왕궁을 만날 수 있다.

에보라 왕궁은 상 프란시스쿠 수도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상 프란시스쿠 왕궁이라 불린다. 또 마누엘 1세 국왕이 이곳을 왕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마누엘 1세 왕궁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마누엘 1세는 대항해시대 향신료 무역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큰 부를 이루었기 때문에 곳곳에 왕궁, 성당, 수도원을 짓도록 했다. 그의 명령으로 에보라 왕궁은 1502년부터 1520년까지 확장과 리모델링과 건설을 이어갔다. 이때 왕궁, 왕비실, 왕자실, 도서관, 갤러리, 병원, 정원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바스쿠 다가마 동상
바스쿠 다가마 동상 ⓒ 이상기

그러나 17세기 들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간의 전쟁(1640~1668)으로 왕궁이 심하게 파괴되었고, 관리의 주체가 다시 상 프란시스쿠 수도원이 되었다. 1865년 왕궁은 고고학박물관, 극장, 전시홀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16년 화재로 파괴되었고, 1943년 복원을 거쳐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왕궁이 박물관과 갤러리로, 부속건물이 에보라 대학 건물과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보라 대학은 1559년 포르투갈 역사상 두 번째 대학으로 문을 열었다. 제수이트 교단에 의해 운영되었고, 퐁발 후작의 제수이트 교단 탄압으로 1779년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200년 후인 1979년 에보라 대학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왕궁의 정원을 지나 상 프란시스쿠 성당으로 가는 길에 바스쿠 다 가마 동상을 볼 수 있다. 왼손으로 닻을 내리고, 오른손으로 지구본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연두색 신록과 자주색 꽃잎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동상이 돋보인다. 동상을 지나 5월 1일 광장으로 들어서면 동쪽으로 상 프란시스쿠 수도원 성당, 인골 경당, 성당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수도원 성당으로 들어간다. 수도원은 1475년 고딕양식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1550년대까지 마누엘 양식이 더해져 완성되었다.

상 프란시스쿠 성당 이야기

 상 프란시스쿠 성당 아치
상 프란시스쿠 성당 아치 ⓒ 이상기

성당 정면에서 보면 7개의 아치가 보인다. 그런데 아치가 무어양식,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아랍이 지배하던 시절부터 로마네스크와 고딕시대를 거치면서 건물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성당 안쪽으로 들어가면 천장의 볼트를 통해 성당이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정면에 지성소가 있는데, 제단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 제단 왼쪽 합창대석의 제단은 바로크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 제단이 예수와 성인들 조각으로 이루어졌다면, 측면 제단은 조각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크 양식 제단에 그려진 그림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예수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그 아래 예수가 무덤 속에 누워 있다. 오른쪽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쓰여 있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예수의 고통과 죽음이 조각이나 조소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그 때문에 더 슬프고 경건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상 프란시스코 성당에는 십자가의 길(Via Cruis)이 아줄레주로 표현되어 있다.

 상 프란시스쿠 성당 내부
상 프란시스쿠 성당 내부 ⓒ 이상기

이곳에는 또 성녀 데레사(1515~1582) 상이 누워 있다. 그녀는 아빌라(Ávila)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빌라의 데레사로 불린다. 그녀는 종교개혁의 시대 카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원 개혁 그리고 영성교육과 실천에 평생을 바쳤다. 영성이 신의 경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기도와 명상, 침묵기도, 신에의 몰두, 환희의 체험이라는 4단계를 거친다고 말했다. 데레사의 또 다른 이름이 예수의 성녀 데레사다. 그것은 수도생활 초창기에 환시를 통해 아기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해골과 뼈가 가득한 오소스(Ossos) 경당

 오소스 경당 입구 글씨
오소스 경당 입구 글씨 ⓒ 이상기

상 프란시스코 성당 오른쪽에는 인골과 뼈로 내부를 장식한 오소스 경당이 있다. 오소스는 뼈(bones)라는 뜻을 가진 포르투갈어다. 성당 입구 코린트식 주두(柱頭) 위에 "여기 있는 우리 뼈가 당신의 뼈를 기다린다(Nós ossos que aqui estamos pelos vossos esperamos)"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성당 입구 안쪽 벽면에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읊은 시가 나무판에 새겨져 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에서 너무 서두르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며 살라는 경구이자 잠언이다. 1845년부터 1848년까지 에보라 인근 상 페드루(São Pedro)에 인골성당을 지은 안토니우(António da Ascenção) 신부에게 바친 헌사다.

 오소스 경당 내부 파노라마
오소스 경당 내부 파노라마 ⓒ 이상기

여행자들이여, 당신은 어딜 그렇게 서둘러 가나?
쉬게나, 앞으로 나가려고만 하지 말고.
당신의 눈앞에 보이는 바로 지금,
이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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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다 갔나 기억하게.
당신도 비슷하게 죽을 거라는 걸 생각해.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그렇게 했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당신도 운명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곰곰이 생각해 봐
이 세상의 수많은 관심사 중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겠지.

우연히 이곳을 돌아보게 된다면,
멈춰, 더 나은 여행을 위해서.
당신이 이곳에 더 오랫동안 머물수록,
당신의 여행은 훨씬 더 나아질걸.

 뼈(인골)로 만들어진 오소스 경당 내부
뼈(인골)로 만들어진 오소스 경당 내부 ⓒ 이상기

경당 내부는 5,000구의 시신에서 나온 인골과 뼈로 장식되어 있다. 이들 시신은 중세시대 에보라의 교회 묘지에서 수습했다고 한다. 이들 인골과 뼈는 프란시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종교적으로 예술적으로 배열되었다. 이곳에는 또 미라 형태의 인골 두 구가 누워 있다. 하나는 성인이고 하나는 어린이다. 이곳의 지붕에는 불가타 성경 지혜서 7장에 나오는 구절이 라틴어로 쓰여있다고 한다.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더 좋다(Melior est die mortis die nativitatis)." 오소스 경당에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해서 착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받고 간다.

덧붙이는 글 | 에보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여서 문화유산이 많다. 그래서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해 2회 글을 쓸 것이다.


#알렌테주#에보라#상프란시스코성당#오소스경당#인골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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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skrie) 내방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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