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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112신고센터입니다."
"네, 신고 좀 하려고요?"

"현재 계신 곳의 위치와 무슨 신고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의류 판매장에서 외국 브랜드 가짜 옷을 팔고 있어서요. 여기는 서울 송파구 OOOOO입니다."

"현장으로 경찰관이 출동하면 되겠습니까?"
"네,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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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이다. 쉽지 않은 신고다. 가짜 옷을 판매하는 것은 상표법 위반에 해당한다.

"코드 2 신고, 의류 판매장에서 가짜 제품을 팔고 있다."
"순찰차 0호. 현 시간 신고지로 0호 출발합니다."

 경찰이 타고 있는 경찰차
경찰이 타고 있는 경찰차 ⓒ 연합=OGQ

과거에는 이런 신고에 대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단속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상품에 대해 진위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외국 유명 상표(브랜드)를 비롯해 국내 상표에 대해 위임을 받아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별도의 회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출동하면서 후배 경찰관에게 물었다.

"OO씨, 근무하면서 상표법 위반 단속한 적 있어요?"
"아닙니다. 처음입니다. 단속하고 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갖춰야 하는 수사 서류들도 많고 물건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매장에 있는 가짜 옷들을 모두 파악하고 전체 압수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종류대로 다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수량이 많을 때는 하나라도 분실하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어떻게 파악하죠?"

"아마도 신고한 사람이 가게서 판매하고 있는 브랜드 상표권을 위임받은 법무법인에서 나온 직원일 겁니다. 그 직원이 짝퉁을 정확하게 분별해 줄 겁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오늘은 왠지 이번 신고 하나 처리하는데 오후 시간을 다 보낼 듯하네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는 사이 순찰차는 현장에 도착했다. 순찰차가 도착하자 바로 앞으로 남성 3명이 다가왔다. 신고한 사람들이었다. 역시나 골프의류 외국 브랜드의 상표권 보호를 위해 위임받은 업체의 관계자들이었다. 먼저 신고자들의 신분과 위임 관계를 확인했다. 그리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장 안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20여 평의 매장 안에는 다양한 등산용품과 골프 의류들이 진열대에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벽면에는 가방과 모자를 비롯해 액세서리들도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신고 내용에 대해 주인에게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주인은 허탈한 표정으로 구구절절 하소연을 시작했다.

"저 지난달에 100만 원 조금 넘게 팔았어요. 가게 월세도 못 낼 판이에요. 요즘 경기가 진짜 안 좋아서 안 그래도 가게를 정리하려고 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죄송합니다. 신고가 들어왔고, 상표권 침해로 인해 피해가 큽니다. 이분들이 무조건 피해를 볼 수는 없잖아요. 이해해 주세요."

사실 단속 현장에서는 누구나 억울하고 힘들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솔직히 요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도 자주 듣고 있다. 그렇다고 가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물건을 판매한 업주, 신고를 한 업체, 그리고 단속해야 하는 경찰. 그렇다고 복잡한 나의 속내가 들통나서는 안 된다.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가게 주인은 최대한 차분하게 설득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강력 형사범은 아니다. 경제 사범에 대해서는 동의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30여 분간 가짜 의류와 액세서리들을 파악했다. 신고한 사람들로부터 어떤 부분이 가짜인지도 꼼꼼하게 들었다. 그리고 관련된 진술서를 받았다. 가게 주인에게는 임의제출 형식으로 가짜 옷들을 건네받았다.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압수한 의류를 순찰차에 싣고 지구대로 돌아온다.

창밖으로는 다양한 브랜드의 매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곳 어딘가에도 가짜는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건 가짜인 것을 알면서도 사는 사람이 있고 가짜 제품을 파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고가의 외국 브랜드 옷을 입고 싶었다. 그런데 형편상 비싸서 살 수 없었다. 그러다 친구와 함께 짝퉁을 판매한다는 동대문 쪽 구석진 곳에 있던 의류 판매장을 간 적이 있다.

그곳은 간판도 없고 정문은 철제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입구를 찾지 못해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남성이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를 옆쪽에 있는 쪽문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진품보다 몇 배는 싸게 가짜 옷을 두 벌이나 샀다.

솔직히 당시에는 별로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옷을 진품처럼 아끼며 꽤 오래 입고 다녔다. 그러다 한 친구로부터 가짜라는 사실을 들키고 말았다. 20대 초반의 나이에도 나는 너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친구가 했던 말이 나를 더 창피하게 만들었다.

"가짜를 진짜처럼 입어서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은 못 속이는 거야"라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때는 친구가 비아냥거렸다고 생각해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가 고마웠다. 그리고 나의 태도도 바뀌었다. 나는 그 뒤로 지금까지 가짜 제품은 한 번도 사지 않았다. 옷뿐만 아니라 내가 돈을 주고 사는 어떤 것도 그렇다.

요즘은 노래 한 곡을 듣는 것도 신중해졌다. 온라인 앱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으로는 노래를 듣지 않는다. 한 곡당 770원을 내고 내려받아 선별적으로 듣는다. 이런 지도 꽤 오래됐다. 10년도 더 된 듯하다. 노래 한 곡을 만들기 위해 작사와 작곡가 그리고 온 힘을 다한 음악가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내 생활에 가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진솔하지 못하고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나의 모습이다. 흔히 말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의 가짜 웃음과 가짜 대화가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인관계에서는 더욱이나 그렇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나의 삶 일부가 되었고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편하고 최선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묻는다. '사회 생활에 가짜는 어느 선까지냐?'. 물음에 대답을 못 한 채 지구대에 도착했다. 지금은 당장 눈앞에 놓인 업무를 해야 한다. 압수한 옷들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루가 참 길다.

[법률적 내용 설명] 일반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은 정상 제품과 비교 시 매우 조악한 가짜 상품이었다. 정상적인 경로를 통하여 생산 또는 유통되었다는 표시 또한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피해자들은 법적인 처벌을 원했다.

결국 매장 주인은 '상표법 위반'으로 입건되었다. '상표법 제230조(침해죄) 상표권 또는 전용사용권의 침해행위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상표권 위반은 경제 사범중에 매우 중한 벌로 처벌 받는다. 누구나 함부로 가짜 상품을 판매해서는 절대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박승일의 경찰관이 바라본세상에서) 금요일 연재에도 실립니다.


#경찰#박승일#서울경찰청#신고#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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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o72bak) 내방

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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