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대선 결과에 승복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패배했다. 예상된 결과였다. 김문수 후보의 패인은 A부터 Z까지 잘못된 캠페인 탓이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와의 절연도 실패했고, 부정선거 음모론과도 명확히 거리두지 못했다. 탁월한 정책 공약이 눈에 띈 것도 아니었고, 후보 메시지나 개인기가 빛났던 것도 아니다.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은 당선과 반대 방향으로 질주했고, 메시지는 '반이재명'과 '단일화' 말고는 대중에 각인되는 게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선거를 치렀음에도 40%가 넘는 득표율을 얻은 게 의아할 정도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에 기대, 전통적 보수층의 결집을 이뤄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선방'했다고 자축하긴 이르다. 국민의힘의 '애매한 패배'가 되레 당을 더욱 수렁으로 끌고 들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쇄신? 책임 떠넘기? 국힘의 선택은?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다 자리를 떠나는 가운데, 앞 자리에 안철수, 황우여 공동선대위원장이 자리에 앉아 있다. ⓒ 공동취재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라면, 대대적 반성과 쇄신을 '포장'이라도 하는 게 일반적 정치 문법이다. 문제는 한 번 졌다고 해서 당이 방향을 일거에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거대 정당 특유의 관성 탓이다. 보수정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중도 외연 확장에 나섰던 것은 대통령 선거(2017)-전국동시지방선거(2018)-국회의원 총선거(2020)를 내리 세 번 지고 난 뒤에야 가능했다.
특히 이번 대선의 결과를 놓고 '자성'보다는 '책임 떠넘기기'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당장 '반명 빅텐트'에 합류하지 않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측에 패배 책임을 돌리면서 당 내부 책임론 희석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김문수 후보의 득표율과 이준석 후보의 득표율을 단순히 더하면 이재명 당선자와 해볼만 했다는 주장을 방패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단일화는 기존 지지층의 이탈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시너지가 나는 게 아니다. 김문수 후보의 득표에는 사표 방지 심리도 어느 정도 반영돼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중간중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등판하면서, '윤석열과 김건희' 그리고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구도가 굳어졌다"라며 "이준석에게 패배의 책임을 넘기기에는 윤석열의 잘못이 너무 세다. 다른 이슈들을 다 빨아들이고 소멸시켰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제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 대선 패배 책임을 넘기는 게 정당한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진영을 막론하고 큰 정당은 작은 정당에 선거 패배의 탓을 돌리며 내부 불만을 잠재우고 시선을 돌리는 전략을 자주 써먹어 왔다. 그리고 이는 큰 정당 후보 당사자의 자질이나 당의 구조적 문제를 지운다.
이번 대선 패배의 근본 원인을 쥐고 있는 '친윤계'는 기득권을 계속 놓지 않고 당의 주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친윤계 상당수가 마지막까지 이준석 측에 구애한 것도, 실제 단일화 성사 여부와 관계 없이 '대선 이후'를 계산한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김봉신 메타보이스 부대표는 "친윤 중 '전부 다 사퇴하고 먼 훗날 정권 교체를 위해서 지금 당장 백의종군하겠다', 이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친윤은 당권을 이미 장악한 상태"라며 "국민의힘은 계파 투쟁에 다시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또한 "당 안에서는 '약간만 더 하면 이길 수 있었는데 안 됐다' 이런 식으로 말할 가능성이 크다. 남 핑계 댈 일이 많을 것"이라며 "'한두 사람의 책임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물타기를 할 것이다. '똘똘 뭉쳐야 한다'는 태도를 취할 텐데, 당 입장에서는 별로 좋지 않은 그림"이라고 봤다.
패배 책임론 놓고 친윤 vs. 친한, 계파 간 내전 임박

▲권성동 원내대표 겸 공동선대위원장과 김기현 공동선대위원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다 자리를 떠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특히 패배 책임론을 두고 친윤계와 친한계의 충돌도 불가피하다. 이는 차기 당권의 향배와도 연관이 있다. 친윤계는 선거 중 '친윤 구태 정치 청산'을 외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친한계는 전직 대통령 윤씨와도, 부정선거 음모론과도 제대로 선 긋지 않은 친윤계를 비판할 수 있다. 이미 전조들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변수는 그 외에도 많다. 국민의힘에 앞으로 닥쳐올 상황은 고차 방정식이다. 김문수 후보의 거취도 불분명하다. 친윤계가 김문수 후보를 지원한 것은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이었다. 김문수 후보를 당의 간판으로 내세워 대선을 끝까지 치른다는 시나리오는 애초에 후순위였다. 다시 말해 이번 대선에 한정해 쓰고 버리는 카드였던 셈이다.
반대로 김 후보는 이대로 얌전히 내려갈 생각이 없다. 그는 당내 계파도, 세력도 없지만, 중앙에 다시 발을 디딘 이상 '패장'의 책임을 지고 퇴장할 가능성은 적다. 김문수 후보가 자신을 몰아내려고 날을 바짝 세웠던 권성동 원내대표의 자리를 보전해준 것도 의미심장하다. 김 후보는 자생력이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윤계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향후 이들과 연대해 정치적 생명력을 담보하기 위한 '거래'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김문수 후보가 무사히 친윤계의 얼굴이 돼 차기 당권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까? 결코 친한계에 당권을 넘겨줄 수 없는 친윤계 입장에서는 누구를 내세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나경원, 안철수 같은 인사들의 이름이 벌써 또 거론되고 있다. 친윤계의 분화도 필연적이다. 파면된 전직 대통령, 그것도 탈당한 대통령의 '윤심'에 일사불란하게 이들이 움직일 리 만무하다. 누군가는 계속 윤씨에게 충성을 바쳐 강성 지지층의 눈에 들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제 적당히 윤씨와 거리를 두며 제 살 길을 찾을 것이다.
장성철 소장은 "김문수 후보 본인은 당 대표를 하려고 나설 것이다. 보수우파에는 현재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도전은 해볼 수 있다"라면서도 "당원과 의원들이 흔쾌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잡아들이고 비상계엄과 관련해서 조사할 텐데, 윤석열을 옹호하는 김문수가 어떤 명분을 가지고 정치를 재개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김문수 후보는 당연히 욕심이 있겠지만, 자리매김하기는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비대위 연장 vs. 조기 전당대회, 복잡한 셈법의 당권 다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대선 패배에 승복하고,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는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김용태 비대위원장,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의 체제가 얼마나 연장될지, 전당대회를 언제 열지도 관심이다. 친윤계는 당 쇄신을 이유로 당장의 전당대회보다 비대위 체제를 지속하길 바랄 것이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한 시간벌기용이다. 젊은 초선 의원 김용태 비대위원장을 핸들링할 수도 있고, 차기 비대위원장 지명권을 쥔 권성동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새 비대위 체제를 지속할 수도 있다.
반대로 친한계는 최대한 신속하게 전당대회를 열어 당권을 탈환하려고 할 공산이 크다. 친윤계의 대선 패배 책임론을 부각하기 위해서라도 조기 전당대회 수순으로 가는 게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외곽에서 당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는 윤석열의 존재도 있다.
서로의 계산기는 복잡하게 맞물리고 있다. 당권을 쥐려는 쪽에서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공천권이 달려 있기 때문에, 지금 당권을 잡아야 향후 지역 조직들도 제어하기 용이하다. 다만, 다음 지방선거 승산이 크지 않다면 패배 책임론을 또 뒤집어 써야 하는 게 부담이 된다. 무엇보다 총선이 한참 남았다. 의원 개개인의 생사가 달린 총선 공천권이 당 주도권의 핵심이다. 언제 당권을 쥐는 게 가장 나을지, 누구를 선수로 내세울지도 여러 옵션을 펼쳐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윤태곤 실장은 "'김용태 비대위'라고 하는데 그 호칭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만 빠진 거지 다 똑같은 인물 아닌가?"라며 "당권을 누가 잡고 안 잡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이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당내 갈등이 "내용이 있는 공방이 돼야 하는데, 평가·책임이 없는 공방만 이뤄진다면 그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장성철 소장은 "국민의힘은 당분간은 야당으로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과 아직 절연하지 못했고, '사법 리스크'가 현실적으로 야당 역할을 하기에는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야당에게는 혹독한 시련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