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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충현 씨 작업하던 범용 선반(NARA 6020)
김충현 씨 작업하던 범용 선반(NARA 6020) ⓒ 이태성

김용균씨가 목숨을 잃은 지 6년이 지났다. 당시 사회는 약속했다. 더는 혼자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게 하자고. 그러나 충남 태안의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다시 비정규직 노동자가 1인 작업 도중 숨졌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위험은 여전히 하청 노동자의 몫이었다.

숨진 김충현씨는 지난 2일 태안화력 9·10호기 종합정비동 1층에서 공작물을 선반으로 가공하던 중 기계에 옷이 말려 들어가면서 사망했다. 그가 사용한 'NARA 6020' 선반 기계는 비상정지장치를 갖추고 있었지만, 실제 작동을 위해선 동료의 손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장에는 동료도, 감독자도 없었다. '2인 1조 작업' 원칙은 이번에도 무시됐다.

3일 유족과 노동계가 연 기자회견에서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 집행위원장은 "김용균 사고 이후 인력 충원이 일부 이뤄졌지만, 정비 분야는 제외됐다"며 "정비동 내 6대의 공작기계를 단 1명이 맡고 있었고, 작업허가서에도 '1인 작업'으로 명시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충현씨의 죽음이 더 참담한 이유는, 최소한의 감독조차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현장에는 보조 인력은 물론 관리 감독자도 없었다. 김영훈 한전KPS 비정규직지회장은 "기계에 말려 들어가는 순간 옆에서 버튼 하나만 눌러줬어도 살릴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며 "'개인 부주의'로 몰지 않도록 끝까지 진상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다단계 하청 구조 역시 개선되지 않았다. 태안화력을 운영하는 서부발전은 정비 업무를 한전KPS에 위탁했고, KPS는 이를 다시 한국 파워O&M에 재하청했다. 대책위는 "김씨는 10여년간 소속이 7~8차례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하청과 재하청으로 이어진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은 외면됐다"고 밝혔다.
 김영훈 한전KPS 비정규직지회장은 "기계에 말려 들어가는 순간 옆에서 버튼 하나만 눌러줬어도 살릴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며, "그를 '개인 부주의'로 몰지 않도록 끝까지 진상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훈 한전KPS 비정규직지회장은 "기계에 말려 들어가는 순간 옆에서 버튼 하나만 눌러줬어도 살릴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며, "그를 '개인 부주의'로 몰지 않도록 끝까지 진상규명하겠다"고 밝혔다. ⓒ 김선영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위원장은 "6년 전 김용균의 희생으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여전히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이 사건은 제도적 미비가 아니라 인식과 구조의 문제이며, 서부발전은 무책임한 보도자료로 책임을 회피하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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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는 "이번 사고의 설명 방식이 김용균씨 사고 당시와 판박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과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원청 경영책임자에게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계 작업실은 원래 원청이 관리하던 핵심설비였음에도 외주화가 이뤄졌고, 노후 기계와 1인 작업, 인력 부족이 반복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고 현장을 직접 확인한 최진일 새움터 대표는 "공작기계는 고장이 나야 위험한 것이 아니라 원래 위험한 장비인데, 이를 여러 대 혼자 다루게 한 것부터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사고 직후 현장은 이미 닦여 있었고 정돈된 상태였다. 중요한 증거들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한 "현장 소장은 선반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작업 표준서나 안전 작업계획서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며 "감독자가 서명한 TBM 문서는 있었지만, 실제 현장엔 없었다. 결국 김씨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일하다 죽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부발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자세한 사고 경위는 조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며 "작업지시 없이 작업했다는 설명은 한전KPS 측의 입장문일 뿐, 서부발전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故김용균#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위험의외주화#2025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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