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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03 15:11최종 업데이트 25.06.03 15:11

장애인 탈시설, 모두를 위한 자유의 선언

 2024년 9월 1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김진수 공동대표 49재 추모제 및 탈시설지원법 입법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2024년 9월 1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김진수 공동대표 49재 추모제 및 탈시설지원법 입법촉구 결의대회가 열렸다. ⓒ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시설 밖에도 삶이 있다"

"자립해서 살고 싶습니다."

이 짧은 말은 누군가에게는 평생 허락되지 않았던 소망이었다.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장애인들은 원치 않는 시설 안에서, 선택과 결정이 배제된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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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가 너무 오래 외면해 온 문제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될 문제이기도 하다.

탈시설은 단지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보호라는 말 뒤에 가려진 것들

장애인 시설이 '안전한 보호'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말 뒤엔 자율성의 상실, 지역사회로부터의 고립, 평생 이어지는 수용 생활 같은 현실이 숨어 있다.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에 머무는 사람들의 평균 입소 기간은 18.9년, 이 중 98%가 넘는 이들이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이다. 한 번 들어가면 사실상 '평생 시설'인 셈이다.

"시설 안에서는 내가 사람인지조차 잊혀졌어요. 밖에 나와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처음 고민해봤어요."

탈시설 당사자 A씨의 말은, 시설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지워버리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와도 어긋난다.

탈시설은 그저 건물을 나오는 게 아니다.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탈시설, 누구의 이야기일까

우리는 대학 수업 프로젝트를 하며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장애인도 자립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시설에서 나오는 게 끝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한 시작이죠."

이런 말들처럼, 긍정적인 응답도 있었지만 "불안하다", "정부가 준비가 안 됐다"는 우려나 "잘 모르겠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건, "당신의 가족이 당사자라면 어떻겠냐"는 질문에는 대부분이 말을 바꿨다는 점이다. 그 순간, 시설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어버렸다.

결국 탈시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인을 특정한 집단의 문제로만 보는 순간, 우리는 포용의 사회에서 멀어진다.

이건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자,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지를 보여주는 기준이기도 하다.

제도는 준비됐는가, 정부는 책임을 지고 있는가

서울시는 지난 2024년,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국 최초의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를 폐지했다.

이 조례는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법적 근거였다. 서울시는 "중앙정부 로드맵과 중복된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부의 로드맵은 여전히 선언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고, 실질적인 강제력이나 예산 뒷받침은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지방정부마저 책임을 내려놓는다면,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된다.

실제로 얼마 전, 서울 강서구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은 여전히 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의 현실을 보여준다.

탈시설은 자율에 맡길 일이 아니다. 정부가 직접 책임지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가능한 일이다.

특별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장애인이 바라는 삶은 특별하지 않다.

아침에 눈을 떠 내가 고른 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식사하고, 힘든 하루를 내 방식대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특정 장애인에겐 여전히 허락되지 않고 있다.

이건 단지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삶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는, 결국 우리 모두가 더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다.

마무리하며: 이제는 우리의 몫이다

장애인 탈시설은 장애인만의 해방이 아니다. 누군가를 고립시키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작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 것, 관련 청원에 서명하는 것, 내 지역 의원에게 이 문제를 물어보는 것. 그리고 그 첫걸음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생각 하나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시설 밖에도 삶이 있다. 그 삶에, 당신이 응답해 주길 바란다.

- 이 글은 경희대학교 '세계와 시민' 수업에서 장애인 탈시설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탈:바꿈' 조가 작성했습니다. 대학생들의 시선에서 탈시설 문제를 다시 바라보고, 시민의 인식 전환을 촉구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기성 언론에서 소홀히 다뤄졌던 '지역사회 내 자립의 가능성'에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장애인탈시설#인권#자립생활#복지정책#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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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훈 (bjh6155)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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