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이 보내온 것으로, 오마이뉴스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한 다른 의견도 환영합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서 유독 거슬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라는 호칭입니다. 신문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매체가 날마다 파면된 '내란 수괴'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씨와 관련한 뉴스를 보도하면서, 그의 이름 뒤에 '여사' 호칭을 꼬박꼬박 붙여주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불쾌함과 역겨움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릅니다.
두 가지 점에서, 이런 보도에 이의가 있습니다. 첫째, 김씨는 공천 개입, 뇌물 수수, 이권 개입 등 온갖 비리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부인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엄연히 '종합 비리 세트' 혐의를 받는 일반 시민 신분입니다. 예우해 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사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은 사리에도 형평성에도 어긋납니다. 과공(지나치게 공손함)이 아니라면 상투적인 관행의 게으른 고수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사' 호칭은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

▲21대 대통령 선거날인 3일 오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중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씨와 서울 서초구 원명초등학교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한 뒤 떠나고 있다. ⓒ 권우성
둘째, 설령 현직 대통령 부인이라고 해도 언론 보도에서 대통령 부인을 '여사'라고 호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뽑은 사람은 대통령이지 대통령 부인이 아닙니다. 대통령 부인이란 공식 직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부인을 '000 여사'로 높여 부르는 건, 권위주의 시절의 잔재입니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엔 대통령을 '각하',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 대통령의 아들과 딸을 '영식'과 '영애'로 부르며 깍듯하게 예우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불경죄라고 저지른 듯이 보는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분명한 건 여사라는 호칭이 상하귀천이 따로 없는 '국민주권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1988년 5월 15일,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한겨레신문>이 탄생했습니다. 이 신문이 가장 먼저 한 일이 그간 언론계에 자리 잡고 있던 독재 시절의 낡고 음습한 관행을 걷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냉전적 사고와 권위주의에 찌든 용어를 민주화 시대에 맞게 고쳐 쓰는 일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이나 '여사'라고 쓰지 않고 '대통령 부인 000 씨'로 바꾼 것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이 '의외의 복병'을 만나 후퇴했습니다.
독자들의 항의로 무산된 <한겨레신문>의 호칭 변경
지금 한겨레신문은 창간 당시의 방침을 바꿔, 대통령 부인의 이름 뒤에 '여사'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 시절인 2017년 8월에 방침을 변경했습니다. 문 정권 탄생 직후인 5월부터 문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이 대통령 부인을 '여사'라고 높여 부르지 않고 '씨'라고 하대하는 걸 참을 수 없다며 신문사로 거세게 항의를 해왔습니다(당시 오마이뉴스도 같은 항의를 받고 여사로 변경했습니다). 2007년 노무현 정권 때도 비슷한 항의가 쇄도했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는 항의에도 방침을 고수했지만, 문 정권 때는 신문사가 항의에 굽히고 말았습니다.
물론 배경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여사'-'씨'를 둘러싼 문 전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의 항의 속에는 한겨레신문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한겨레신문에 대한 민주 진영의 실망과 배신감이 호칭에 대한 불만으로 나타났다는 게 진실에 가깝습니다. 그런 사정을 충분하게 고려하더라도, 저는 한겨레신문의 2017년 대응이 무척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돌아보면, 그때의 표피적인 대응이 한겨레신문마저 범죄투성이 김건희씨를 '김건희 여사'라고 깍듯하게 표기할 수밖에 없는 자충수가 됐으니까요.
미국과 일본은 애초부터 민주적인 호칭 사용
미국의 독립투쟁과 건국 과정을 다룬 <존 애덤스>라는 7부작 미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존 애덤스 초대 부통령(2대 대통령)이, 상원에서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을 존대하는 용어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장엄함과 위대함이 깃든 대통령 호칭이 없이는, 미국 대통령이 국민에게 위엄과 권위를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유럽의 왕에게 붙이는 것과 같은 명칭을 제안합니다. 구체적으로 '히스 하이네스 프레지던트(His Highness President, 대통령 전하)' 등 세 가지 안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상원의원이 이구동성으로 미국 헌법에는 어떤 귀족 칭호도 인정하지 않게 돼 있다면서 극구 반대합니다. 결국 당사자인 워싱턴 대통령이 그냥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이 논란은 정리됩니다. 그 뒤 미국 대통령의 호칭은 미스터 프레지던트로 굳어졌습니다.
미국의 예는, 용어 하나의 차이가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걸 보여줍니다. 용어가 사상과 이념의 출발점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 만약 미국의 건국자들이 '대통령 각하' 또는 '대통령 전하'와 같은 호칭을 채택했다면, 미국의 정치 풍토는 지금보다 훨씬 권위주의적이 됐을 겁니다. 미국을 본받아 대통령제를 도입한 세계의 수많은 후발국도 권위주의적인 대통령 호칭을 그대로 받아들였겠죠. 단지 용어에만 그치지 않고 문화까지 권위주의적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건국 이래 사용해 왔던 '대통령 각하'라는 권위주의적인 호칭을 버리고 민주적인 냄새가 나는 '대통령님'으로 바꾸려는 발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이 자주 비교하는 일본은 어떨까요. 대다수 미디어가 총리의 부인을 '총리의 처 000상'이라고 쓰고 있더군요. 일본의 '상'은 한국의 '씨'와 비슷한 호칭입니다. 최근의 보도 사례를 찾아보니, "4월 27~30일에 걸쳐 베트남과 필리핀을 순방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처 요시코 상"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000 대통령과 부인 000 여사'라고 쓰는 보도 관행과 큰 차이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주권 정부' 간판에 맞는 변화 필요

▲제21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해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부인 김혜경 여사와 함께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마련된 개표방송 야외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마침, 오늘(6월 4일) 새로 탄생한 이재명 정권은 '국민주권 정부'라는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을 참칭했던 독재자 윤석열이 파괴한 나라를 '나라의 진짜 주인'인 국민이 앞장서 되찾았으니, 그보다 더 적절한 정권의 이름을 짓기 어려웠을 듯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럴듯한 간판이 아니라 간판에 걸맞은 물품을 파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정부와 미디어 양쪽에 국민주권 정부의 출범에 맞추어 대통령 부인의 호칭을 '여사'에서 '씨'로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나라 전체를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면 수리하겠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큰 어려움 없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국민주권 정부의 간판 이름에 어울리는 상품 갖추기의 좋은 출발점이 되리라 믿습니다. 워낙 '김건희 여사'의 악명이 높았던 탓에, 덤으로 얻게 될 반사 이익은 클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