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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엄 산 입구
뮤지엄 산 입구 ⓒ 뮤지엄 산

누군가 내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강원도 원주 산꼭대기에 있는 '뮤지엄 산(SAN)'이라고 답하겠다. SAN은 공간, 예술, 자연(SPACE, ART, NATURE)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말 그대로 공간과 예술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관이다.

입구에서 끝까지 총 700미터에 달하는 뮤지엄 산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되었고, 영국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는 '어디에도 없는 꿈의 뮤지엄'이라고 극찬했으며 싱가포르 The Artling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아시아의 뮤지엄'으로 꼽을 만큼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한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뮤지엄 산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곳으로, 그조차 미술관을 의뢰 받고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과연 이 외진 곳에 누가 올까를 고민했단다.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곳, 유일한 곳이라면 기꺼이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탄생한 곳이 바로 뮤지엄 산이다. 그러니 먼저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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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갑자기 어디서도 본적 없는 원형의 주차장이 나타난다. 둥근 성곽 모양의 벽이 높은 주차장은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함으로 오롯이 이 공간에 집중하도록 한다. 또 주차장엔 주차선을 대신할 나무가 규칙적으로 심겨 있다. 그러니까 아스팔트 위 네모난 주차선 안에 주차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사이사이에 차를 세우는 것이다.

호텔 로비처럼 생긴 웰컴센터에서 매표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기념품 판매장이 나타나는데 이곳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면 안도 다다오의 시그니처 조각작품인 '청춘'이 싱그럽게 서 있다.

 관람자가 '청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관람자가 '청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문하연

"청춘은 인생의 시기가 아닌 어떠한 마음가짐"이라는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에서 영감을 얻어 안도 다다오가 만든 작품으로 그에게 청춘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목표와 도전이 있는 상태를 뜻한다. 85세의 나이에도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안도 다다오는 그런 면에서 아직 청춘인 셈이다. 청춘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벽 같은 문을 통과하면 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풍경(꽃과 조각작품이 있는 정원)과 마주한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은 앞을 예측할 수 없게 코너를 돌거나 벽을 통과하는 등 진입 시퀀스가 복잡한데, 이렇게 하면 관람자는 실제 공간보다 훨씬 크고 다채롭게 인식하는 효과가 있다.

바람에 살랑이는 꽃 언덕을 지나 자작나무 사잇길에 들어서면 길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낮은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오늘의 음악은 유키 구라모토의 Romance다.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산책길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다시 한번 깜짝 놀랄 풍경이 펼쳐지는데, 레드 카펫처럼 길게 깔린 길 끝에 오늘의 목적지 뮤지엄이 물 위에 떠 있다.

 뮤지엄 산 본관 입구
뮤지엄 산 본관 입구 ⓒ 문하연

잔잔한 물은 거울이 되어 건물과 자연을 그대로 투영시키고 관람객은 인공과 자연의 합작품을 보며 입을 떡 벌린 채 자동으로 카메라를 꺼내 든다. 빨간 조형 작품이 출입구가 되어 관람객을 맞는데, 이 빨간색이 자칫 밍밍할 수 있는 건축의 킥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안도 다다오의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로 유명한데, 이 건물은 독특하게 외관 마감재가 화강석이다. 돌과 물과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곳, 그리하여 유일무이한 풍경을 만들어 낸 곳이 바로 뮤지엄 산이다.

뮤지엄 산은 종이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 본관, 명상관, 세 개의 가든(플라워 가든, 워터가든, 스톤 가든), 제임스 터렐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종이 박물관에서는 종이 발견 이전 기록 매체로 사용했던 파피루스와 종이로 만든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미술관에서는 국내 화가 장욱진, 이우환, 최종태 등 11명의 작품(소장 작품)이 전시된 '모든 것이 변한다'가 열렸는데 6월 1일로 종료되었다. 다. 전시 교체 기간 동안인 19일까지는 미술관 관람이 제한되니 참고하면 좋겠다. 한편, 명상관에서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주제로 명상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경건한 마음이 절로... 왜 만들었을까?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이 뮤지엄 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터렐' 관이다. 국내 유일하게 제임스 터랠관을 보유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빛의 마법사로 불리는 제임스 터렐(1943~)의 놀라운 설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빛의 마법사라고 하는지 일단 그의 작품을 만나보자.

그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캄캄한 터널 같은 길을 통과해야 한다. 넘어지거나 부딪히지 않게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입장하면 천장이 뻥 뚫려있는 이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스카이 스페이스
스카이 스페이스 ⓒ 뮤지엄산

이 공간은 '스카이 스페이스'라는 작품이다. 천정에 뚫린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관람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구조인데 외부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된 이곳에서 위를 바라보면 별생각 없이 왔더라도 기도하고 싶은 경건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다분히 종교적이고 명상적인 그의 작품은 빛을 이용한 설치 작품으로 그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든 공간 안에서 다양한 빛을 직접 체험하는 곳이다. 더 정확히는 다채로운 빛과 원초적인 관계를 맺음으로 내 안에 그 빛을 받아들이고, 궁극적으로는 내 안의 빛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그는 미국 출신의 설치미술가로 정신적인 수련과 침묵을 중요시하는 퀘이커교를 믿는 부모님 아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퀘이커교는 사람마다 내면의 빛이 있다고 믿고 이를 통해 선(善)을 이루고자 한 개신교의 한 종파다(1947년, 퀘이커교의 봉사단체는 종교 단체로는 최초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을 잡고 퀘이커 교인들이 모인 회의 장소에 가곤 했는데, 어느 날 그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여긴 무엇을 하는 곳이고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나요?" 할머니는 그에게 "그냥 기다려, 우린 안으로 들어가서 빛을 맞이하게 될 거야." 어린 나이에도 그는 할머니의 이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할머니의 그 말은 훗날 그의 예술 작품 모티프가 되었다. 이제 어슴푸레 그의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지 않은가. 그의 또 다른 빛을 맞이하러 가보자.

 호라이즌 룸
호라이즌 룸 ⓒ 뮤지엄 산

이 작품은 빛의 제단을 형상화한 호라이즌 룸(Horizon Room)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의 색깔이 변한다. 이 앞에 서서 변하는 빛을 느끼고 있으면 내가 어떤 빛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인식하게 된다. 어떤 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당신은 현재 이런 사람이다'라는 결론은 없다. 반응하는 빛을 따라가며 내 안의 빛을 찾게 하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니까.

그렇다면 내 안의 빛이란 무엇일까? 그의 작품을 둘러보는 내내 난 의문했다. 마침내 그의 작품을 끝까지 둘러보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으니, 정답은 없다) 내 안의 빛을 찾는 것은 본질적인 나를 찾는 것이다. 즉, '내 안의 빛=본질의 나'로 불교에서 본질의 나를 찾는 질문인 '이 뭐꼬?'와 같은 맥락처럼 느껴졌다.

계단을 올라가 네모난 공간을 통과하면 작은 야외 공간이 나오고, 이곳에서 산 아래 전망을 볼 수 있다. 제임스 터렐관은 전시 공간 전체가 사진찍기가 불가한데, 오직 이곳에서만 산 아래 전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간츠펠트(완전한 영역)
간츠펠트(완전한 영역) ⓒ 뮤지엄 산

마지막으로 볼 작품은 개인적으로 가장 신기하고 기억에 남는 작품인 '간츠펠트'로 간츠펠트는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이라는 뜻이다. 이곳을 체험하기 위해선 우선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라가 작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작품 역시 시시각각 빛의 색깔이 변하는데 변하는 빛 속에 서 있으면 내가 서 있는 곳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다. 또 어느 지점에 서 있느냐에 따라 반대편이 낭떠러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닥이 기울어져 보이기도 해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말을 절감하게 된다.

빛이 변하면서 뿌연 안개 같은 빛이 나를 감싸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공포심이 인다. 손을 내저어 앞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조심조심 발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가도 되는지 알아내기 위해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다 안개가 걷히듯 식별이 가능한 빛으로 바뀌면 공포는 안도로 바뀌는데, 우스운 건 앞에서 말했다시피 착시 효과로 인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데 있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보인다고 안도하는 마음이라니. 이 작품의 제목처럼 어리석은 마음을 볼 수 있는 '완전한 영역'이었다.

제임스 터럴관은 30분 간격으로 입장이 가능하고 예약 시간에 관람자들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감상하고 나오는 시스템이다. 그러니 사람이 붐비는 주말엔 예약이 필수다.

미술관은 미술 작품을 보러 간다. 하지만 뮤지엄 산은 미술 작품을 따로 보지 않더라도 그 공간 자체가 주는 예술적 충만감이 매우 크다. 긴 산책로를 걷다가 물로 둘러싸인 산꼭대기 카페에 앉아 산 아래를 굽어보며 차를 한잔 마시면 지치고 부대꼈던 마음에 새살이 돋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입장료가 다소 비싸긴 한데, 평생 한 번은 가볼 만하고 공간을 다 체험하고 나면 돈이 아깝지는 않다.

덧붙여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다 가본 입장에서 방문하기 가장 좋은 시점은 이 글을 읽는 바로 지금이다. 여름휴가, 가을 단풍, 눈 덮인 겨울을 기다리다가는 영영 못 갈 수도 있다. 우리가 매번 그런 이유로 어딘가 떠나지 못했던 것처럼.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뮤지엄 산 홈페이지 전시 해설을 참고 해서 작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미술관#안도다다오#제임스터렐#뮤지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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