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한국은행의 신상준 박사와 함께 집필한 <헌법은 어떻게 국민을 지키는가>(2025년 5월 출간)는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깊은 갈등과 가장 치열한 논쟁이 집중되어 있는 영역에서,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정체성과 민주적 가치, 그리고 국민의 권리를 어떻게 지키고 실현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조망하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헌법학 이론을 설명하거나 판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헌법이란 무엇이며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실천적·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헌법은 어떻게 국민을 지키는가 책 표지 ⓒ 김영사
특히 저자들은 헌법재판소가 내린 42개의 주요 판결을 중심으로 헌법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기능해왔는지를 분석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공화주의와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근본 가치가 어떻게 구체적인 쟁점 속에서 구현되고, 그것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 통합이라는 보다 넓은 헌법적 비전으로 연결되는지를 정교하게 풀어내고 있다.
예컨대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행위에 대해 전원일치 인용 결정을 내린 사건은, 단순한 권력자의 위헌 행위에 대한 사법적 심판을 넘어서서, 헌법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갈등을 중재하고 분열된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통합의 장치로서 헌법재판이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결정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조차 헌법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의 분산과 견제에 있음을 선언하였다.
이 책은 단지 특정한 정치적 사건을 법적으로 검토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과거의 5·18 특별법 사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일본군 위안부 배상청구 사건, 외국인 산업연수생이나 난민에 대한 차별 문제 등은 헌법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해왔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공동체의 정당성을 재확립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례들이다.
특히 5·18 특별법과 관련하여,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반란죄와 내란죄에 대해서도 예외적으로 소추를 가능하게 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헌법이 단순한 법적 안정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 실현과 헌정 질서 회복이라는 더 높은 공익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살아 있는 규범임을 입증해 보였다.
또한 이 책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헌법이 결코 법조문 속에 갇힌 추상적 개념이 아니며, 모든 시민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 평등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환경권, 사회적 기본권 등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헌법은 판단 기준이자 행동의 나침반으로 기능하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는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저자들은 강하게 강조한다.
특히 최근 사회적 이슈인 기후위기에 대한 헌재의 판단을 다룬 대목에서는, 국가가 국민의 환경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최소한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과잉금지 원칙'이 아닌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적용해 명확히 판단한 사례를 통해, 헌법이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생명력 있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 책은 헌법의 본질을 '끊임없는 질문'에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계속해서 갱신되고 개선되어야 할 정치 체제인 만큼, 헌법도 시대정신과 함께 변화를 모색하고, 국민이 헌법에 대해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참여와 질문의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헌법적 시민의 태도이며,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헌법은 국민을 위한 살아 있는 제도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책은 단지 법률가나 정치인, 헌법학도를 위한 전문서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에게, 헌법이 왜 존재하는지, 헌법이 나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고 응답하게 만드는 사유의 도구이자 질문의 촉발제라 할 수 있다. 분열과 갈등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헌법은 어떻게 국민을 지키는가>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헌법이 국가의 이름으로, 그리고 시민의 손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국민의 권리를 회복하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지를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헌법은 단지 과거를 반추하는 문서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사회계약으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