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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의 체크카드 사용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의 체크카드 사용 점점 늘어나고 있다. ⓒ Pixabay

며칠 전, 청소년 소비문화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의 체크카드 사용이 눈에 띄게 늘고 있으며, 이 내역을 볼 때 중·고등학생이 가장 자주 돈을 쓰는 곳은 편의점, 그다음은 매점, 음식점, 게임방, 카페 순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어디에, 어떻게 돈을 쓰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아들과 고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는 극 F 성향의 중년 아빠인 저. 저도 아이들의 용돈을 매주 통장에 입금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비슷할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며칠 전 학원에서 돌아온 고등학교 2학년 딸에게 체크카드 내역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올리브영, 코인노래방, 다이소, 편의점, 카페 등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목록 사이, 수상한 숫자들이 몇 개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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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O 32,000원, 옛호떡 18,000원, 포토O즘 12,000원, 떡볶이 35,700원, 코인노래방 15,000원' 등등.... 딸에게 물어봤습니다.

"딸, 일주일 용돈이 5만 원인데, 혹시 이걸 다 친구들한테 쏜 거야?"
"아뇨, 제가 체크카드로 한 번에 계산하고, 나중에 애들이 따로 돈 보내요."
"친구들이 다 잘 보내줘?"
"음... 줄 때도 있고 안 줄 때도 있어요. 근데 자잘한 돈은, 시간 지나면 달라고 하기도 뭐하고요."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답을 듣는 순간 제게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왜 네가 그렇게 자주 계산해? 주로 어떨 때?"
"음, 애들이 카드나 돈 없다고 할 때요. 가끔 제가 없을 땐, 다른 애들이 내기도 해요."

얘기를 들어보니 그 자리에서 바로 입금해 주는 친구도 있고, 매번 잘 안 주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딸은 아예 돈을 못 돌려받은 경우도 많다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쿨'하지만, 동시에 어찌 보면 바보가 된 것 같은 상황.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들과 동료들과 1/N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깜빡하고 돈을 주지 않는 상대에게 재촉하기 어렵다는 걸 저 또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친구들한테 달라고 말하기 불편하거나, 준다고 해놓고 돈 안 보내면 기분 나쁘지 않아?"
"그냥 제가 샀다고 생각하면 돼요."

단순한 궁금함에서 훑어본 딸아이의 체크카드 사용내역이었지만, 딸의 소비 내역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딸의 성향상 억울해하거나 상처는 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문제는 딸아이나 친구들 모두가 이러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돈을 쓸 때, 돈에 대한 감각이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윽' 한 번 긁으면 결제 뚝딱... 사라지는 현실 감각

생각해보면, 어른도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은 특히 더 현금을 직접 만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지폐도 그렇지만, 동전은 더 그렇겠죠.

우리은행이 발표한 한국 청소년의 라이프스타일 보고서 '틴즈다이어리'(Teens Diary)에 따르면 응답자의 91.4%가 용돈을 본인 명의 계좌나 선불카드로 받고 있다고 합니다. 현금으로 용돈을 받는 청소년은 6.8%에 불과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특히 더 현금을 직접 만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자료사진)
요즘 아이들은 특히 더 현금을 직접 만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자료사진) ⓒ joshappel on Unsplash

실제로 저희 아이들도 설날 세뱃돈이나, 가끔 친척에게 용돈을 받으면 바로 저한테 입금해 달라고 건넵니다. 돈은 화면 속 숫자가 되어, 게임 사이버머니처럼 쌓였다가 체크카드 몇 번 결제로 사라집니다.

돈이 얼마 남았는지 잔액 확인도 잘하지 않고, 잔돈 개념은 더더욱 없습니다. 모두가 터치 한 번으로 끝나는 소비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돈을 쓴다기보다 어디론가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모바일로 용돈을 주고 쓰는 일은 편리하지만, 딸아이 습관을 보니 고민이 깊어집니다. 돈을 직접 만지는 경험이 없으면 돈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때그때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습관을 기를 수도 없고요. 돈이 빠져나가는 게 보이지 않으니, 통화의 한계를 쉽게 체감할 수도 없습니다. 내 통장 잔고가 부족하면 다른 친구 카드로 써버리고 나중에 입금하면 그만일 테니까요.

 청소년 체크카드 사용 트렌드 변화
청소년 체크카드 사용 트렌드 변화 ⓒ 연합뉴스

최근 NH농협은행의 NH트렌드+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도 중·고등학생 1인당 연간 체크카드 결제금액이 2020년과 비교해 30%가량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소비 증가나 결제 수단의 변화가 아니라, 소비 성향 자체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체크카드는 편하기도 하고 돈의 흐름을 기록해 주지만, 돈을 대하는 감각 자체를 키워주지는 않습니다. 현금을 쓰지 않는 10대는 돈을 아끼고 모으는 방법보다 쉽게 소비하는 편의성을 먼저 배우고 있습니다.

딸이 쓰는 돈의 양보다, 돈을 쓰는 방식에 더 걱정이 큽니다. 요즘은 지갑을 반드시 들고 다닐 일도 없고, 체크와 신용카드 한 장이면 다 되니 전보다 편해진 세상 맞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편리함을 누리고 있죠. 하지만 어른들은 현금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충분히 익힌 뒤일 경우라, 아이들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현시대 아이들의 소비가 아예 카드로부터 시작되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현금을 대하는 마음, 돈을 아끼는 습관, 계산 감각이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지 우려됩니다. 이대로 괜찮은지도요. 친구들에게 푼돈은 안 받아도 그만인 인식이 당연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부모가 함께 만드는 자율과 책임의 균형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돈을 쓰는 경험, 중요합니다. 저축하는 습관과 성취감, 불필요한 물건을 샀다가 후회하는 경험, 한번에 용돈을 쓰고 곤란해지는 경험도 모두 합리적인 소비 습관, 경제 개념을 키우는 과정일 겁니다.

잘못된 소비 습관 무엇이든 물어보살 한 장면
잘못된 소비 습관무엇이든 물어보살 한 장면 ⓒ KBS Joy 예능 '무엇이든 물어보살'

다른 부모들도 그렇겠습니다만 제가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건, 필요에 의해서기도 하지만 자율성을 키워주기 위해서입니다. 아이의 소비를 신뢰하는 한편, 스스로 쓰는 돈에 책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하지만 딸과 함께 살펴본 명세서는 그저 단순한 소비 기록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와도 같았습니다. 자율성이라기보다는 눈치와 배려의 결과물이기도 했습니다.

체크카드의 편리함이 무감각한 소비로만 이어지지 않도록, 아이들이 책임과 자율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입니다.

"딸, 다음부터는 친구들한테 각자 내거나 현금을 모아서 내자고 해. 돈 문제로 트러블 생길 수도 있고, 아빠는 못 받는 돈도 너무 아까워. 그리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모자나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방치하지 말고, 꼭 환불해. 당장 필요하지 않거나 애매한 것들은 일단 지르지 말고, 직접 가서 보고 사도록 하고."

이 글은 디지털 시대, 아이들이 돈의 가치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아빠의 고민입니다. 앞으로는 '돈 쓰는 법'에 대해 더 자주 얘기 나눠 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카드를 자주 쓰고 현금을 안 쓰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일 겁니다. 하지만 벌어보지 않은 채로, 돈을 화폐를 통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끼며 쓰는 감각' 자체가 사라지면, 아이들은 돈을 마치 손가락 사이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그냥 방치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디로 흘려보내는지도 모르는 채 흘려보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요.

부모는 아이에게 돈을 '얼마' 주는 사람일 뿐 아니라, '어떻게 잘 써야 하는가'를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매달 소비 내역을 함께 보며 잘한 소비와 후회하는 소비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는 것. 가끔은 현금을 쓰고 남는 잔돈 모으는 일을 함께 실천해 보는 것. 기다려서 사고, 비교해서 고르는 태도 등을 함께 만들어 가는 모든 과정이 바로 일상 속 경제 교육이 아닐까요? 딸과 함께 얘기하다 생각해본 이번 일의 교훈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카카오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청소년소비습관#청소년체크카드#청소년경제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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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이 (hani1977) 내방

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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