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21대 대통령선거 선거공보와 투표 안내문이 집으로 도착했다. 남편, 나, 그리고 이제 막 만 18세가 된 아들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투표안내문 용지를 들여다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 아이도 드디어 유권자가 되었구나.' 2007년, 황금돼지띠 해에 태어나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시작된 생이, 이제는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투표안내문,선거공보투표안내문,선거공보 ⓒ 이소향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제21대 대선에서는 만 18세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약 5%에 달한다. 이들은 흔히 'Z세대'로 분류되는 세대로,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기존의 정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감수성과 비판 의식을 가진 세대로 주목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공약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 '현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유권자가 된 아이들의 현실은 기대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내 아이의 하루 역시 그러했다. 아침 7시 등교, 수업 시간 내내 졸음과 싸우며 내신을 관리하고, 방과 후엔 곧장 학원으로 향한다. 일주일에 6일, 국·영·수에 과학, 제2외국어까지 이어지는 학원 일정과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모의고사, 수행평가, 생기부(생활기록부) 관리를 위한 각종 비교과 활동까지. 한국의 고등학생은 학습 노동자이자 입시 경주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하루는 투표나 정치에 대한 고민보다는 "오늘은 몇 시에 자야 내일 덜 지칠까"와 같은 생존의 문제에 훨씬 더 가깝다.
교육부의 '고등학교 교육과정 운영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 지역 고등학생의 평균 학습 시간은 하루 11시간을 넘는다. 그 중 자율적인 탐구나 시사·사회 문제에 대한 학습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입시 중심 교육체제 속에서 '정치'는 종종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분류되며,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공론장이나 비판적 시민 교육의 기회가 여전히 부족하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만 18세의 유권자들이 '합리적이고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리길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구조적으로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손에 쥐었다. 그는 단지 아직 말할 시간이 부족했을 뿐, 생각하지 않는 존재는 아니다. 지금은 바쁜 하루를 살아내느라 조용한 시민일지라도, 언젠가 이 사회의 방향을 바꿀 결정을 내리는 목소리로 성장할 수 있기를, 부모로서 나는 희망한다.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생회와 방송부 활동을 병행했다. 단순한 '스펙 쌓기'가 아니었다. 교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또래들과 소통하며 협력하는 과정 자체가 그에겐 살아 있는 '시민 교육'이었다. 점심시간을 쪼개어 회의에 참여하고, 방송부실에서 친구들과 나누던 날 것의 대화들, 매주 아침 조회 방송을 위해 학교의 주요 이슈를 정리해 대본을 작성하던 시간들은 모두 그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는 일. 그것은 그의 삶에 자율성과 책임감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하지만 2학기 중반, 그는 결국 활동을 내려놓았다. 매주 쏟아지는 수행평가 일정, 모의고사와 내신 준비, 방과 후 학원 수업과 과제까지 겹치자 하루 24시간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회의 도중에도 졸음을 참기 바빴고, 대본을 쓸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학생회 활동도, 방송부 대본도,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은 안 되는 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의 경험은 개인적인 아쉬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 참여의 싹이 자라기도 전에, 과도한 학업 경쟁과 시간 부족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시민 경험과 참여 기회를 체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자율'과 '참여'를 강조하는 교육 담론과 현실의 괴리가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러한 현실은 교육부가 2023년 발표한 '학생 민주시민 교육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전국 고등학생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해당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1.4%가 '학교에서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해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학생들의 민주시민 역량을 길러줄 수 있는 토론, 모의 선거, 정책 제안 활동 등도 대부분 '시간 부족'과 '입시 부담'을 이유로 학교에서 활발히 운영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사회과 과목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학교와 교사의 재량에 따라 정치·사회 주제의 수업 편성이 크게 달라진다. 입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민주시민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결과적으로, 법적으로는 '유권자'가 된 18세 청소년들이 실질적인 정치적 역량이나 판단력을 기를 기회는 구조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아들이 학생회에서 했던 경험, 방송부 대본을 작성하며 고민했던 문제의식은 분명 그를 자라게 한 씨앗이었다. 하지만 그 씨앗이 싹트고 뿌리내릴 시간을, 지금의 교육 현실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교실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정치는 어른들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는 결국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일이자, 우리 모두의 삶에 깊이 닿아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훈련장은 어디여야 할까? 바로 교실이다. 교실은 민주주의가 처음 숨 쉬어야 할 공간이자, 가장 작은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교실은 그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고등학교에서 '참정권'을 배운다는 것은 주로 시험을 위한 정의를 암기하는 일에 그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문장을 외우지만, 정작 그 꽃을 피우기 위한 토양이 되는 '참여의 경험'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들은 교과서 속 정치제도를 익히지만, 실제로 자신의 목소리가 학교 안에서 의미 있게 반영된다는 경험은 거의 하지 못한다.
학생 자치기구는 형식적으로 존재하되 실질적 권한은 제한적이며, 학교 운영에 대한 학생의 참여는 '절차적 동의'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수업 중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나 토론의 기회는 시험 대비와 진도 걱정에 밀려 사라지기 일쑤다. '정치'는 여전히 '위험한 주제'로 간주되며, 교실에서 나누기엔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운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청소년이 민주주의를 체화하기란 어렵다. 정치가 삶의 언어로 이어지지 못할 때, 참정권은 권리가 아니라 형식에 그친다. 경험 없는 권리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아이들이 단지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조율하며 사회적 의사결정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교실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025년, 입시 위주 교육과 민주 시민성의 부재
2025년의 교실은 디지털 기기와 AI 기반 학습 시스템이 일부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중심엔 '성적'이 자리하고 있다. 학생부는 여전히 '결과' 중심이고, 진로보다는 진학이 우선이며, 실패는 금기시된다. 고등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지만, 지금 학교는 오히려 사회의 모순을 농축한 공간처럼 보인다. 한 조사에서 청소년의 60% 이상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냉소가 아닌, 참여할 시간과 기회가 부족한 현실에 대한 피로감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말한다.
"정치요?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그 냉소는 무관심이 아니라, 기대조차 해본 적 없는 현실에서 비롯된 피로다. 시간에 쫓기고 경쟁에 지친 아이들에게 정치란 '나의 일'이 되기 어렵다.
존 듀이는 민주주의를 단순한 투표 행위가 아닌, 일상에서 토론하고 협력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민주주의가 교실과 가정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교실 안에서, 가정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살아있는 경험으로 만들어줘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투표는 권리'가 아닌 '의무'처럼 느껴지는 현실
오늘날 청소년에게 투표란, 설렘이나 자율적 참여의 경험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의 세계에 등 떠밀려 진입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제 너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라는 말은 그 자체로 환영받아야 할 성인의 증표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막막함이나 부담으로 다가온다. 입시 일정에 치이고, 성적에 따라 삶의 궤도가 결정되는 교육 시스템 속에서 '정치적 판단'은 여유가 아닌 사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공정'이라는 단어가 점점 힘을 잃고 있다. 교육격차는 디지털 정보 접근성, 사교육 기회, 가정의 경제·문화자본을 기준으로 구조화되고 있으며, 이는 통계청과 한국교육개발원 등의 다수 보고서에서 꾸준히 지적되어 온 현실이다. '기회는 평등하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건, 실제로 기회의 질과 접근성이 계층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학생회는 더 이상 리더십을 기르는 자율적 장이 아니라,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는 부담으로 인식되기 쉽다.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질문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토론하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학습 환경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학교가 '표준화된 결과물'을 요구하는 평가 시스템에 묶인 이상, 정치는 멀고, 현실은 너무나 촘촘하게 얽혀 있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투표는 '권리'라기보다 '의무'처럼 다가온다. 한 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이상적일 수 있으나, 그 전에 "그 한 표를 온전히 이해하고 행사할 시간과 여유는 있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정치적 효능감'—즉, 자신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결여된 상태에서의 투표는 실질적 민주주의라 보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그 한 표가 가진 가치를 절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정치의 방향은, 청소년의 삶을 향해야 한다. 교실 안에서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구현될 때, 아이들은 투표를 통해 변화를 요구할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학생회, 동아리, 교내 자치활동, 토론 수업, 실패를 허용하는 교육 환경, 다양성이 존중받는 학교 문화—이 모든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는 토양이다. 정치가 이 교육 구조에 개입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교육정책 개선을 넘어 다음 세대에 대한 진정한 책임의 실현이다. 더 많은 참여와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어른들이 감당해야 할 의무다.

▲투표장으로투표장으로 들어가는 모습 ⓒ 이소향

▲투표인증제21대 대통령선거 투표인증 ⓒ 이소향
변화는 정치와 교육,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가 바뀔 때 가능하다
2025년 6월 3일 아침 6시, 우리는 아파트 바로 옆 중학교 투표소로 함께 걸었다. 아들과 나, 그리고 남편. 익숙한 동네 길이었지만, 아들의 첫 투표를 앞둔 발걸음은 묵직했다.
"긴장 돼?" 조심스레 묻자, 아들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기표소로 들어가는 뒷모습은 낯설면서도 대견했다. 우리는 조용히 서로의 눈빛을 마주쳤다. '이제 아이도 시민이구나' 하는 마음이 가슴에 차올랐다. 투표를 마친 아들은 곧장 독서실로 향했다.
"내일 모의고사 준비해야 해."
일상으로 돌아간 그의 뒷모습이 쓸쓸하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후보자들은 "당신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고 외친다. 하지만 그 다음 날, 6월 모의고사는 어김없이 치러진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아이들의 일상은 여전히 '수능'과 '입시'라는 무게에 눌려 있다. 세상이 변해도, 이 현실 만큼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진짜 변화를 원한다면, 정치도 교육도, 그리고 우리 삶의 우선순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지는 그날까지, 한 표는 멈추지 않는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정치란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묻는 일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