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변 사법센터 법원개혁소위원회 부소위원장 여연심 변호사는 28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대법관 증원 요구를 두고 "당연히 필요하다"며 "민변과 대한변협이 일치해서 요구하는 몇 안 되는 의제 중 하나"라고도 했다. ⓒ 이정민
더불어민주당이 28일 공개한 이재명 대통령 후보 공약집에서 대법관 증원을 약속했다. 비법조인 대법관 자격화(박범계 의원안), 100명으로 증원(장경태 의원안) 등 논란이 불거졌던 법안은 철회했지만, 아직 살아있는 '30명 증원안(김용민 의원안)'도 있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대법관 증원이 빠르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 법원개혁소위원회 부소위원장 여연심 변호사는 대법관 증원에 대해 "당연히 필요하다"는 쪽이다. "민변과 대한변협이 일치해서 요구하는 몇 안 되는 의제 중 하나"라고도 했다.
그런데 여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서초구 사무실에서 이뤄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고민"이란 단어를 수차례 썼다. 대법관 숫자부터 선발하는 방식, 다양성 문제 등 놓치지 말아야 할 쟁점들이 너무 많아서다. 여 변호사는 "지금 나온 법안들은 그 고민은 없는 상태에서 '일단 인원을 늘려보자'는 식이라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원개혁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재판소원(헌법재판소가 법원 판결을 취소할 수 있는 제도) 또한 섬세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 제도들은 시민사회계가 줄곧 요구해왔지만 그동안 좀처럼 동력을 얻지 못했다. 입법, 행정과 달리 사법은 독립성이 워낙 강조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범한 시민들에게 법원은 '거리가 너무 먼 딴 세상'인 측면도 분명 사법개혁의 동력이 잘 형성되지 않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5월 1일 대법원의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 환송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딴 세상 일'이 '이 세상 일'로 넘어왔다.
아직 여기저기 구멍이 많다. 치밀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매우 중대한 사법불신을 초래했다는 것을 법원에서 알아야 한다"면서 "'(현재 논의에는 법원을) 견제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나아가 새 정부가 차분하게 개혁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중대한 사법불신 초래했다는 것 법원이 알아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후폭풍이 크다. 한 현직 판사는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까지 요구했다. <오마이뉴스> 여론조사 결과 공감한다는 의견이 50% 가깝게 나왔다.
"특정 판결을 이유로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상황이 너무 놀랍고 충격적이다. 사퇴해야 한다/아니다를 떠나서, 이번 판결이 매우 중대한 사법불신을 초래했다는 것을 법원이 알아야 한다. '우리는 판결을 했을 뿐인데 재판독립을 침해하는 시도다'라고만 치부할 게 아니다. 이런저런 법안 제안에, 사퇴하라는 요구도 나오고, 저는 좀 과하다고 생각하지만 특검 주장까지 있는데, 전부 다 이번 판결에서 비롯됐다."
- 특검에 대해서는 지난 23일 민변 사법센터 차원에서도 "사법권 남용의 구조적 원인을 진단"해야 한다고 반대 논평을 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원론적으로만 맞는 거 아닌가.
"사법농단 때는 더 밝혀야 될 사실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많았고, 실제 수사로 이것저것 많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 결과가 사법개혁에 도움이 됐나? 아니었다. '수사가 끝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이들이 많아서 징계도 제대로 안 되고, 탄핵도 안 되고, (2019년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형사재판은 최근에야 1심이 끝났다. 그 사이 국회의원이 바뀌고, 관심도 다 멀어졌다.
그리고 이게 의문이다. 특검은 무엇을 밝혀야 되나? 사건이 언제 접수돼 어떻게 합의했는지 등은 대부분 공개됐다. 사람들은 '내심 이런 얘기한 거 아냐'가 궁금한데, 이건 수사로 밝혀지기 어렵다. 또 법원조직법은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못하도록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있다(65조). 이 합의 내용을 검찰이나 경찰이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나라 사법제도를 위해 좋은가. 이 역시 고민이다."
법원 견제할 방법은 무엇인가

▲민변 사법센터 법원개혁소위 부소위원장 여연심 변호사는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사법개혁의 연관성을 두고 "다만 논의를 들여다보면, '법원이 너무 판결의 권한을 남용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며 "대법원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대법원 힘빼기'로 보여 좋아할 수 없다. 그렇지만 '(법원을) 견제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 이정민
- 사법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중이다. 현재 초점은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 도입에 맞춰져 있다.
"대법관 증원은 당연히 필요하다. 재야에선 늘 요구해왔다. (진보성향) 민변과 (변호사 전체를 대표하는) 대한변협이 일치해서 요구하는 몇 안 되는 의제 중 하나일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몇 명을 증원해야 하나'도 있고, '증원하더라도 지금처럼 그냥 판사를 20년, 30년 한 사람들이 대법관이 되는 방식이 좋은가'도 고민이다. 그러니까 증원과 함께 사법개혁에서 굉장히,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법관의 다양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 나온 법안들은 그 고민은 없는 상태에서 '일단 인원을 늘려보자'는 식이라 우려스럽다.
또 (현행 헌법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이 제청하게 하고 있다. 늘어난 대법관 상당수를 어떻게든 재야에서 채우려고 노력해도, 법원 출신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순수 재야 출신 대법관은 김선수 단 한 명이었다. (다른 고민 없이) 대법관 숫자만 늘어난다면, 대법원장의 권한은 얼마나 강해지겠나.
재판소원은 제한적 범위에서 적극 논의해야 하는 문제다. 세부적인 제도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재판을 취소할 수 있다면 기존 확정판결의 효력은? 집행력 있는 판결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설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것을 설계를 안 하고 (법만 만들어서 기관에) 맡겨두지 않나. 그러면 안 된다. 또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는 많이 숙고해야 한다. 일반적인 재판소원을 허용하면 4심제처럼 된다. 그러면 전체 사법구조를 바꿔야 한다."
- 이재명 후보 판결 문제와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이 직접 연결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저도 '5월 1일 판결의 충격이 왜 사법개혁과 연결될까'를 딱 정리하지 못한 면이 있다. 다만 논의를 들여다보면, '법원이 너무 판결의 권한을 남용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 (대법관) 숫자가 적어서 권한이 집중됐을 테니 숫자를 늘리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면 너무 이상한 판결은 안 나오지 않을까? 대법관들이 최종심급이라 이상한 판결을 하는 걸까? 그러면 4심제를 하면 어떨까? 이런 식으로 연결된다.
대법원으로서는 이 모든 것이 '대법원 힘빼기'로 보여 좋아할 수 없다. 그렇지만 '(법원을) 견제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점검해보고, 개선 방안을 둬야 한다."
- 민주당은 비법조인 출신 대법관까지 포함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내놨다가 철회했다. 그런데 고위법관들이 소위 서오남(서울대·50·남성) 일색이고, 심지어 현재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모두 다 판사 출신이다. 다양성 차원에서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대법관을 늘려서 심리를 충실하게 하자'고 하지 않나. 여기에는 대법원이 개별 사건을 충실히 심리하는 기관이길 바라는 마음도 꽤 있다. 그런데 법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그걸 할 수 있을까? 3심은 법관의 1, 2심 판결에 오류가 있는지를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찾겠나. 만약 하급심에서 거의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대법원은 그야말로 국가의 경제, 외교 등을 두고 중요한 결정을 한다면, 법조인이 아닌 시민도 참여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사법의 상(像)하고도 연결된다. 일단 '상'을 정리해야 그 다음으로 나아간다."
"왜 법원만 '안에서 잘하세요' 해야 하나"

▲민변 사법센터 법원개혁소위원회 부소위원장 여연심 변호사는 "외부 견제가 적절히 작동해야 된다"며 "왜 다른 기관들은 서로 견제하는데 법원만 '안에서 잘하세요'라고 놔둬야 하나"라고 짚었다. 사진은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전경. ⓒ 이정민
- 지난 2018~2020년 비판사 출신 노동 전담 재판연구관으로 대법원에서 근무했다. 상고사건의 실제 처리 과정은 어떠한가.
"크게 신건과 심층사건으로 나누는데 신건의 경우 사실관계와 법리 요약, 심리불속행(상고사건을 별도의 심리 없이 기각, 판결을 확정) 사유가 있는지 없는지 등에 관한 연구관의 견해 등을 정리하는 보고서를 한 달에 여러 건 쓴다. 심층사건은 대법원이 판결해야 되는 사건들인데 늘 쌓여있다. 근로조에는 노동 쟁점이 오는데, 보통 한두 달 내에 한 사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보고서를 써서 대법관에게 보고한다."
-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4년 대법원이 접수한 본안소송만 3만 7669건이더라.
"노동사건의 경우 주로 행정사건인데 민·형사도 있어서 통계를 알 수 없지만, 엄청 했다. 연구관들이 100명 넘으니까 (사건을) 나눠서 열심히 한다. 특히 신건 하는 분들은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주말 없이 나와서 밤늦게까지 일한다. 그런데 대법관 수에 비해서 사건이 너무 많다.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저한테 시키면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다. 주말도 없고, 휴가도 거의 못 간다. 그래서 공격이 들어오면 그만큼 억울할 거다."
- 대법원은 물론 법원 전체를 좀더 이해하게 된 건가.
"변호사로서 하급심을 정말 잘해야겠더라. 절차 진행에 만족하고, 판결문도 설득력 있게 잘 쓰이면 상고를 잘 안 한다. 상고사건 수를 줄이는 것도 목표가 될 수 있지만, 1·2심을 충실화해서 당사자들이 '상고 안 해도 나는 우리나라 사법체계 속에서 충분히 다퉜다'는 느낌을 받게 해줘야 한다. 저는 토론회에서 '대법관 늘릴 돈을 판사 늘리는 데에 써야 된다'고도 말했다. 하급심을 충실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제일 시급하다."
- 법원을 더 이해한 만큼 법원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 역시 더 깊어졌을 것 같다.
"외부 견제가 적절히 작동해야 된다. 왜 다른 기관들은 서로 견제하는데 법원만 '안에서 잘하세요'라고 놔둬야 하나. 또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게 잘 안 되니까 사람들이 법왜곡죄라는 대안을 생각하는 거다. 최근 제주지법에서 피고인 최후 진술 후 곧바로 선고하고, 재판장이 방청객에게 '한숨도 쉬지 마라'고 하지 않았나. 너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 제기를 하면 법원은 '개별 재판에 대한 것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반응한다. 워낙 그러니까 변호사단체에서 법관평가를 만든 거다. 법원도 법관의 책임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징계든 인사든 외부화 하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개혁, 좋은 뜻 가진 내부 사람들과 함께 가야"
- 26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임시소집됐지만, 대선 이후로 논의를 미뤘다. 정치적 논란을 피하려는 모습이 수긍가면서도 '법원 스스로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데.
"그래서 (법원개혁) 시도를 해봐야 한다. 사실 법원은 사건이 들어오면, 한다. 그래서 잘 판단할 수 있게 독립을 지켜주려고 했더니 이를 이용해 권한을 남용했다. '자정작용만 해라' 이럴 일은 분명히 아니다. 다만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리고 어떤 기구든 개혁을 할 때는 좋은 뜻을 가진 내부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 모든 개혁의 기본 원칙이다."
- 한편으로는 '민주당이 너무 법원을 적대시하는 것 아니냐'고 보는 이들도 있다.
"너무 걱정된다. 이렇게 하면 판사들도 민주당이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정치세력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매우 안 좋은 신호다. 그런데 판사들이 나서서 뭐라뭐라 하지 않으니까 민변 같은 단체들이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 국회도 그동안 법원개혁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지난해 9월에는 오히려 법관 자격을 '경력 10년 이상 법조인'에서 '경력 5년'으로 줄이는 법안을 처리해 '법관 구성 다양화'라는 법조일원화 제도의 취지를 퇴보시켰다. 사법농단 후속대책도 제대로 입법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이탄희·백혜련 의원 등이 냈던 좋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많았다. 민주당이 이 법안들을 논의조차 하지 않고 묻은 것이 너무 아쉽다. 솔직히 그 뒤로는 (법원개혁의) 동력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매우 의외의 상황에서 사법개혁 논의가 나왔다. 어리둥절 하지만 개혁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는 '재판권 남용도 있지 않나'라는 의문까지 생겼으니, 이 힘을 잘 이용해서 잘 했으면 좋겠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사개추위(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같은 기구를 세워서 법원 내부 목소리도 많이 담아 수용성 있고 꼭 필요한 개혁안들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노무현 정부의 사개추위는 큰 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용훈 대법원장 카운터 파트여서 가능했던 것 아닌가. 현재 가장 유력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이재명-조희대 그림인데, 가능할까.
"노무현 정부 사개추위도 최초 논의와 합의는 최종영 대법원장과 했다. 새 대통령이 누가 되든 임기 중에 어차피 대법원장이 바뀐다(법원조직법상 정년이 만 70세여서 조 대법원장 임기는 2027년 6월까지다 - 기자 주). 제도적으로 옳은 방향에 대법원장 개인이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논의를 포기하면 안된다."

▲민변 사법센터 법원개혁소위 부소위원장 여연심 변호사는 28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새 대통령이 누가 되든 임기 중에 어차피 대법원장이 바뀐다"며 "제도적으로 옳은 방향에 대법원장 개인이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논의를 포기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 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