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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권영국 민주노동당·김문수 국민의힘·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권영국 민주노동당·김문수 국민의힘·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세 번의 TV방송 토론회를 모두 보았다. 첫 회를 본 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래도 '혹시나, 2차 토론회는 1차보다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2차를 보았는데 '역시나, 보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또, 혹시나 이번에는 다를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3차 토론회까지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역시나, 보지도, 듣지도 말 것을... 눈만 버리고, 귀만 더러워졌다'고 한탄 중이다. 어떻게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토론 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 될까 탄식이 나온다. 내용도 문제였고, 태도는 더 문제였으며, 가장 기초적인 토론의 규칙도 안 지키고,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나는 교사로서 평소 학생들에게 '비록 투표권은 아직 없지만, 그래도 정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세 번의 방송 토론을 보면서 후회한다.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아예 '투표권이 없는 학생, 청소년, 19세 이하는 시청 금지'를 제도화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자막으로 '19금'이라고 표시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한다.

이런 막말을 대통령 토론회에서 듣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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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조폭 양아치들이나 시정잡배들의 싸움에서도 듣기 힘든 말을 온 국민들, 유치원생도 시청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를 뽑기 위한 공식 토론회에서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여기 다시 옮기지 않겠다. 한 번도 아니고 토론회 내내 이런 소음 공해 수준의 언사들을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특히, 우리 청소년, 학생 중에도 이 토론회를 보는 친구들이 있을 텐데 귀를 막아주고, 눈을 가려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학생들에게 수학여행은 재미고 추억이지만, 교사들에게 수학여행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다. 그러니까 '무사고'가, 아니,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걸로 성공이다. 이 무사고와 관련하여 수학여행, 특히, 남자 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에는 소위 '요주의 학생들'이 있다.

나 역시 담임으로서 3일의 수학여행 기간 내내 우리 반의 소위 '요주의 4인방' 학생들과 같은 버스, 바로 옆 좌석에 앉아서 동행했고, 숙소에서도 이 친구들이 묵는 방을 수시로 노크하고,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이 친구들과 며칠을 함께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욕을 입에 달고 산다'는 것이다. 몇 마디 건너서 욕설을 섞어서 말한다. 바로 옆에 담임 교사가 함께 있는데도 이 정도이니 없을 땐 훨씬 더할 것이다. 욕설을 욕설로 인식하지 않고 그냥 강조 부사나 감탄사 정도로 알고 쓴다는 느낌이었다.

수학여행 내내 이 학생들에게 '입에 걸레를 물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을 좀 곱게 하자'라고 훈계(?)했다. 그런데, 어제 방송토론회를 보면서 이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대통령 선거 토론회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방송토론회에서까지 이 지경인데 어떻게 학생들에게 욕설이 어쩌고, 바른 말이 어쩌고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참사(慘事), 참극(慘劇) 외에 달리 적당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참극에 대해서 더 이상 입에 올리기도 민망하니 이쯤 한다. 국민들이 판단하겠지. 당사자도 사과했다고 뉴스에 나온다. 그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교사로서 아이들 보기 민망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끼어들기, 말 자르기, 규칙 위반... 토론회인지 연설회인지

현재 담임과 교과 수업 외에 몇 년째 동아리로 시사토론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교육, 정치를 비롯한 국내외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직접 학습자료를 준비하고, 이를 통해서 기초 학습을 한 후 본격적인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학습과 토론의 주제 선정도 학생들이 하고, 토론 진행도 학생이 하고, 토론자도 당연히 학생이다.

지도교사로서 첫 시간에 늘 이런 말을 한다.

"변화가능성과 개방성, 수용성이 토론의 전제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토론의 과정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거나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있으면 내 의견을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역으로 상대 토론자 역시 나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고, 자기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면 자기 의견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토론에서 내 의견을 조리있게 설파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개방적 자세가 중요하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토론이라는 것은 성립될 수 않으며, 그냥 말싸움일 뿐이다. 시간 낭비이고, 감정 낭비일 뿐이다."

그런데, 이번 3차에 걸친 대선 토론은 이런 토론의 기본 전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었다.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들, 최고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토론 수준이 이 정도임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누구를 지지하고를 떠나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스트레스와 짜증만 쌓이게 하는 시간이었다. 시간 낭비이고 감정 낭비의 시간일 뿐이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하나하나 누구의 이야기인지 거명하지 않겠다. 누구랄 것도 없이, 토론회를 지켜본 국민들이면 누구를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근거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일방적인 주장들만 난무했고, 다른 후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최소 2명 이상에 질문, 답변 시간 최소 30초 보장'이라는 최소한의 기본 규칙도 지키지 않았다. 한 후보에게만 일방적으로 비방과 질문을 쏟아붓고는 다른 후보에게는 답변할 시간 자체를 주지 않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다른 후보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느라고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누구 말처럼 '토론인지, 연설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던 후보도 있었다. 다른 토론자의 발언 중에 끼어들어서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토론 주제에 맞지도 않는 상대 비방에 거의 모든 시간을 써버리는 후보도 있었고, 상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엉뚱한 자기 주장만 쏟아내는 후보도 있었다.

만약 내가 운영하는 고등학교 시사토론반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나는 당장 그 동아리 멤버에게 "동아리를 잘못 찾아온 것 같다. 토론반 동아리 대신 다른 동아리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을 것이다. 세 번 연속으로 이런 일이 시사토론 동아리에서 벌어졌다면 나는 "시사토론 동아리는 존재 목적을 상실하고 기본 전제가 부정되고 있어 더 이상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동아리 해체 선언을 했을 것이다. 해체까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이런 시사토론반이라면 더 이상 시사토론반 지도교사를 맡지 않겠다고 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이번 대선토론회는 학생들에게 보여주기가 민망할 정도로 수준 미달의 토론회였다. 아니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이런 식으로 토론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의 사례로 이보다 더 완벽한(?) 토론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한다.

구시대의 망령 빨갱이, 공산당 타령 언제까지

이번 토론에서 여전히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있었다. 구시대의 망령, '빨갱이, 공산당' 타령이다. 토론장 밖 거리에서 공공연히 빨갱이, 공산당 타령이 넘친다. 이제는 화교가 어떻고, 중국 간첩이 어떻고 하면서 특정 국가와 국가 출신 국민들에 대한 혐오까지 판치고 있다. 모든 중국인을 간첩이라면서 꺼지라고 하고, 화교들까지 나가라고 하고, 이들은 때려도, 심지어 죽여도 된다고 떠들고 다니는 판이다.

토론장밖에서뿐 아니라 이번 대선 방송 토론장 안으로까지 이 논란을 끌어들였다. 특정 국가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찬반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친중'이니 '친북'이니 하는 특정 국가나 특정 세력에 대한 찬반으로 환원해 버리면 심각한 혐오가 발생한다.

중국의 외교 정책이나 동북공정 같은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이야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모든 것을 묶어서 "너 친중이지?"라는 질문에 답하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치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도 대단히 부적절하다.

TV에 연일 나오고 있는 이연복씨와 같은 중국 요리사들을 모두 내쫓을 것인가? 가수 주현미나 배우 하희라 같은 화교 연예인이 우리 국민들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국적까지 바꾸며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헌신했던 배구선수 후인정에게 태극기를 가슴에 달아준 것은 누구인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중국인이나 화교, 조선족 등은 학교뿐 아니라 우리 주변 곳곳에 있다. 이들을 모두 중국 간첩으로 몰고, 이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짓이 아니다. 특히, 정치인들은 절대로 이러면 안 된다. 편승해서도 안 된다.

이런 논리라면 반대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연예인이나 사업가, 나아가 중국 여행 가는 사람들이 모두 중국에서 쫓겨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중국과 그런 관계를 원하는가?

 2025년 2월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이화인’ 주최 탄핵반대 시국선언이 예정된 가운데, 윤석열 지지자들이 ‘부정선거’’ STOP THE STEAL’ ‘반국가세력 척결’ ‘빨갱이는 죽여도돼’ ‘중국공산당 반대’ 등이적힌 피켓과 태극기, 성조기를 들고 출입이 통제된 정문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5년 2월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이화인’ 주최 탄핵반대 시국선언이 예정된 가운데, 윤석열 지지자들이 ‘부정선거’’ STOP THE STEAL’ ‘반국가세력 척결’ ‘빨갱이는 죽여도돼’ ‘중국공산당 반대’ 등이적힌 피켓과 태극기, 성조기를 들고 출입이 통제된 정문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2025년 1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내란 우두머리와 직권남용 혐의로 긴급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된 가운데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부 참가자들이 'CHINA OUT!' 'CCP(중국공산당) OUT!' 등 반중국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2025년 1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내란 우두머리와 직권남용 혐의로 긴급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된 가운데 지지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부 참가자들이 'CHINA OUT!' 'CCP(중국공산당) OUT!' 등 반중국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빨갱이, 공산당 어쩌고 하는 타령이 이와 조금도 달라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생소한 '루카스 차이제'라는 사람이 있나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름이 방송토론회에서 연달아 등장한다. 2차 토론회에서 처음 언급되었을 때는 별로 문제가 아닌 듯했다. 그런데 3차 토론회에서 이 사람이 독일 공산당 기관지 편집장을 지낸 공산당원이자 공산주의자라는 것이 이준석 후보에 의해서 언급되면서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대한민국 정치사의 비극이자, 보수 우익의 전가의 보도 '빨갱이 타령', '공산당 타령'으로 불리는 색깔론이다.

이재명 후보가 이 사람을 인용한 것을 두고 그가 공산당 출신이라는 것을 근거로 이재명 후보에게 색깔론을 입히려는 의도임이 명백해 보인다. 이재명 후보의 호텔경제학인지 뭔지를 내용적으로 비판하면 되고, 그가 인용한 루카스 차이제라는 사람의 이론이 틀렸음을 설명하면 되는데 굳이 공산당 기관지 어떻고, 공산주의자 철학이 어떻고를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고 본다.

그나마 이준석이라는 젊은 보수 정치인이 대한민국의 기존 정통 보수, 수구 정치세력과 가장 다른 큰 장점 중의 하나가 빨갱이 몰이, 즉 색깔론으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그 장점마저 스스로 던져버린 건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차라리 김문수 후보가 그랬다면 우리 국민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젊은 혁신 보수를 주창하던 이준석 후보가 당사자라는 점이 대한민국의 정치 수준을 다시 30~40년 전 수준으로 뒷걸음질 치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삶을 산 여성의 대명사로 교과서에까지 실린 헬렌 켈러와 그의 스승 앤 설리번, 인류 예술사에서 위대한 미술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파블로 피카소, <노인과 바다>의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눈먼 자들의 도시>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포르투갈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주제 사마라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이 모두 공산당(사회당) 당원이거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을 방송, 책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만나고 있으며, 누구도 이들이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이들 또는 이들의 나라를 배척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사실조차 대부분 알지 못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홍범도 장군 역시 소련 공산당(볼셰비키) 당원이었으며, 그가 레닌으로부터 받았다는 권총을 평생 자랑스럽게 소지하고 있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독립운동가이다. 소련 공산당원이나 레닌 권총 선물 여부가 이런 명백한 사실을 바꿀 수 없다. 바꿔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인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은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승만이다. 그와 동시에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가 이동휘라는 분인데 이 분은 한민족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의 설립자이며 볼셰비키 추종자에 사회주의자였다. 이후 노선 차이로 안창호 등과 같이 임시정부를 탈퇴했지만 그가 상해임시정부의 국무총리였음은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런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라는 최고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가 공산주의자였음에도.

이보다 더 유명한 예가 바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위종 열사이다. 이위종 열사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외국어에 능통하여 헤이그에서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모인 만국평화회의에서 대한제국 특사의 대표로 실질적인 활약을 했다.

만국평화회의에서 기대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채로 이준 열사는 현장에서 서거하였고, 이상설 열사는 연해주로 돌아와 독립운동 중 사망하였다. 이위종 열사는 돌아오지 않았고 러시아로 가서 소련공산당인 볼셰비키에 가입하고 소련 공산당의 군대인 적군 장교가 되어서 적백 내전에 참전하였다. 이위종 열사 역시 공산주의자이자 소련군 장교였지만 부정할 수 없는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가 최고의 예우로 수여하는 훈장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특이하게, 그는 소련 정부로부터도 적기 훈장을 받기도 했다.

헬렌 켈러나 앤 설리번이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교과서나 위인전에서 파낼 것인가? 파블로 피카소가 공산당원이었다고 그의 그림을 미술관에서, 교과서에서 지울 것인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주제 사마라구가 공산주의를 옹호했다고 그들의 노벨상을 박탈하라 할 것인가?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헤이그 특사의 실질적인 대표 이위종 등 자랑스러운 대한독립 운동가들이 공산당원이거나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수여한 대한민국 훈장을 박탈하자는 주장에 동조할 것인가?

우리는 빨갱이 타령, 공산주의 타령, 색깔론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이런 색깔론과 선을 그어야 한다. 진영간의 정치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철 지난 색깔론만큼 정치 양극화에 치명적인 화약고는 없다.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진보정당에 대한 빨갱이 어쩌고 발언이나 루카스 차이제 공산주의자 어쩌고 하는 발언이 이런 색깔론 망령을 다시 우리 정치판으로 불러내는 방아쇠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상교육, 8시간 노동제, 아동 야간노동금지, 누진세 제도, 국립은행(한국은행) 설립, 도농간 차별 해소(지방균형개발) 등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하는, 하고 있는 상식에 속하는 이 제도들이 사실은 인류 역사 최초(?)이자 최고(?) 공산주의자인 카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제안한 것들이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이런 제도들이 공산주의자인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들이라는 사실조차 우리 국민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국립은행인 한국은행을 마르크스가 주장한 제도라는 이유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할 것이다. 무상교육이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라면서 유치원, 초등학생부터 학비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하면 학부모들은 정신나갔다고 할 것이다. 8시간 노동제를 폐지하고 자율에 맡기자고 하면 국민들이 뭐라고 할까? 아동 야간노동 금지를 없애고 아이들에게 밤에도 일하게 하자고 하면 아마 돌팔매를 맞을지도 모른다.

모든 대통령 후보들에게 부탁한다. 나아가 모든 정치인들에게 간곡히 바란다. 친중이니 빨갱이니, 사회주의(공산주의), 좌파 정책이니 하는 철지난 색깔론의 망령이 아니라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실질적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토론하고 경쟁하기 바란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상관없이 쥐 잘 잡는 고양이가 우리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고양이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 주장하는 호텔경제학이니 승수효과니 하는 것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것이 틀렸다면, 나는 그 이유가 그것을 주장한 루카스 차이제라는 사람이 공산당 기관지 편집장인지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왜 틀렸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대통령 후보를 보고 싶고, 이런 대통령 후보의 토론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노예의 정치가 아니라 주인의 정치를 하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권영국 민주노동당·김문수 국민의힘·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권영국 민주노동당·김문수 국민의힘·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나는 교사이기 때문에 언제나 '교육 대통령'을 소망해왔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교육 문제는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천정부지의 사교육비, 학령인구의 감소에 의한 폐교와 도농 양극화, 하루가 멀게 벌어지는 교사 사망과 교권 침해 등 학교를 둘러싼 사건·사고들 그리고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인 학교폭력. 이 산적한 교육 현안들 앞에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행복하지 못하다. 학교만, 교육만 생각하면 교사로서 한숨과 걱정이 늘어난다.

그런데, 세 번의 방송 토론회에서 교육과 관련된 질문은 단 하나도 없었고, 그 어떤 후보도 교육 대통령을 자처하지 않고, 어떤 후보도 학생과 교사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연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상대 후보 비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교사로서 너무나 절망적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노예의 도덕과 주인의 도덕을 잠시 떠올린다. 이를 정치에 적용하면 노예의 정치, 주인의 정치가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고 욕함으로써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다른 후보를 틀렸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비방하고 헐뜯는다고 대통령 자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것은 노예의 정치이다. 다른 후보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주장하면 된다. 자기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국민에게 잘 설명하면 된다. 이것이 주인의 정치이다.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권영국, 황교안, 송진호(이상 기호순) 후보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주인의 정치를 하시라.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말하라. 그것이 주인의 정치, 나아가 국민들을 주인 대접하는 정치이다.

#대통령선거,#이재명#김문수#이준석#권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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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수 (hs1578) 내방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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