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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묻고 있는 그대로 답을 전하겠습니다. 매주 주요 경제 현안이나 과제를 다룹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지난 2000년부터 ILO에서 근무하면서 고용과 노동시장과 관련된 정책과 연구를 해오면서, 180여 개 회원국의 경제정책 수립 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아시아 출신 인사로는 처음으로 ILO 사무국의 고위급인 국장에 임명됐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지난 2000년부터 ILO에서 근무하면서 고용과 노동시장과 관련된 정책과 연구를 해오면서, 180여 개 회원국의 경제정책 수립 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아시아 출신 인사로는 처음으로 ILO 사무국의 고위급인 국장에 임명됐다. ⓒ 이상헌박사 제공

"이주노동자에 차별적 최저임금을 정하자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아주 비현실적이고 자가당착적인 것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에 위배되며…"

바로 답변이 왔다. 28일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의 말이다. 오는 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준석 개혁신당후보의 국내 외국인 노동자의 '차등임금제' 도입 공약에 대한 이 국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와 같은 주장 자체가 매우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라고 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ILO 고위직 인사의 첫 공식 반응이었다.

이 국장은 또 이 후보의 주장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크게 네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하나는 국제기준에 위반되고 차별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또 이같은 임금차별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고 정치적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했다. 세 번째로 내국인 노동자의 해당 직업 기피와 이탈을 가져올 것이고,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시스템 자체가 균열돼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사회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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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후보 TV토론에서도 논란이 됐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역시 국내 근로기준법과 ILO 협약 위반 소지 등을 들어가며, 이 후보의 공약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캐나다의 사례를 들어가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자리 문제는 대선 때마다 여야 후보의 단골 메뉴였다. 이들 모두 '일자리 대통령'을 외쳤지만, 실제는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자리는 더 이상 경제 문제가 아닌 정치사회 문제가 됐다.

노동경제학자인 이 국장은 최근 새 책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생각의힘)를 통해서 일과 사람,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시도한다. 그는 "일자리는 이미 정치적인 문제"라고 했다. 이어 "일자리가 귀해지면 사람들은 내셔널리스트(민족주의자, nationalist)가 되고,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시도도 커진다"면서 "일자리를 정치적 구원의 메시지로 이용하는 사람은 트럼프(미국 대통령)만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 있다"고 적었다.

"일자리는 생존이고 자존감…이주노동자 임금차별은 위험하고 비현실적"

그는 "일자리는 곧 인간의 생존이고 자존감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하는 매개체"라며 "교육훈련부터 일자리 소개와 지원, 필요하다면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을 넘어선 '일'과 '일하는 삶'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며, "단순한 물질적인 투자 이외 모든 일자리에 대한 존중과 모든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도 투자"라고 그는 강조한다.

또 헌법 제32조에 명시된 국민의 근로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도, "'근로는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으로 관행처럼 사용돼 왔지만 일터의 현실을 좌우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다 능동적인 주체로서 '노동'을 인정하고, 인간의 생산적 활동의 포괄성이 명시돼야 한다"면서 "'근로의 권리'가 아니라 '일할 권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통화재정정책부터 산업, 기술정책과 기후변화 대응과 함께 누구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자리 보장제'도 제시한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ILO에서 26년째 근무 중인 그는 2018년 고위직인 고용정책국장으로 임명된 후, 고용과 노동시장 정책 전반에 걸쳐 180개 회원국의 경제정책 수립 등에 기여해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임명 당시 ILO 사무국의 9개 주요정책 담당 국장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 출신 인사였다. ILO가 주창하고 있는 임금주도성장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사람도 그였다.

이 국장과는 지난 21일에 이어 28일, 인터넷 화상서비스와 이메일 등을 통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통령선거 재외국민투표가 시작되던 때였다. 그는 "이번 주말에 2시간 거리의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가서 투표를 할 예정"이라며 "재외 동포들의 투표 열기가 매우 뜨거운 것을 느끼고 있어, 사상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를 보면, 118개국 25만 8254명 가운데 20만 5268명이 투표에 참가해 79.5%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였다.

- 갑작스럽게 대통령선거를 치르게 됐다. 현지에서 비상계엄과 내란, 탄핵 등을 보셨는데.

"사실 계엄 때 휴대전화 문자가 쏟아졌다. '마샬로우(Martial Law, 계엄령)'라는 단어가 있길래 처음에는 다른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뒤늦게 주요 외신과 방송을 보고 알았다. 유엔 고위인사들도 (비상계엄사태 등을 두고)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한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인권 등 세 가지를 발전시켜온 좋은 사례로 언급돼 왔기 때문이다."

"재외동포들, 압도적으로 정권교체 목소리 높아"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왼쪽)은 지난 25일 스위스 베른 한국대사관에서 재외동포 투표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왼쪽)은 지난 25일 스위스 베른 한국대사관에서 재외동포 투표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 이상헌박사 제공

- 결국 헌법재판소의 탄핵과 함께 국민들은 새로운 정부를 맞이하게 된다.

"(웃으면서) 헌재의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나왔을 때 이곳에서 매우 좋아했었다. 유엔에서 그동안 강조해왔던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회적 힘이 한국에서 작동하는 것을 보고 안도하는 것 같았다. 물론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극우화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한국에서도 일부 확인되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번 투표가 매우 중요하다. 동포들의 투표 열기도 후끈하다."

- 지난 대선 때보다 재외동포 투표인수가 크게 늘었던데.

"재외동포가 투표를 하려면 등록을 해야 한다. 여기에서도 서로 빨리 투표 등록하자고 독려하기도 했다. 해외에 계신 분들은 한국의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복원성을 믿고, 또 (국제사회에) 모범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많으신 것 같다. 이번엔 아마 (재외국민)투표율이 높을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결과도 압도적으로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까 싶다."

- 대선 후보들 간의 1차 TV토론(경제)이 있었다. 여야 모두 일자리 대통령을 이야기하면서도 방법론에선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권영국 후보는 국가의 일자리보장제 등을 이야기했다. 이 국장께서 최근에 낸 책 말미에도 비슷한 주장이 나오던데.

"후보들 전체 토론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물론 주요 발언 등은 따로 모아서 보긴 했다. 국가가 직접 나서 일자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책에서) 썼는데, 사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국가나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해 정부가 필요시에 일자리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선 정책 디자인(설계)을 잘 해야 한다."

- 어떻게 해야 하나.

"(국가의 일자리보장제의 경우) 실제로 추진되면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가 줄어들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제도의 취지는 각종 일자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공공 프로그램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공에서 최소한 최저임금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해서, 민간 쪽에서도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도록 하는 것이다."

- 과거에도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두고 평가가 엇갈리기도 했는데.

"정책 설계를 잘못했다고 본다. 그냥 단기적으로 값싼 임금으로 단순 노동의 공공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돈이 나온다고 해서 그냥 잔디를 뽑거나, 환경 미화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필요한 일자리를 조사하고, 당사자와 논의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좀 더 세밀하고, 꼼꼼하게 디자인을 해야 한다."

"헌법상 '근로'를 '일할 권리'로 바꿔야… 국가 나서 누구나 일자리 보장 고민해야"

이 국장은 자신의 책에서 일자리 보장 프로그램의 실험들을 소개하면서, "실제로 들어가는 정부 예산은 걱정했던 것 만큼 크지 않다"면서 "쳥년과 여성, 노년층을 위한 전략적 일자리 창출 뿐 아니라 경기 침체시 경기부양 효과와 함께 확장적 재정 없이도 경제를 빨리 회복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정부가 일자리 시장에 적극 개입해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 제도적으로 보완하거나 고쳐나가야 할 부분은 없나. 책에서는 헌법 조항을 언급하시기도 했는데.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노동관련 각종 법과 규칙들이 있는데, 사실 상당수의 노동자에게 적용이 잘 안 되고 있다. 근로자, 노동자의 지위와 정의를 두고 법적으로 계속 싸우고 있는데, 매우 낡은 정의라고 생각한다. 근로기준법이 결코 근로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차라리 이번 기회에 상위법인 헌법 수준에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헌법 조항의 '근로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부터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최근 펴낸 책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생각의 힘)'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최근 펴낸 책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생각의 힘)' ⓒ 김종철

- 책에서 '근로'라는 표현을 아예 '일할 권리'로 바꾸자고 제안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근로라는 표현은 이제 맞지 않다고 본다. '부지런히 일한다'는 것인데, 관행적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일터에서 큰 영향을 끼친다. 그냥 단순하게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인간을 능동적인 주체로서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근로의 의무도 마찬가지다. 만약 헌법이 바뀌게 되면 하위법인 노동관련 법에서 그동안 힘들었던 논의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생각도 있다."

- 노동 현안을 두고 국내에선 노란봉투법 개정부터 중대재해처벌법, 반도체특별법의 주52시간 노동규제 완화 등의 논란도 여전하다.

"물론 각 법마다 엄밀하게 나눠서 논의할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노란봉투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ILO 입장에서는 국제 노동 기준을 한국에서 효과적으로 적용한다는 측면에서 이들 법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논의 과정에서 정말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 어떤 부분인가.

"이런 논의 과정에서 항상 나오는 것이 기업의 비용이다. 물론 기업 입장에선 당연할 수 있지만, 노동자의 삶은 단순한 경제적 수치로 계산될 수 없는 엄청난 근본적인 가치가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가 기본적으로 자기가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부부싸움에서 목소리를 좀 높인다고 법적으로 처벌은 하지 않는 것처럼… 노동하는 삶, 일하는 삶을 두고 기업의 경제적인 계산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 최근 대선 후보 간 이주노동자의 임금차별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이주노동자를 두고 차별적 최저임금을 정하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아주 비현실적이고 자가당착이라고 생각한다. 국제 기준에도 위반된다."

- 권영국 후보는 ILO협약에도 위배된다고 했다.

"그렇다. ILO 협약은 동일 업무에 대해 이주노동자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ILO 협약에 위배되는 명백한 차별행위다. 이는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또 이주노동자에 낮은 임금을 적용하면, 내국인 노동자와의 임금 격차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이는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통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는 이어 "돌봄서비스업 등 특정 업종에서 이주노동자에게만 낮은 임금을 적용하면 내국인 노동자들이 해당 업종을 기피해 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면서 "이는 전체 산업의 생산성까지 떨어뜨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이같은 방식의 차별적 최저임금은 산업별, 지역별 차등적 최저임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최저임금 제도 자체에 균열이 생겨 향후 정상적인 작동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이 국장은 비판했다.

또 정치권에 논의 중인 '주 4.5일제' 등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도 다소 회의적이었다. 그는 "노동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법적으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하층 취약계층"이라며 "이들에게는 현재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시장 고용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계층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좋은 일자리'를 위한 사회적인 인식 개선과 함께 공동체의 연대와 대화를 강조했다.

"단순히 일자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좋은 일자리'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고용대책 등은 큰 의미가 없어요. 가만히 보면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노동시장이 좋아진다면서 일자리가 늘고 있다고 하죠. 그런데 임금은 늘지 않아요. 지금 세계적으로 20년째 이러고 있는데, 딜레마에 있는 거죠. 단순히 경제학 교과서의 수요공급곡선에 따라서 노동시장은 절대 움직이지 않아요. 한국도 일자리 자체가 부족해서 문제가 되진 않죠.

좋은 일자리는 안전하고, 기본적인 최저임금이 보장되고, 노동자의 목소리가 보장되는, 노동과 일 자체가 존중받는 것이죠. 좋은 일자리를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정부와 기업, 노동자, 시민사회가 함께 대화를 통해 만들어 가야죠. 다음 정부에선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노동권이 같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오마이뉴스>와 줌(ZOOM)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이 <오마이뉴스>와 줌(ZOOM)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종철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이상헌 (지은이), 생각의힘(2025)


#이상헌ILO고용정책국장#왜좋은일자리는늘부족한가#이주노동자임금차별#노란봉투법#노동고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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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6.3 대통령선거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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