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강 : 5월 24일 오후 8시 45분]

▲24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한국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 20주기와 앞서 가신 2세 추모제”.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 합천평화의집

▲24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한국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 20주기와 앞서 가신 2세 추모제”. ⓒ 합천평화의집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고 김형률(1970~2005) 한국원폭2세환우회 초대회장의 20주기를 맞아 추모제가 열렸다.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회장 이태재), 한국원폭2세환우회(회장 한정순)가 24일 오후 경남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한국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 20주기와 앞서 가신 2세 추모제"를 열었다. 이후 참가자는 김형률 추모비를 참배했다.
주최측은 "어느덧 피폭 80년이 되었지만 반핵평화의 울림은 계속되고 있다. 핵없는 세상을 외치며 꽃잎처럼 스러져간 그리운 님은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들 가슴 속에는 해가 거듭될수록 반핵평화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라며 "김형률 20주기를 맞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앞서간 한국원폭피해자 2세들도 더불어 추모하는 자리를 가졌다"라고 했다.
추모제는 석봉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 사무장의 사회로, 전기호 목사 겸 한일반핵평화연대 대표가 여는노래를 불렀고, 고인을 기리는 묵념으로 진행되었다. 한정순 회장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고, 조선남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했다.
원폭피해자 2세이며 인권운동가였던 고 김형률 회장은 1970년 6월 25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인의 어머니는 1945년 미국이 일본에 투하했던 원자폭탄에 피폭됐다.
태어나면서 잦은 병치레와 거듭된 생사의 고비를 겪으며 병마와 싸워 온 고인은 폐기능이 일반인에 비해 30%밖에 되지 않는 '선천성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면서 자신의 병이 피폭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2003년 3월 22일 '원폭피해자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원폭 2세 환우의 인권 회복을 위해 남은 생을 바쳤다.
▲‘반핵인권운동’에 인생 바친 이 사람, 김형률 #shorts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제공
고인은 '한국원폭피해자 2세환우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부모의 피폭과 이로 인한 병마와 싸워가며 대를 이은 피폭의 굴레를 알리기 위해 정부와 국회, 사회단체,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절절히 호소했다.
고인은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2세 환우들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실태조사를 위해 노력하다 2005년 5월 29일, 35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한정순 회장은 "피폭 2세로써 최초로 커밍아웃을 하고 우리 사회에 피폭 2세 문제를 알려 온 고인의 염원을 되새기며, 아직도 병마에 시달리는 수많은 피폭자와 2세 등 후손들의 아픔과 함께 하면서 핵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 뜻을 기리는 추모제를 매년 열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비핵평화의 발신지 합천', '김형률의 합천'
이태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핵 없는 사회'를 강조했다. 이규열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 심진태 합천원폭자료관 관장, 정수원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관장이 추모사를 통해 원폭 피해 후손들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남재 합천평화의집 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인간답게 살고 싶다, 라는 작은 소망을 꼭 지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이렇게 평범하지만 간절한 소망을 가슴에 묻은 채 2005년 5월 29일 김형률의 꽃다운 삶은 스러져 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한국 정부에 대한 한국원폭피해자와 2세환우들에 대한 생존권 보장을 위한 법적 보호장치, 원폭과 유전에 관한 올바른 진상규명, 일본과 미국 정부에 대한 책임과 배상문제 제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고인을 떠올린 이 원장은 "2세 환우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면 상대적으로 건강한 2세들과 함께 유무형의 사회적 편견을 받을 수 있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라며 "그러면서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차원에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2세 환우들을 냉대하고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원폭피해자들에게조차 외면받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해 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인은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조직할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정식씨 하고 2명으로 출발하면서 33년을 병마에 시달려 오면서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원폭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억압의 구조화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을 해오면서 소외를 넘어 보편적인 삶을 지향했다"라고 떠올렸다.
원폭 피해 관련해, 이 원장은 "2세 환우 문제는 일제과거사 청산 문제, 미 정부의 책임과 배상, 방사능과 유전 문제, 인권과 명예회복 등이 중첩되어 있다"라고 했다.
그는 "국가권력에 부당하게 인간성과 정체성을 부정 당하고 있는 현실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자신 존재의 진정성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원칙주의자 김형률.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원폭피해자 운동은 자기 생명을 지킬 권리로써 생명권을 지키는 인권회복 운동이다. 기억은 곧 행동이며 실천의 원동력이다"라고 했다.
이 원장은 "22대 국회에서 한국인원폭피해자지원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되어 고인이 그토록 바라던 2, 3세도 원폭피해자로 인정받고 세계의 모든 피폭 생존자들이 연대하여 핵없는 세상, 삶이 계속되는 세상이 되도록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라며 "'노 모어(No More) 히로시마'(더 이상의 히로시마는 없어야 한다)는 이제 '노 모어 합천', 한국의 히로시마가 아닌 '비핵평화의 발신지 합천', '김형률의 합천'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다음은 이태재 회장이 "고 김형률 님을 기리며"라는 제목으로 낭송한 추모시 전문이다.
고 김형률 님을 기리며
5월이면 바라보는 곳마다 / 화려한 꽃이요 초록의 잎입니다 / 피는 꽃 피는 잎잎이 / 다 그리운 당신입니다 / 당신이 죽어 / 우리 가슴을 때려 울려 / 이렇게 꽃피우고 잎 피우는가 봅니다 // 꽃 피고 잎 피면 / 이리 마음 둘 데 없는 것은 /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 당신의 몸부림과 / 당신의 울부짖음과 / 당신이 겪은 고통 때문입니다. // 당신은 우리 곁에 없지만 / 매년 오월이 되면 /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 우리 가슴 깊은 곳에 / 당신의 모습을 / 고이 고이 심고 있습니다. // 당신 모습이 / 찬바람 찬서리 지나고 / 봄이 와 / 이렇게 꽃 피고 잎 피는 오월이면 / 한편 그립고 / 한편 슬퍼고 / 한편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 핏빛 만말한 장미꽃을 보며 / 서서히 / 잔잔한 그리움과 / 지긋한 아픔으로 고여 피어나듯 / 우리 가슴마다 당신 모습 /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 매년 오월 마지막 토요일이 되면 / 우리 가슴속에서 당신은 / 꽃으로 걸어 나와 / 우리랑 / 여기 저기 피는 / 꽃들이랑 / 이곳 합천 땅에서 / 만남을 기약하고 있지요. // 이렇듯 보는 곳마다 걷는 곳마다 / 저렇게 걷잡을 수 없이 / 만발하는 꽃과 잎들 / 누가 당신을 잊고 / 누가 당신을 기리지 않겠습니까? // 언제쯤 / 당신이 꿈꾸었던 한국원폭피해자와 / 그 후손들의 인권과 권익을 위한 특별법이 / 온전하게 개정되고 제정되어 서로 눈물 닦아줄 / 기쁜 날이 올런지요. // 당신이 원하는 대로 / 당신이 이끄는 대로 / 머리 숙여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은 /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더 이상 고통과 근심이 없는 천상에서 / 오월이면 피어나는 예쁜 꽃들과 눈부신 초록의 잎들처럼 / 우리와 함께 행복했던 시간과 공간의 /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김용택의 시 "당신가고 봄이 와서" 인용)

▲24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한국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 20주기와 앞서 가신 2세 추모제”. 유영태 한국원폭희생자추모사업회장. ⓒ 합천평화의집

▲24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한국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 20주기와 앞서 가신 2세 추모제”. 촤봉태 변호사. ⓒ 합천평화의집

▲24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한국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 20주기와 앞서 가신 2세 추모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합천평화의집

▲24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한국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 20주기와 앞서 가신 2세 추모제”. 조선남 시인. ⓒ 합천평화의집

▲24일 오후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한국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 20주기와 앞서 가신 2세 추모제”. ⓒ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