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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nci on Unsplash

어머님의 암수술과 방사선 치료가 무사히 끝나고 6개월에 한 번씩 진행되는 추적 검사를 두 번 마쳤다. 생계에 매인 상황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오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나마 계획된 일정은 미리 조정해서 시간을 따로 내지만, 갑자기 닥치는 응급 상황에서는 즉시 대처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사실 구순의 어머니는 움직임은 매우 느리지만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시는 분이다. 함께 병원에 갈 때에도 검사를 조금 빨리 진행하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휠체어를 이용할 것을 여러 번 권했는데, 한사코 거부하시며 스스로 움직이기를 고집하셨다. 이후로 우리는 늦더라도 어머니의 속도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혼자 지내시는 어머니의 응급 호출은 아직까지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이가 있으신지라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응급상황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두 번째 급하게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고 그날의 일정은 모두 어긋났다.

자녀와 부모 동시에 부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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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3일을 기해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주민등록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일 때)에 진입했다고 한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65세 이상의 노인이 성인 자녀와 부모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웃집 지인은 6개월 전 시부의 병환을 시작으로 지금은 시모의 병환을 돌보느라 시골집에서 지내고 있다. 대신 지인의 남편이 직장을 다니며 중학생 자녀들은 챙긴다. 또 얼마 전까지 시모의 수술과 이후 간병을 책임져야 했던 친구는 2년 만에 만난 자리에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고 독박돌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친구의 경우 그나마 '데이케어'의 도움으로 숨통이 트였다고 했다. 데이케어란 어르신들에게 낮 시간 동안 전문적인 돌봄과 다양한 활동, 사회적 교류와 건강관리를 제공하는 돌봄 시설이다. 친구가 데이케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엔 '노치원'이라는 곳도 등장했는데, 노치원은 '노인'과 '유치원'의 합성어로 노인들이 유치원처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는 공간이라고 한다. '노치원' 역시 데이케어와 마찬가지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비보험 적용 시에는 매월 상당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니 데이케어센터든 노치원이든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은 아니라는 말이다.

돌봄을 위한 정책이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된다면 바람직한 복지가 아니다. 아주 작고 소소한 정책이라도 국민의 실생활에 다가가 부담을 최소화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때 국가가 민생을 챙긴다고 말할 수 있다.

대선 후보들 돌봄 공약 중 눈에 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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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hngstrm on Unsplash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돌봄에 관한 후보들의 공약집을 살펴봤다. 국가와 국민의 삶을 생각한다는 후보들의 공약은 때가 때인지라 민생을 가장 앞에 내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돌봄에 관한 후보들의 공약은 대상은 넓고 내용도 핵심만 간단히 나열한 것이라서 단편적으로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눈에 띈 것이 '데이케어센터 이용시간 확대'와 '요양병원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실제 적용될 수만 있다면 간병비에 부담을 갖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어르신 건강심부름택시 운영' 공약이 눈에 띄었는데, 내가 이해한 것은 건강 관련해서 언제든 택시를 부르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와 같이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 급하게 병증을 호소해서 병원에 가야 할 때,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면 무척 유용하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데이케어센터와 노치원 등을 통합하여 노인 돌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쉽고 저렴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어떨까 싶다. 아울러 대상자의 등급 판정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돌봄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거나 비용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장기요양기관, 사회적 돌봄 영역으로 전환됐으면

또, 요양원과 요양병원 등 장기요양기관이 사회적 돌봄의 영역으로 전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의학적으로 꼭 입원할 필요가 없을지라도 거동이 어려울 경우 병원에 머물며 일정 기간 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하거나, 가정에서의 돌봄 공백이 있을 경우 병원 치료가 끝난 뒤라도 입원해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한 전제로 일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의 부실 운영과 비리는 반드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르신들이 요양병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빚어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국가의 세금이 막대하게 투입되는 시설임에도, 종종 운영 비리 소식이 전해지고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상황을 국가가 앞장서서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 요양기관에 대한 철저한 감사(監査)와 감독이 필요하다. 입원비와 간병비라는 돈의 문제는 차치하고, 자녀들이 부모를 방치하는 곳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환자 당사자의 불안감은 우선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당선 이후 공약의 내용이 모두 지켜질 거라고 기대하기에는 함정이 많다. 역대 정부의 공약 이행률을 보면, 김대중 정부가 18.2%, 노무현 정부가 41.8%, 이명박 정부가 39.5%, 문제인 정부도 17.5% 정도다. 이러니 단순히 후보의 공약을 보고 공약 너머의 것까지 확장해서 기대하는 것은 헛된 꿈일지도 모른다.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기대 수명은 점점 늘고 있다. 기대수명과 비례하여 돌봄 문제는 누구에게도 매듭을 지을 수 없는 과제처럼 마음을 무겁게 한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다가올 정부와 정치가 담당해야 할 과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대선#돌봄공약#데이케어#요양병원#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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