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가 2025년 명실상부한 '스포츠의 도시'로 부흥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인기 스포츠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프로야구와 축구에서, 올시즌 대전 연고 구단들이 사상 최초로 나란히 리그 선두권에 동반으로 등극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5월 24일 기준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30승 20패(승률 .600), 프로축구 대전 하나시티즌은 8승 4무 3패(승점28)로 나란히 소속 리그에서 2위에 올라 있다. 두 팀은 한때 리그 선두까지 등극했다가 최근 한발 내려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1위를 간발의 차이로 추격하면서 여전히 치열한 순위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구단의 연고지였던 대전
충청도를 대표하는 중심도시답게 대전은 스포츠에서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모두 한번은 거쳐간 연고지였다. 대전 연고 최초의 프로팀은 1982년 프로야구 OB 베어스(현 두산)였고 프로 출범 원년에 당당히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1990년대에는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대전 현대(현 부산 KCC)가 탄생하며 3년연속 정규리그 1위와 2년 연속 챔프전 우승을 달성하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OB는 3년 만에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고, 대전 현대 역시 5시즌만에 팀명을 KCC로 바꾸고 전주로 연고지를 이전하게 되면서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현재 대전에는 야구(한화 이글스), 축구(대전 하나시티즌), 남녀배구(대전 삼성화재, 정관장 레드스파크스) 등 4개의 연고 프로팀이 존재한다. 이중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구단은 역시 프로야구 한화가 첫 손에 꼽힌다.

▲25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열린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1회말 한화 팬들의 응원열기가 뜨겁다. ⓒ 연합뉴스
1986년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하며 대전을 연고로 하는 새로운 프로야구팀으로 자리잡았다. 빙그레는 1980-90년대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꼽히며 꾸준한 성과를 기록했고, 수많은 레전드 선수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번번이 준우승에 그치며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한화는 1999시즌에야 구대성, 정민철, 송진우, 로마이어 등 호화멤버를 앞세워 창단 최초이자 지금까지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우승 횟수는 적었지만 인기와 관중동원 면에서는 항상 최정상급이었다. 프로스포츠 중에서도 지역 연고 문화가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프로야구의 특성과 충청권 전역 유일의 프로야구팀이라는 희소성으로 인하여, KBO리그에서도 손꼽힐만큼 가장 두터운 팬덤을 지닌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한화는 2000년대 후반 이후 극심한 암흑기를 거쳐야 했다. 구단의 장기적인 전략 부재와 세대교체 실패 등이 겹치며 2008년부터 2024년까지 17시즌간 가을야구 진출이 단 1번에 그쳤다. 이 기간 꼴찌만 무려 8번이나 기록할만큼 심각한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2025시즌 초반만 해도 한화는 4승 10패에 그치며 공동 최하위를 기록했고 올해도 역시나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 한화는 20경기에서 무려 17승 3패를 거두는 대반전으로 단숨에 선두권으로 급상승했다. 지난 5월 11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1992년 이후 무려 33년 만에 12연승을 달성하며 마침내 1위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지난 2024년과 비교하면 당시에도 시즌 초반에 한때 7연승(3월 24일 잠실 LG전~3월 31일 대전 KT전)을 달리며 잠시 반짝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4월 한 달간 6승17패로 10개 구단 중 최하위에 그치며 성적을 다 까먹었다. 5월 초반에는 끝내 최하위까지 추락하며 결국 사령탑인 최원호 감독이 사퇴해야 했다.
작년과 비교하여 가장 뚜렷한 차이는 안정적인 투수력이다. 올시즌의 한화는 코디 폰세-라이언 와이스-류현진-문동주로 이어지는 최강의 선발진을 구축했다. 특히 폰세는 현재 다승(8승)-평균자책점(1.63)-탈삼진(97개)에서 모두 1위를 달리며 명실상부 리그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7일 SSG 랜더스와의 더블헤더 1차전 홈경기에서는 8이닝간 18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선동열(은퇴)과 한 경기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한화는 올시즌 팀타율(.247, 6위)과 홈런(36개, 5위) 등 공격력은 아직 리그 중하위권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팀평균자책(3.22), 세이브(18개) 탈삼진(458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탄탄한 투수력과, 백전노장 김경문 감독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LG-롯데 등과 치열한 선두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장기간 부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성원으로 '보살팬'이라는 오묘한 애칭까지 얻었던 한화 팬들은, 올시즌야말로 7년 만의 가을야구와 26년 만의 우승도 꿈이 아니라며 열광하고 있다.
1997년 창단한 대전 하나시티즌

▲지난 2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대전 하나시티즌과 대구FC의 경기. 대전 최건주가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축구 K리그 대전 하나시티즌은 1997년에 창단했다. 초창기에는 시민구단으로 전력과 투자에 한계가 있었고, 2010년대 승강제 도입 이후로는 두번이나 강등당하며 1,2부리그를 넘나들어야 했던 만년 하위권 팀이었다. 지금까지 대전의 1부리그 역대 최고성적은 2003년과 2007년에 달성했던 6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야구의 한화 이글스와 마찬가지로 충성도높은 서포터즈와 지역 팬덤을 앞세워 '축구특별시'라는 애칭을 얻을만큼 인기는 상당했다.
대전은 2020년 하나금융그룹이 축구단을 인수하며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전환했다. 2022시즌에는 K리그2에서 2위를 기록하며 8년만에 1부리그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승격 이후 두 시즌간 K리그1에서 8위에 머물렀던 대전은, 올시즌에는 초반부터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돌풍을 일으키며 전북, 울산, 서울 같은 전통의 빅클럽들과 함께 당당히 K리그1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황선홍 대전 감독은 지난 시즌 후반기에 부임하여 당시 강등권에 있던 대전을 안정적으로 1부리그에 잔류시킨 데 이어, 올해는 대전에서 처음 맞이하는 풀시즌에서 팀을 깜짝 선두권으로 이끌며 지도력이 재평가받고 있다. 대전은 지난 2월 K리그1 개막부터 무려 3개월 가까이 1위를 지켰고, 이는 1997년 팀 창단 이후 최초의 기록이었다. 현재는 약간 주춤하며 2위로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1위 전북 현대와의 승점차는 단 1점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연고 프로 구단들의 동반 호성적은 자연히 폭발적인 흥행열기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화는 지난 4월 24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부터 이달 18일 대전 SSG 전까지 KBO역대 신기록인 20경기 연속(홈-원정 합산) 연속 매진 기록을 수립했다. 23일 대전 롯데전에서는 KBO 최초 홈 19경기 연속 매진 신기록도 이어갔다. 종전 기록 역시 2024년 한화가 기록했던 17경기 연속을 스스로 경신했다.
한화는 2024시즌 팀성적은 8위에 그쳤음에도 구단 역대 최초로 단일시즌 80만 관중(총 80만4204명) 돌파와 KBO 역대 한 시즌 최다 매진 신기록(47회)을 달성했을 만큼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 인기구단으로 자리잡았다. 올시즌에는 성적까지 뒷받침되면서 지난 시즌의 기록도 충분히 뛰어넘을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전 하나시티즌은 1부리그 복귀 이후 첫해인 2023년에 총 24만4274명, 평균 1만2857명의 홈관중을 끌어모았으나, 2024시즌에는 성적부진으로 홈 관중이 총 18만7199명, 평균 9853명으로 감소했다. K리그1 12개 구단 중 평균관중이 감소한 클럽은 대전 뿐이었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팀성적이 반등하고 홈 6경기에서 벌써 7만 6057명의 관중을 기록하면서 평균 1만 관중(1만2676명) 선을 다시 회복해가고 있다.
"올해는 정말 다르다" 팬들 기대감

▲25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열린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한화 팬들이 경기 전 굿즈와 응원 용품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한화와 대전 팬들은 현장은 물론,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며 한껏 고무된 반응이다. 팬들은 "올해는 정말 다른 것 같다" "우리도 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만일 한화와 대전이 같은 해에 동반 우승한다면 정말 기적같은 일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보이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프로스포츠에서 지역 연고팀들의 호성적은, '경제효과' 측면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다. 스포츠를 즐기기 위하여 팬들이 증가하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경기장 주변과 지역 상권도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사실 한때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던 대전의 대표적인 멸칭 중 하나가 '노잼시티(재미없는 도시)'였다. 온라인과 SNS 상에서 이른바 대도시임에도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현저히 부족해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이 상대적으로 잘 찾지 않는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대전시는 최근들어 도시 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강화하면서 스포츠의 인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대전 하나시티즌은 콜라보 굿즈와 유니폼 등을 출시하면서 도시와 연고 프로팀 간의 협업 관계를 강화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전시의 마스코트인 꿈돌이-꿈순이를 활용한 '꿈씨패밀리' 굿즈 매출은 올해 4월 기준 4억 2300만 원에 이르며 이는 지난해 매출의 절반을 넘긴 수준이다.
또한 대전시의 발표에 따르면 이달 초 '5월 황금연휴' 기간에 대전의 숙박 예약 증가율은 전년 대비 190%나 증가하면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SNS에서는 젊은 MZ세대를 중심으로 대전의 랜드마크가 된 스포츠 경기장 순례를 시작으로 성심당 빵집 투어를 거쳐, 보문산,스카이로드, 아쿠아리움, 오월드 등 대전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는 1박2일 대전 여행 코스가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역민들에게도 스포츠로 높아진 사회적 관심 덕분에 대전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의 호재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대전을 '스포츠에 특화된 관광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최근 스포츠 열기가 지역에 유동인구 유입을 증가시키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발길을 인근 지역상권과 관광자원까지 연계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사실상 지역의 상징이 된 연고 홈구장인 대전한화생명볼파크나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지역의 스포츠·문화·예술을 아우를 수 있는 종합 관광 단지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체류형 관광 프로젝트 조성, 추가 기획상품 출시, 야구나 축구장 티켓을 주변 관광지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장우 대전시장도 최근 시 업무회의에서 "연고 프로 구단이 약진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도 연결된다"며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시장은 최근 한화 이글스의 선전을 예시로 들며 시에서 추진한 신축야구장 완공 지원과 콜라보 굿즈의 흥행 등을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상생의 사례로 언급하며 "한화의 선전을 본받아 지역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도 연고 스포츠 구단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
오늘날 프로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를 넘어 도시의 숨겨진 에너지를 끌어내고, 경제와 문화를 아우르고 종합적인 활력을 이끌어낼 강력한 용광로가 될 수 있다. 올해 대전 연고 프로 구단들의 동반 선전은 이제 '새로운 야구의 성지', '축구특별시의 부활'이라는 수식어를 낳으며 '스포츠 꿀잼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