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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상 혹은 현실

이런 세상을 상상해 보자.

1) 검찰이 무고한 사람까지도 마구잡이로 구속기소를 한다.
2) 형사재판의 결과, 그 중 72%가 무죄를 선고받는다.
3) 재판기간 동안 시민들은 억울하게 구금된다.
4) 그런데 이 일이 십 수 년 간 반복되어도 마구잡이 구속기소 관행은 바뀌지 않고, 억울한 사람들이 계속 구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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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부정의한 세상이다. 현실에서 이런 세상이 십 수 년 간 이어지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단 일 년이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회가 발칵 뒤집히고, 검찰과 그것을 용인한 법원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다행히도 이것은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검찰이 구속기소한 사건이 재판에서 무죄로 선고되는 비율은 1% 이하로 유지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여러 개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형사사법제도가 무고한 사람을 가두는 일은 비율적으로는 흔하지 않고, 종종 '실수'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공항에 갇혀 있는 난민들에게 벌어지고 있다. 재판을 통해서 억울한 구금이 밝혀지는 비율이 72%에 달한다. 72%의 오판은 결코 실수라고 말할 수 없다. 엉뚱한 과녁에 조준을 해야만 나올 수 있는 수치다. 하지만 개선의 목소리는 충분하지 않고, 구금 일변도의 공항 난민심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공항 난민'의 72%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난민들은 정치적, 종교적, 민족적, 사회적 이유로 박해를 피해 본국에서 도망친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한국을 피난처로 택한다. 한국이 난민협약 가입국이기 때문이다. 이 협약은 본인이 난민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한국 정부가 공정한 난민심사의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아직 심사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난민 인정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대 그들을 본국으로 송환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난민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국으로 송환했는데 그들에게 정말 난민 사유가 있었다면, 그들의 생명, 신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결과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공항난민이었던 루렌도 가족과 공익법단체두루의 이상현변호사 2018년 12월 28일에 한국에 도착해 무려 287일 동안 인천국제공항에 구금되어 있었던 루렌도 가족과 함께
공항난민이었던 루렌도 가족과 공익법단체두루의 이상현변호사2018년 12월 28일에 한국에 도착해 무려 287일 동안 인천국제공항에 구금되어 있었던 루렌도 가족과 함께 ⓒ 공익법단체두루

하지만 '한국이 난민협약국으로서 난민협약을 충실히 지킬 것'이라는 난민들의 기대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무너진다.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정식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구금되거나 본국으로 송환된다. 1주일간 진행되는 간이 심사를 통해, 법무부는 이러한 난민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난민신청'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들을 '가짜 난민'이라고 낙인찍는 것이다.

하지만 난민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그 나라의 정치, 사회적 배경을 심도 있게 알아야 하고, 그 상황에 놓인 한 사람이 걸어온 삶의 궤적도 면밀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속하게 판단할 수 없는 일이지만, 법무부는 일주일 만에 자신 있게 '가짜 난민 딱지'를 붙인다.

그런데, 재판에만 가면 '가짜 난민 딱지'는 잘못되었다고 밝혀진다. 최근 5년간 진행된 재판을 통해 72%에서 법무부는 틀렸고, 공항 난민들은 억울하게 정식 난민심사 기회를 받지 못하고 구금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72%는 얼마나 높은 수치일까? 구속기소 사건의 무죄율은 1%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검찰이 100명을 가두면, 그 중 무고함이 밝혀지는 사람이 1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72%라는 비율은 법무부가 난민 100명을 공항에 가두면, 그중 억울한 난민이 72명이라는 얘기다. 행정소송에서 행정기관이 패소할 확률은 통상적으로 5%이다. 그러나 법무부 공무원은 다른 공무원보다 14배 더 자주 위법한 행정을 한다.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을 돌려보내는 나라

비율만의 문제도 아니다. 2023년 기준으로, 재판을 통해 억울한 구금임이 밝혀진 난민은 1년에 23명, 구속 기소되어 무죄 선고 받는 피고인은 123명이다. 단순하게 비교해도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이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했다가 공항에 구금되는 사람은 1년에 200여 명인데, 그 대다수에게는 소송으로 다투어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중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은 30명 정도 뿐이다. 승소율이 72%나 되는데도, 극히 일부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공항에 갇혀 있는 이들은 외부 변호사의 도움이 없으면 소송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 스스로는 본인의 '조서'와 같은 서류도 받을 수 없다. 서류를 받으려면 '등사'를 신청을 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등사비용은 인지를 사서 붙이는 방식으로만 낼 수 있는데, 그들은 정작 인지를 파는 곳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인천공항에 3층에 구금되어 있던 한 난민은 인지를 파는 공항 2층의 우체국에 가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본인의 조서를 받아볼 수 없다. 황당한 일이지만 실제로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도움 없이 소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가짜 난민이라는 잘못된 낙인'은 72%라는 비율 이상의 문제를 낳는다. 구금되었다가 재판에서 이긴 72%는 그래도 구금되었던 고통의 시간을 뒤로 하고 국내에 입국하여 정식 난민심사를 받을 수라도 있다. 하지만 변호사를 못 구해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많은 수의 공항난민은 어디에 한 번 하소연해 보지도 못하고 본국으로 송환당하고 만다. 승소율이 72%라는 것을 보면, 그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송환된 본국에서 심각한 박해를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72%라는 숫자에 담겨있지 않은 것이다.

'가짜 난민'이 문제인가 '가짜 법무부'가 문제인가

가장 놀라운 일은 이러한 '불법 행정'이 십 수 년 간 바뀌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항난민이 불법 구금과 정식 난민심사 기회 박탈에 대해 소송으로 처음 다툰 것이 2013년이다. 그 뒤로 법무부의 '잘못된 낙인'은 수많은 재판을 통해서 밝혀졌지만, 12년째 상황은 그대로이다. 구금과 정식 난민심사 기회 박탈을 의미하는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리는 비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간의 숱한 오판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문책 당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다른 부처의 공무원이 100건 중 72건을 잘못 처리했더라도, 그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고위 공무원과 장관이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었을까? 상황이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국 사회의 진짜 문제는 '가짜 난민'인 것인가, 아니면 '가짜 법무부'인 것인가?

억울하게 공항에 갇힌 난민들은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22년에 공항난민들이 구금되는 출국대기실의 실태를 조사했다. 이를 통해 개개인에게 침상이 제공되고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지낼 공간도 제대로 배정되어 있지 않으며, 최소 영양기준도 없이 제공되는 부실한 식사 등의 실태가 보고되었다. 보고서에는 아파도 병원진료를 받는 것이 제한되고 있고 안에서는 운동도 할 수 없다며, 건강권 침해를 우려했고, 한국에 가족이 있어도 면회조차 할 수 없는 제도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했다. '그곳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다'라는 것이 조사의 결론이었다.

난민신청 '접수 거부' 사건 위법확인소송 선고 기자회견 2021년 4월 21일 서울고등법원 앞
난민신청 '접수 거부' 사건 위법확인소송 선고 기자회견2021년 4월 21일 서울고등법원 앞 ⓒ 공익법단체두루

공항난민의 불행이 이어지지 않으려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억울한 난민들이 열악한 구금시설에 갇히는 일은 종식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바뀔 수 있을까? 첫째 국가가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법을 지켜야 한다. 일선 공무원은 반복해서 '위법'하다고 결론 나는 행정관행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정이 '조직 내부의 논리와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래선 안 된다. 공무원이 조직 내부의 논리와 관행을 따르는 것을 법 위에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들을 지시 감독하는 고위공무원과 장관도 각성해야 한다. 당장 새 정부가 들어선다면, 신임 법무부장관은 공무원 사회의 그릇된 관행과 믿음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한국의 공항에서도 법이 통하게 해야 한다.

둘째 더 많은 변호사가 공익변호에 나서야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필자를 비롯해 공항난민 인권옹호활동을 하는 공익변호사들은 사건을 거절하기 바쁘다. 소수의 변호사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백 건의 공항난민 사건이 매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해서 억울하게 본국으로 송환되고, 그 결과 본국에서 심대한 박해를 받게 되는 일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셋째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 지경인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 모두 이 문제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정부를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정치권에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 개개인이 이 문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나서야만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상현씨는 공익법단체두루 변호사입니다.


#공항난민#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출입국관리법개정#공익법단체두루#이주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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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변호사로 일하며 '나중에 정치할거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그러면 저는 손사래 칩니다. 그런데 이미 법정에서, 입법 과정에서 이주민, 난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표'가 없는 사람들은 대변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이들을 대변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네, 저는 표 없는 이들의 정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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