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인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묘역에서 시민들이 참배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16주기인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네요. 왜 그런지는 다른 사람들도 같을 겁니다. 국민을 가장 사랑한 대통령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23일 오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도식이 열리기 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의 말이다. 이날 봉하마을에는 고인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른 아침부터 이어졌다.
시민들은 국화 한 송이를 헌화대에 바치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날 오전에 묘역을 찾은 20대 후반의 청년은 "하루 전날 서울에서 출발해왔다.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는데, 노 대통령은 시민들과 소통을 가장 많이 했던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재현 인제대 교수는 "개인적으로 노 대통령과의 인연은 없지만, 매년 추도식에 참석하게 된다. 올해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더 오게 됐다"라며 "노무현의 정신이 새삼 강조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창원에서 진영역까지 열차로 이동한 김아무개씨는 "오늘 와서 보니 젊은 분들도 많이 보여서 마음이 좋다. 5월이 되면 늘 노 대통령이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배객은 "거의 해마다 추도식에 참석한다. 지난해까지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힘들었는데, 올해는 구름이 살짝 드리워져 다행이다"라고 전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대선 후보들도 추도식에 앞서 참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날 오전 11시께 봉하를 찾아 눈물을 훔쳤고, 참배록에는 "사람 사는 세상의 꿈.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 진짜 대한민국으로 완성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는 이른 아침 참배하며 "22년 전, 열심히 공부해 언젠가는 대한민국을 위해 큰일을 하라던 말씀, 실천하겠습니다"라고 썼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16주기 추도식이 2025년 5월 23일 오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열렸다.권양숙여사,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아들 노건호 씨,우원식 국회의장 등이 묵념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추도식은 이날 오후 2시, 대통령 묘역 인근 생태문화공원 특설무대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행사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씨, 사위 곽상언 민주당 의원 등을 비롯한 유족과 문재인 전 대통령, 우원식 국회의장이 함께 자리했다.
정당 인사로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김선민 조국혁신당 당대표 권한대행,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천하람 개혁신당 당대표 권한대행, 용혜인 기본소득당 원내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정부 측에서는 고기동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이 추모의 뜻을 함께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강기정 광주광역시장,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 김영록 전남도지사, 박완수 경남도지사, 최교진 세종특별자치시 교육감, 이순희 강북구청장, 오승록 노원구청장 등이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노무현재단에서도 차성수 이사장과 하승창 상임이사를 비롯해 김삼호, 김은경, 선미라, 이광재, 이정호, 조수진, 황희두 이사 및 이해찬, 이병완, 한명숙, 유시민 등 전·현직 임원들이 참석했다.

▲23일 오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16주기 추도식에서 100인시민합창단이 추모공연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추도식 구호는 고인의 묘비에 새겨진 문구이자, 시민 공모로 선정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이다. 재단은 "이번 구호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을 시민의 언어로 다시 기억하고 실천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규리 배우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은 국민의례, 내빈 소개, 추도사, 주제 영상, 추모 공연, 이사장 인사말 순으로 진행됐다. 100인 시민합창단의 추모 노래로 분위기는 고조됐고, 식 후 참석자들은 묘소를 참배했다.
우원식 "노무현 길을 따라 민주주의 지켜낼 것"

▲우원식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16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우원식 국회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님, 보고 계십니까? 올해도 변함없이 노란 그리움들이 이곳 봉하 들녘을 가득 채웠다"라며 추모의 말을 시작했다.
그는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걸었던 대통령님의 치열하고 고단했던 걸음을 떠올린다. 정치개혁, 부패청산, 균형발전, 평화와 번영의 길, 그 수많은 '노무현의 길'을 따라 오늘 우리는 이곳에 모였다"라고 말했다.
우 의장은 "3당 합당 반대, 지역주의 타파와 같은 대통령님의 당당하고 떳떳한 용기가 우리를 흔들어 깨웠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도 반칙과 특권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가슴을 다시 뛰게 했다"라며 "바보 노무현의 진심이 결국 모두가 함께 가는 길이 됐고, 그의 도전은 우리의 도전이 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시대정신이 됐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발생한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했다.
"대통령님은 주권자인 시민의 힘을 깊이 신뢰했던 지도자였습니다. 지난겨울, 우리는 그 신념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역행을 막은 것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의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 의장은 "민주주의에는 완성이 없고 역사는 더디지만, 희망의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하겠다. 대통령님께서 온몸으로 맞섰던 기득권의 벽을 함께 넘어, 정치가 약한 자들의 가장 강한 무기가 되도록 만들겠다. 국민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민주주의를 꼭 만들어 내겠다"라고 다짐했다.
문정인 "공존과 생존의 대한민국"
문정인 전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추도사에서 "어느덧 열여섯 해가 지났다. 대통령님이 그립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립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겨울 우리는 12.3 비상계엄이라는 황당한 사태를 겪었다. 절체절명의 민주주의 위기였다"라며 "그러나 생전에 대통령님께서 강조하시던 '깨어있는 시민'과 '용기 있는 정치인들'이 이를 막아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라고 회고했다.
문 전 보좌관은 노 전 대통령의 외교 철학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님께서는 '역지사지' 외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신 분이었다"라며 "상호 존재를 인정해야 대화가 가능하고, 대화를 통해서만 갈등과 대립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계셨다.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은 이러한 전략적 공감 외교의 결실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가오는 6.3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님처럼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국익과 원칙, 상식과 순리, 그리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공존과 상생의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차성수 "우리는 이미 노무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차성수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3일 오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16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차성수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겨울, 역사를 거스르는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광화문과 전국의 광장에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애쓴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라며 "그곳엔 작은 노무현, 새로운 노무현들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차 이사장은 "누군가는 국회로 달려가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섰고, 누군가는 남태령 고개에서 밤을 새우며 길을 열었다. 또 누군가는 오래 간직하던 응원봉을 꺼내 거리로 나섰고, 누군가는 얇은 은박담요 하나로 추운 겨울밤을 지켜냈다"라고 당시의 시민 참여를 떠올렸다.
이어 "언젠가 올 것이라던 노무현의 시대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다. 노무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민 개개인의 삶에서 그 시대는 구현되고 있었다"라며 "차가운 겨울 광장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꿔낸 것은 바로 우리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추도식에는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아닌, 자부심과 당당함을 품은 수많은 시민 노무현들이 함께했다"라고 강조하며 "아직 그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완전한 봄이 올 때까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처럼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겠다. 노무현재단도 그 진보의 걸음에 함께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날 노무현재단 측은 약 1만 5000여 명의 참배객이 봉하마을을 찾아 고인을 기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