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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학교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영국과 한국의 문화와 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대해 나누고 싶다.
 장인 장모가 전에 살던 집은 1600년대 지은 초가집 지붕이었다.
장인 장모가 전에 살던 집은 1600년대 지은 초가집 지붕이었다. ⓒ 김성수

한국에서 한옥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기와지붕 아래서 아인슈페너(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래한 커피)를 홀짝이는 커플, 대청마루에 누운 반려견, 그리고 '전통찻집' 간판 아래 와인을 곁들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전통은 오늘도 '해석 중'이다. 한국의 문화유산은 때론 무대, 때론 배경, 그리고 간혹 '리모델링 대상'이 된다.

반면 영국은? 거기선 돌 하나라도 움직이려면 왕실 허가가 필요해 보인다. 유적지에선 먼지마저 중세산(産)처럼 느껴지고, '이 벤치, 엘리자베스 여왕의 조카가 앉은 적 있음'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다. 이쯤 되면 보존을 넘어 거의 숭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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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장모가 전에 사시던 집은 1650년대 지은 초가집이었다. 지금 국립 도서관장으로 있는 김희섭 박사가 영국 유학 시절 우리 집에 놀러 와 이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갔다. 17세기에 지은 집이 벽두께는 1미터가 넘는다. 또 당시 사람들 키가 작아서 천장이 아주 낮다. 특히 문지방은 다 낮다. 그래서 그 조심스런 김 박사도 당시 천장이 낮은 이 집에서 문지방에 자주 머리를 부딪혔다.

하여간 자기 집임에도 우리나라 한옥마을처럼 집수리를 맘대로 못 한다. 일일이 정부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초가집 지붕도 바꿀 수 없다. 당시 장인 장모 집은 '문화재 등재주택'(Graded House)으로 정부에 등록되어 있었다.

이 집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국가가 공식적으로 역사적·건축학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 보호대상으로 지정한 건물을 의미한다. 이 제도를 '등재 문화재 건물'(Listed Building)이라 하며 이들 중 주거용인 경우 '문화재 등재주택'이라고 불린다. 참고로 지금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문화재 등재주택'은 아니지만 120년 전인 1905년에 지은 집이다.

영국과 한국

버킹엄궁 앞 잔디밭에 앉아 샌드위치를 씹다 보면, 문득 '여기가 헨리 8세가 낙마했던 자리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든다. 물론 사실일 리 없다. 하지만 영국은 그런 착각조차도 '역사 체험'으로 연출한다.

성에서 결혼식, 고성 호텔에서 숙박, 펍(선술집)은 빅토리아 시대 간판 그대로 맥주를 판다. 문화재는 박제가 아니라, 호흡하는 공간이다. 셰익스피어 생가, 비틀스 횡단보도, 1823년산 펜스(울타리)까지도 안내판과 함께 '활용'된다.

한국도 문화재를 사랑한다. 단, '손 안 대고는 못 배긴다'. 기와는 남기되 내부는 호텔급. 대청마루엔 LED 조명, 솟을대문 옆엔 무인 키오스크. 궁궐도 예약 시스템만 보면 항공사 예약창 뺨친다.

그 흔한 돌담도 상업화의 마술을 입으면 '전통감성 로맨틱 골목길'로 승격된다. 문화재 보존은 때로 '마케팅용' 감각으로 접근되고 개발 앞에서는 '문화재 해제'가 현실이 된다.

영국의 문화재는 '체험'이고, 한국은 때때로 '체증'이다. 관광객은 한국에서 "이거 사진 찍어도 돼요?"를 묻고, 영국에선 "이런 데서 결혼도 가능해요?"를 묻는다.

우리나라는 보존의 이름 아래 금지 표지판이 즐비하지만, 다행히 요즘은 궁궐 야간개장, 한복 입고 산책하기, 전통시장 콘텐츠화 등 새 바람이 분다. 조심스레 문화재도 '즐기는 대상'으로 변모 중이다.

영국은 문화유산을 '투자자산'으로 본다. 런던탑, 윈저성, 에든버러성… 관광객은 몰리고, 지역은 살아난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수백억을 굴리며 돌 하나까지 관리한다.

한국은 문화재 보존을 '비용'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BTS) 이후 경복궁에 몰린 외국인 관광객을 보면, 우리의 전통이 전 세계에 '팔릴 수 있는 가치'임은 분명하다.

영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지역유산을 체험하며 자란다. 학교견학도, 주말 가족나들이도 유적지로 간다. 우리는 아직 '입시용 유물'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달라지는 세대가 있다. 골목의 오래된 간판에 매력을 느끼고, 한옥 카페에서 인생샷을 건지는 MZ들.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문화재 해석자들이다. 힙과 전통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전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조상의 얼굴'에 금칠이라도 할까?

 한국과 영국의 국기
한국과 영국의 국기 ⓒ 김성수

영국은 조상의 그림자조차 닦아가며 지킨다. 우리는 그동안 '빠른 미래'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과거를 놓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영국이 문화재 옆에 펍을 짓는다면, 우리는 문화재 위에 아파트를 지어왔다. 이젠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을 때다.

유산이란 돌이 아니라 기억이다. 그 기억을 재치와 해학으로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문화유산은 살아 숨 쉬는 이야기가 된다.

영국의 문화와 유산 보존, 활용 실태를 보면서 느낀 건, 단순히 오래된 것을 '떠받드는' 게 아니라, 그 가치를 제대로 알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게 '활용'한다는 점이다. 물론, 영국 특유의 여유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겠다.

우리나라도 충분히 훌륭한 문화와 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낡았다고 구석에 처박아두거나, 먼지만 쌓이게 '모셔만 둘'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서 우리 삶 속으로 끌어들여야 하지 않을까?

돌담길 옆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처럼, 고궁을 배경 삼아 펼쳐지는 현대 무용 공연처럼,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좀 더 '힙'하고 '쿨'하게 우리 곁에 다가올 날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혹시 지금 이 기사를 보며 "우리 동네에도 저런 돌 하나 있었으면…" 싶다면, SNS에 당신 동네 문화재 사진하나 올려보시길. 그 순간부터, 당신은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시민 큐레이터’가 된다. 영국인들이 펜스도 문화재로 만드는 마당에, 우리도 할 수 있다. 우리 할머니가 쓰시던 밥상, 아버지가 타던 자전거도 언젠가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영국#한국#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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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wadans) 내방

<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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