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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을 잊지 못합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100쪽 가까운 한글 파일을 단숨에 읽어 내린 뒤, 가슴 저 아래부터 쩌르르 울리는 어떤 감정을 부여잡으며 흐르던 눈물 방울. 곧이어 내면에서 울리던 함성 소리.
'아, 너무 아프게 아름다운 이야기… 부끄럽다. 난 무어라고 그토록 이 삶을 힘겨워했더란 말인가. 잘 살아야겠다, 진짜 제대로 살고 싶다. 이 밤이 지나면 분명 나는 어제완 다를 것이야!'
올겨울은 참 추웠습니다. 안 그래도 겨울나기가 쉽지 않은 산골에서 '내란'이라는 모진 세상 풍파 속에 출판 살림을 꾸리자니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막막함을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끝도 없이 가라앉는 심정 속에서도 마냥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죠. 읽어야 할 귀한 원고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먹고살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했습니다.

▲1995년 5월 1일 노동절에 창간한 월간 <작은책> 30주년 특별기획, 노동자들이 직접 쓴 노동 현실 고발서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 ⓒ 도서출판 플레이아데스
일하는 사람들의 월간 <작은책> 30주년을 기념하는 책. 지난 5년 동안 나온 잡지를 쌓아 놓고 한 권 두 권 빠짐없이 펼쳤습니다. 한 호당 30편 안팎에 이르는 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1,800편 가까운 글자들을 꼼꼼히 보고 또 살폈습니다.
모든 글이 소중했지만 한 권 책으로 묶기 위해 뚜렷하게 주제 의식이 모이는 것들로 선별해야 했지요. 그렇게 <작은책>이 걸어온 5년의 역사에서 가려낸 글 37편을 꿰고 엮는 시간 속에 새봄이 다가왔습니다.
책으로 탄생할 원고가 마련되었으니 그 내용을 멋지게 품어 줄 제목이 있어야겠죠. 맨 처음 떠오른 것이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였습니다. 그랬다가 '너무… 흔한 거 아닐까?' 싶었어요. 뇌리에 박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가 떠올라서였죠. 좀 구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목은 다시 뽑기로 하고 본격 편집에 들어갑니다. 한글 파일로 보던 글을 책 꼴로 디자인하여 좀 더 깊숙이 만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마치 배우가 극 속 인물과 하나되듯 편집자로서 글 속에 담긴 작가의 삶에 빠져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울분을 토했다가는 '휴, 고맙고 다행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버티고 이겨내 주어서.'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겨울나기 동무처럼 편집 일을 붙잡고 지내며 슬픔, 감동, 희망이 섞인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여러 번 닦아 내게 했던 그 책. ⓒ 도서출판 플레이아데스
겨우살이 동무처럼 편집 일을 붙잡고 지내며 슬픔, 감동, 희망이 섞인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여러 번 닦아 내던 어느 날, 저는 분연히 책상에서 일어나 외칩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 이 책과 딱 맞네! 제목은 이걸로 하자!!"
1995년 5월 1일 노동절에 창간한 월간 <작은책> 30주년 특별기획, 노동자들이 직접 쓴 노동 현실 고발서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는 그렇게 2025년 5월 1일 135주년 세계노동절을 앞두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김현주, 권미정, 이대로, 이창근, 김예숙, 마혜진, 이현진, 김환민, 권동희, 권택흥, 이동수, 이용덕, 최효, 박미숙, 이미영, 윤경신, 박내현, 신주리, 박현수, 허지희, 엄익복, 이병조, 변지현, 최현환, 이훈, 손세호, 조화영, 박애리, 이은복, 지혜복, 소부즈, 짠나, 김유진, 최한솔, 김경민(책 속 차례순).'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에 몸으로 글자를 새겨 주신 서른다섯 노동자 작가님께 두 손 모아 감사 인사 올립니다. 세상이 따뜻하고 정의롭게 바뀌는 길에 작가님들의 글이 소중한 징검돌이 되어 줄 것이라고 단단히 믿으면서요.

▲2025년 5월 1일 135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열린 행사에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와 함께 참여하면서, 비 오는 날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습니다. ⓒ 도서출판 플레이아데스
더불어 30년을 한결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장을 마련해 준 월간 <작은책>, 그 안에 진주처럼 영롱한 스스로의 목소리를 담아낸 숱한 필자님들, 복고풍 멋스런 표지와 책 모양을 구현해 준 디자이너님, 종이와 인쇄 그리고 물류 업체 노동자들, 사전 구매를 위한 인터넷 서점 북펀드에 참여해 준 분들(<작은책> 구독자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큰 힘을 받았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많은 이들의 애정과 응원이 담긴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를 징검다리로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작은책> 창간 정신이 멀리 깊이 퍼질 수 있도록, 어느 작은 산골마을에 둥지를 튼 도서출판 플레이아데스도 계속 힘내어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글을 쓰자》에 몸으로 글자를 새겨 주신 서른다섯 노동자 작가님께 두 손 모아 감사 인사 올립니다. 세상이 따뜻하고 정의롭게 바뀌는 길에 작가님들의 글이 소중한 징검돌이 되어 줄 것이라고 단단히 믿으면서요. ⓒ 도서출판 플레이아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