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해고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대리인이 작성한 것입니다.
순진했다. 지난 16일 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서를 수령한 바로 그 날, 여러 경로를 통해 사용자가 복직이 아니라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법이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 드물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던 걸까.
주먹구구식 주얼리 업계?

▲주얼리업계는 결코 주먹구구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꼼꼼한 곳이다. ⓒ pokmer on Unsplash
노동조합과 한창 교섭 중이던 어느 날, A주얼리는 17명 중 5명을 정리해고했다. 금 한 돈 시세가 60만 원을 넘는 시대. 골드바 수요는 폭발했지만,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 주얼리 주문량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리해고는 단순히 "회사가 어렵다"는 주장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되어야 하고, 그 판단은 구체적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 매출, 영업이익, 자산·부채·현금 흐름 등 객관적인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입증할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
하지만 사용자는 경영 상태를 입증할 자료를 아무 것도 제출하지 않았다. "영세한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회계자료가 없다"고 했다. 이에 해고자들은 주얼리 업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골드O'이라는 회계프로그램을 A주얼리도 사용하고 있으니 자료 제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사용자는, 그 프로그램을 사용 중이긴 하지만 매달 자료를 삭제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주얼리업계가 다 이런 식으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 중"이니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과연 그럴까?
주얼리업계는 결코 주먹구구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꼼꼼한 곳이다. 금을 세공하는 과정에서 날리는 금가루(로스분)를 회수하기 위해, 작업에 사용한 장갑, 세척액, 카페트 등을 모두 모아 '분석'업체에 보내 금을 추출한다. 이 분석업체는 추출한 금으로 금괴를 만들고, 이를 주얼리 세공업체에 보내준다. 금 시세가 높아지면 금괴의 가격도 올라가고, 이렇게 만들어진 수천만 원짜리 금괴는 주얼리업체의 비공식 자산이 된다.
A주얼리는 금가루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30여 평 작업장에 고화질 CCTV를 수십 개 설치했다. 과거 한 직원이 CCTV를 촬영하자, 사장은 곧바로 불러서 "너 지금 왜 사진 찍었어?"라고 물었다. 이처럼 철저하게 관리되는 사업장이 "영세 사업장이라 회계자료가 없다"는 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최후의 수단이 아닌, 유일한 수단이 되어버린 해고
회사가 정말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해고를 단행한다고 해도, 해고는 최후 수단이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은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고용유지지원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사용자 측에서는 "업무가 마비된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서 지원금 신청은 불가능하고 효과가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를 1인 이상 고용하고 있는 모든 사업장은 고용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법정 의무를 회피한 사용자가 자신의 위법행위를 근거로 삼는 것도 이상한 광경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사용자가 얼마든지 다른 해고회피방안을 실시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사용자가 구조조정을 공고하고 불과 24일 만에 해고를 통지한 것을 보면, 애초부터 해고회피노력을 진지하게 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리해고 시 사용자는 '해고대상자 선정'을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입증해야 한다. 사용자는 7가지 평가지표(대체가능성, 근태, 숙련도, 급여, 재취업가능성 등)를 기준으로 해고자를 선정했다고 주장했다. 이 중 '대체가능성'은 조합원이 소속된 부서에 집중적으로 높은 점수가 매겨졌고, 다른 평가지표보다 2.5배의 가중치도 적용되었다. 그런데, 7가지 평가지표 중에서 '대체가능성'을 제외한 6가지를 기준으로 채점해보니 해고 대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즉, 특정인들을 해고대상으로 정해놓고 점수를 그에 맞춘 것이라 보여지는 부분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결과적으로 정리해고의 4가지 요건 중 3가지를 충족하지 못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의무를 지키지 않고 지워버리는, 그들만의 세상

▲1년 동안 5일만 조합활동을 하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을까? ⓒ paradite on Unsplash
사용자는 해고 당시, 노동조합과 교섭 중이었다. 평소 사용자는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 유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를 마뜩잖아했다. 결국 타임오프를 연 700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안을 꺼내들었다. 1년 동안 5일만 조합활동을 하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노동조합이 있을까?
교섭이 교착 상태에 빠진 사이 사용자는 조합원을 모두 해고함으로써 교섭을 완전히 빠져나갔다.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라고 판정하자, 이번에는 폐업이라는 더 큰 칼을 꺼내들었다. 사용자가 해야 할 의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무를 도려내고 없애는 방식으로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폐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주얼리업계에 처음은 아니다. 2024년 말, 안양의 B업체 역시 폐업을 선언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주얼리업계는 인적, 물적 설비를 이전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사라진 업체들이 어딘가에서 다시 영업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위장폐업이고 해고된 근로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사라진 업체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은 당장 오늘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A주얼리 해고자들은 지난 21일부터 회사 앞에서 본격적으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천막을 치던 그날, 종로 주얼리 거리 입구에는, 유력 대선후보가 걸어둔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봉제산업, 주얼리산업 활성화'.
'주얼리산업의 활성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법이 있지만 지키지 않아도 되고,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유령이 된 노동자들은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인가. 활성화 되는 것은 과연 누구인지, 대통령이 될 이는 주얼리 노동자들에게 답을 내놓아야 한다.
우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주인은 배를 갈라 더 많은 황금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법을 피해 폐업을 선택하는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시스템, 제도 속에서 유령이 되어가는 노동자. 이것은 더 이상 우화가 아니다.
우리가 진짜 지켜야 할 것은 '폐업의 자유'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신지심씨는 공인노무사입니다. '주얼리 해고노동자 투쟁기'는 주얼리 업계의 관행과 고용노동부의 방관을 다룬 후속 기사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