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만순의 기억전쟁4> 표지. ⓒ 고두미
"총도 들지 않은 같은 국민을 왜 죽였지?"
학살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긴 6사단 헌병대 일등상사 김만식의 뇌리를 반세기 동안 맴돌았던 이 질문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참혹한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20여 년간 전국을 누빈 박만순 작가의 끈질긴 기록 여정이 <박만순의 기억 전쟁 4>(427쪽, 도서출판고두미)로 완성됐다. 그가 써온 '기억 전쟁'은 비극의 기록이 아니다. 잊혀서는 안 될 역사를 기억하고 성찰해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박만순의 기억전쟁 4>에서는 김만식의 증언한 강원도 횡성과 원주의 학살현장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김만식의 증언을 처음 알렸고 이를 통해 국민보도연맹사건이 1950년 6월 28일 강원도 횡성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점도 알렸다. 역사를 새로 쓰게 한 것이다.
저자는 6사단 헌병대의 이동로를 따라나선다. 강원도에 이어 충북 충주·청주 오창·진천으로 향한다.
이어 경북 안동·문경·전남 신안·영광 사건과도 마주한다. 충북 월악산에서는 빨치산의 활동과 군경의 토벌 작전,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을 통해 충주·제천 지역사를 취재와 답사,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특히 저자는 전남 신안군과 영광군에서의 민간인학살에 대해 '전쟁은 무엇인가?'를 깊게 고민하게 해준 사건이라고 밝혔다. 좌익과 우익으로 갈려져 벌어진 죽음의 굿판을 보고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건이 역사 속에 실재했다"라며 "듣는 귀도, 타이핑하는 손도 부끄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런데도 저자가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어떠한 이념이나 명분으로도 인간 생명을 해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양측에 의해 자행된 학살을 모두 조명하며, 극한 상황에서도 보편적인 인류애와 생명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의 4장에 소개된 '가족 몰살한 원수, 뺨 한 대로 용서한 사람'(부역혐의자를 살려준 이인재… 보복의 악순환을 끊다)은 이인재씨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전쟁의 광기 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잃고도 붙잡혀온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거둔다. 가족의 가해자로 지목된 또 다른 이에게도 '뺨 한 대'로 용서를 표하며 죽음의 악순환을 끊어낸다.
극한의 폭력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은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은 사회와 국가의 성찰 지점과 방식,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저자는 민간인학살 기록의 종합 편인 '박만순의 기억전쟁 4'를 포함해 모두 6권의 기억전쟁 시리즈를 내놓았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기억전쟁', '골령골의 기억전쟁', '박만순의 기억전쟁 1∼3'이다. 저자는 '박만순의 기억전쟁 4'에 대해 '마지막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은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면서도 미래를 향한 길을 모색하게 하고 있다.
박유현 신남고 교사는 서평에서 "이 책을 통해 역사는 왜 배워야 하는지, 국가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 깊이 물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시간이 피워 낸 상처이며 꽃", 기록활동가 강변구씨는 "평화의 집을 짓는 단단한 주춧돌", 정호기(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씨는 "증언자들의 눈물과 피가 어린 기억을 정리한 마지막 결실"이라고 평했다.
저자는 '마지막 책'이라고 했지만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을 접하거나 우리 사회가 '기억 전쟁'을 서둘러 끝내려 한다면 언제든 기록에 나설 것으로 믿는다.
이 말미에 저자는 기억 사업에 대한 바람을 이렇게 적었다.
"하루속히 과거사재단이 설립돼 유해 발굴 등이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시설 위주의 추모 사업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국가폭력 사건의 교과서 수록, 평화 인권 교육실시, 다양한 문화적 매체를 통한 기억 투쟁(사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 민간인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의 관객이 1000만 명을 넘었다는 뉴스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