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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23 11:01최종 업데이트 25.05.23 15:07

다문화는 먼 나라 이야기일까

영국에서 본 한국의 '이방인' 시선... '그들'이 아니라 '우리'로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학교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영국과 한국의 사회적 다양성 존중과 포용문화에 대해 나누고 싶다.

 한영기
한영기 ⓒ 김성수

영국에서 지난 35년간 살면서 가장 놀란 점 중 하나는, '외국인'이라는 말이 존재하긴 해도 실생활에선 그리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국적이나 출신국을 묻는 일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를 '이방인'으로 규정하려는 분위기가 거의 없다는 게 다르다.

영국은 오랜 시간 이민자 사회로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포용하며 살아왔다. 런던 등 도시에서는 히잡을 쓴 여성이 버스를 운전하고, 인도계 경찰이 교통을 정리하며, 동유럽 출신 간호사가 노인을 돌보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이들은 단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영국 사회의 구성원이다.

반면 한국에서 외국인은 아직 '그들'이다. 직장 내에서도 외국인 동료가 있다면 "저 친구는 한국말 꽤 잘해", "김치 먹을 수 있대" 같은 이야기가 수군거림처럼 들린다. 말하자면 아직도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무의식적인 장벽이 존재하는 셈이다.

'다문화'라는 말의 거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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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인다. 처음 들었을 땐 참 따뜻하게 들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결국 '보통 가정'과 '다른 가정'이라는 구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그런 단어 자체가 없다. 다문화는 특별한 카테고리가 아니라 기본값이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섞여 있고, 교사들도 출신 배경이 다양하다. 물론 차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도와 일상 모두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정비되어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다문화 교육'이 별도로 진행되고, '다문화센터'가 따로 운영된다. 취지는 좋지만, 오히려 '다문화'가 특정집단을 지칭하는 말처럼 되어버렸다. 이는 마치 '왼손잡이 교육'을 따로 운영하는 것처럼 어색하고 비효율적이다. 왼손잡이를 위한 배려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사회 전체에서 '특별하게' 다뤄질 필요는 없듯이 말이다.

문화가 다르면 시선도 다르다

영국에서 이민자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세금만 잘 내고 줄만 잘 서면 돼"라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출신이나 피부색보다 중요한 건 시민으로서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다르다. 외국인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한국 음식 괜찮으세요?", "젓가락 쓸 줄 아세요?" 같은 질문이 나온다.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적응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일종의 인사말처럼 되어버린 셈이다.

종교에 대한 태도도 흥미롭다. 런던에서는 거리마다 다양한 종교의 예배당이 보인다. 무슬림, 힌두교, 시크교는 물론이고, 자칭 '제다이교(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제다이(Jedi) 기사단의 철학과 윤리를 바탕으로 생겨난, 실제 존재하는 신흥종교 또는 철학운동)' 신자도 있다. 심지어 실제로 제다이교가 공식종교로 등록되기도 했다. 종교가 그 사람의 일부로 존중되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종교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종교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그냥 착하게 살려고요"라는 대답이 무교 버전의 매뉴얼처럼 퍼져 있다.

언어에 대한 인식 역시 차이가 크다. 영국에서는 이민자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50개 이상의 언어로 수업을 보조하는 시스템이 있다. 한 학교에는 '이 학교의 공식 언어는 43개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을 정도다.

반면 한국에서는 외국인이 10년을 살고도 "한국말 참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듣는다. 칭찬의 의도일 수 있지만, 여전히 '당신은 이방인'이라는 메시지가 은근히 담겨 있다.

다름을 존중하는 법

한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이민자 없이 유지되기 힘든 사회구조에 도달했고, 외국인 주민비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다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달라져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다움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진짜 성숙한 다문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영국 사회의 다양성 존중과 포용 문화는 때로는 과장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이 모든 면에서 이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오래전부터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운 건 하나다. 다문화는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이라는 것이다.

한국도 이제 '같아야만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때로는 너무 똑같은 것보다, 조금 다른 모습들이 섞여 있을 때 훨씬 더 풍성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이제 그걸 배워야 할 때다.

영국은 다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한국은 아직도 다름을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김치나 피자에도 종류가 많듯, 한국 사회도 곧 영국처럼 다양성을 당연하게 느끼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단지 그 과정이 김치 숙성만큼 오래 걸릴 뿐이다. 그러니 오늘은 티 대신 김치전 한 장 부치며, 이렇게 외쳐보자.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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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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