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13일 대구의 반려동물 전문 병원인 '에피소드동물메디컬센터'를 방문해 유기견과 반려동물 보호 현장을 살피고 있다. ⓒ 김문수 캠프
지난주 한 대통령 후보가 대구의 어느 반려동물 전문병원에서 개를 안고 진행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보았다. 하얗고 이쁜 털뭉치 품종견을 안고 있었다. 국민들이 개만 안고 다니고 개만 키우느라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후보가 개를 안고 동물복지에 관해 말하는 게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지금이 선거 기간이구나 하며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후보가 지저분하고 볼품없는 누렁이나 백구를 안고 인터뷰했더라면 귀담아 들었을지 모르겠다. 동물보호소에서 악취를 참으며 손과 옷이 더러워지는 정도의 정성까지는 담기지는 않았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 중 가장 빠른 동물권 유권자를 향한 행보였다.
21일 21대 대통령 후보들의 동물복지 공약이 발표되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열흘 만이다. 정치·경제·안보·외교 등과 비슷한 속도는 아니었지만, 선거운동 열흘 만에 동물복지 공약이 발표된 것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다.
언젠가부터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 기간마다 동물복지 공약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 말은 반려인이 상당한 유권자 분포를 차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선거철에 발표되는 동물복지 공약이 그저 다수의 동물권 유권자를 의식한 구색에 불과한 의례인가 아니면 실현할 의지가 담긴 진정한 공언인가에 대한 숙제는 늘 그 공약을 믿고 주권을 행사했던 유권자들의 몫이 된다.
이번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니 그간 여러 선거에 등장했던 익숙한 내용들이었다. 동물권에서는 금지어나 다름없는 '펫'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후보도 있고 반려인들과 동물권 유권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공약을 낸 후보도 있다. 동물복지기본법 제정, 동물복지진흥원 설립, 동물학대자의 동물사육금지, 불법 번식장 및 유사보호소 규제, 동물보호센터 예산 확충, 실험동물 감축, 동물진료비 표준수가제, 봉사동물에서 야생동물의 복지까지 동물복지의 총론이라 할 정도의 공약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입법 절차를 요구하는 공약들이며 선거철 돌림노래와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한가지 꼭 짚고 가고자 하는 것이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공약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핵심은 동물복지진흥원 설립이다. 위에 열거된 저 공약들을 전담하여 실행할 수 있는 정부 조직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공약을 이행할 전담 행정조직 없이 농림부의 한 부서에서 그리고 지자체 축산과 안에서 동물복지의 모든 정책을 다루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발표되는 동물복지공약은 선거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권자들도 알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동물복지 전담기구 설치 공약이 20대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 명칭만 바뀌어 같은 후보의 대표 공약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뭐가 다를까? 이행가능성 즉 공약 이행률이 다른 점이다. 그동안 선거철마다 쏟아져 나왔던 미려한 동물복지 공약들이 단지 선거 기간임을 알리는 알람 정도로만 여겨졌던 이유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당선한 정치인의 공약 이행에 대한 낮은 신뢰의 예는 지난 정부의 "여가부 폐지" 같은 것에서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도문화벨트 골목골목 경청투어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1일 전남 강진군 강진읍 강진오감통시장을 찾아 한 지지자의 반려견을 품에 안고 인사를 하고 있다. 2025.5.11 ⓒ 연합뉴스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나는 동물복지 전담기구 설치의 필요성을 열심히 주장했다. 주장에만 그치지 않고 선거 기간 내에 반려인 수백 명의 서명을 모아 한 후보의 지지 선언을 두 번이나 주최했다. 그 이유는 명료했다. 공약을 정확히 실현할 후보를 지지했을 뿐이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국민적 큰 상처를 안고 갑자기 치르게 된 만큼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질 중요한 공약들에 집중되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이런 시국에 지금 동물복지를 논할 때냐는 주변의 시선도 충분히 공감한다. 게다가 동물복지 의지가 대통령 후보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1500만 명에 육박하는 반려인들의 정서를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의 바람이 정치·경제·외교 만큼 중대하고 복잡한 것은 아니다. 반려인과 비반려인 간의 갈등을 줄이고 인간의 윤리적 기준의 폭을 고통받고 죽어가는 가여운 생명들에게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반려동물은 차치하고라도, 끝없이 버려지는 유기동물, 고단한 삶의 길냥이들, 처참한 환경의 농장동물, 인간의 공간에 갇힌 전시동물, 고통 속에 희생되는 실험동물, 굶주린 야생동물 등 우리와 함께 지구를 공유하는 생명들의 고통은 곧 인류의 안녕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예비 대통령이 꼭 인지했으면 좋겠다.
동물보호법의 역사도 길지 않은 동물 정책 후진국인 우리나라 동물복지를 견인할 유일한 방법은 동물복지진흥원 같은 전담 행정조직의 설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동물권과 민생을 분리하지 않고 국민의 30%가 바라는 동물복지 문화의 흐름과 사회적 요구를 놓치지 않는 후보가 새로운 K-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