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 연합뉴스/AFP
12.3 비상계엄 때 군을 출동시킨 사령관들의 입이 열리고 있다.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에선 진술을 거부했지만, 자신들의 재판에선 '윤석열의 지시'에 대해 증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증언 내용을 고수할 경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은 탄핵심판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걸로 보인다.
"진술 이상하다" 했던 여인형, 홍장원 신문조서 증거 동의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인형 전 국군 방첩사령관의 내란중요임무종사,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공판이 끝나갈 무렵, 재판장이 여인형 사령관 측의 의사를 확인했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 대한 증인신청을 철회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여인형 사령관 측은 증인신청 철회가 맞으며, 홍 전 차장이 검찰조사에 출석해 진술한 신문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데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는 홍장원의 검찰 진술조서 내용을 반박하기 위해 홍장원을 증인으로 세워 신문할 필요가 없으며, 홍장원에 대한 검찰 신문조서 내용이 사실이라고 여인형도 인정한다는 뜻이다.
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이 홍장원에게 전화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도 대공 수사권을 줄 테니 우선 방첩사령부를 지원해.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우라'고 했고, 이에 따라 여인형에게 전화했더니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14명의 체포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면서 위치 확인을 부탁했다는 게 홍장원이 국회 청문회와 탄핵심판에서 한 증언이다.
홍장원은 검찰조사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진술했다. 이 내용이 포함된 진술조서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여인형이 14명의 체포대상자 명단을 불러줬다'는 홍장원의 진술을 여인형이 인정한 것이다. 이는 지난 2월 4일 탄핵심판 5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때와는 크게 달라진 태도다.

▲2025년 2월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과 증인들이 각각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 연합뉴스
탄핵심판 증인신문에서 여인형은 계엄선포 직후 홍장원과 통화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증언하지 않았다. '홍장원에게 14명을 체포해야 하는데 위치를 파악해 달라고 말한 게 맞느냐'는 질문에 여인형은 "홍장원 차장의 진술에 대해서는 따져야 할 부분이 많다. 형사재판에서 따지겠다"며 증언을 거부했다.
홍장원이 제시한 체포대상자 명단 메모에 나오는 말을 했느냐는 질문에도 "홍장원 차장과 말한 것이 기억이 안 나고 홍장원 차장이 인터뷰한 걸 엊그제 봤는데, 그걸 보면서, 상식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여인형은 자기가 홍장원과 통화에서 무슨 얘길 했는지는 진술거부하면서 홍장원 증언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말을 반복했다.
당시 '홍장원에게 체포 지시를 한 게 아니라 격려 전화를 했다'고 주장한 윤석열 측과 탄핵 저지에 나선 국민의힘, 내란 비호에 나선 일부 언론은 '홍장원 메모'의 조작 가능성, 야당의 회유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홍장원 증언에 흠집을 내는 데 주력하던 상황이었다. 홍장원과 직접 통화를 한 여인형이 홍장원 증언에 의문을 표시한 것도 '홍장원 흠집내기'에 일조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따져보겠다' 했던 여인형이 자신에 대한 재판에서 이를 포기한 것. '여인형이 14명의 체포대상자 명단을 불러줬다'는 홍장원 증언이 사실로 인정받게 됐다. 자연히 윤석열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고 말했다는 홍장원 증언 역시 신빙성이 높아지는 상황이 됐다. 즉, 여인형의 홍장원 증인 철회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여인형 전 사령관의 '태도 변화'는 지난 13일 열린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문상호 전 국군 정보사령관 공판에서도 이미 나타났다. 증인으로 나선 여인형은 발언 시점을 특정하지 못하면서도 비상계엄 선포 전 윤석열이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언급하면서 '현행 법체계로는 어려우니 비상대권을 사용해 조치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관련기사 : 여인형 "대통령이 '비상대권으로 이재명 조치' 말해"https://omn.kr/2dho2).
13일 공판에서 여인형은 증인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정말 마음속에 피눈물이 납니다. 피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저만 이런 게 아니라, 제가 누굴 원망하고 할 수 있는 그런 말도 못 하겠는 게, 부하들 중에도, 이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제 부하들을 생각하면..."
"답변 제한된다" 반복한 이진우 수방사령관 , '의원 끌어내라' 인정

▲국회 점령 시도한 계엄군'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 연합뉴스/AFP
계엄 당시 육군 수도방위사령관이었던 이진우 전 사령관도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나섰는데, 계엄 당시 윤석열과 전화통화 한 사실과 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가 제한된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증언을 거부했다.
하지만 지난 20일 여인형 사령관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선 이진우는 수방사 병력이 국회 본관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과 전화통화한 내용을 증언했다. 첫 번째 통화에서 윤석열이 '상황이 어떠냐'고 해 '사람이 너무 많고 경찰이 다 막고있어서 저희도 못 들어가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윤석열이 두 번째로 전화한 상황에 대해 이진우는 "제가 상황을 똑같이 '되게 안 좋습니다. 어렵습니다. 사람이 들어가고 나가기 어렵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때 (윤석열이) '너희가 네 명이 들어가 한 명이 들쳐업고 나올 수 있잖아' 그 얘길 하셨다"고 증언했다. 끄집어내는 대상은 '허락없이 들어간 사람들'로 이해했다고 이진우는 주장했다.
윤석열이 세 번째로 전화한 상황에 대해 이진우는 "저희가 '불가능합니다. 여기 위험하고 사람이 꽉 막혀 있습니다'라고 같은 얘길 또 드렸는데, (윤석열이) 굉장히 화를 많이 내셨다. (윤석열이) '발로 차서라도 부수고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을 때 (나는) '아 이건 아니다' 했다. 저는 그때 'TV를 안 봐서 이 분이 엄청 화가 났구나, 현실에서 이탈됐구나' 했다. 이 분이 지금 정상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증언했다.
재판장은 '증인은 당시 대통령의 전화를 테러를 소탕하라는 취지로 들었던 게 아니고, 세 번째 전화부터는 안에 있는 인원, 즉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취지로 이해했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진우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