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환국을 앞두고 상해공항에서. 앞줄 가운데 소년이 이종찬 전 국정원장.
환국을 앞두고 상해공항에서. 앞줄 가운데 소년이 이종찬 전 국정원장. ⓒ 조호진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마침내 항복하였다. 국권을 강탈당한 지 35년 만이었다. 일제의 항복은 한국인 모두의 감격이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의 그것은 남달랐다. 장준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충칭에서 일제의 패망 소식을 들었다.

김구 주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은 1945년 11월 5일 장개석 정부가 내준 비행기를 타고 5시간만에 충칭에서 임시정부가 출범했던 상해로 돌아왔다. 그러나 국내 귀환을 위해 미국이 보내주기로 한 비행기는 상해에 머문지 18일 만인 11월 23일에야 도착했다. 이날 김구 등 1진 15명은 미군 C-47 중형 수송기편으로 상해를 출발했다. 15명 중에는 장준하도 포함되었다. 그동안 김구 주석이 장준하의 역량을 지켜보고, 해방 정국에 유능한 인재로 평가했던 것이다.

11월 23일 오후 1시 미군 C-47 수송기는 상해 비행장을 이륙했다. 장준하는 김 주석과 요인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AD
나는 불과 2년이지만, 2,30년을 나라 밖에서 투쟁했던 혁명가들이 이제 고국의 품으로 안기려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수행원으로 내가 이렇게 엄숙히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나의 임무와 사명을 타일렀다. 그 때 석달 전 잠시나마 다시 밟았던 그 황무지의 여의도 비행장의 흙 위에서 내가 생각했던 '나의 임무'가 다시 내게 주어진 것이다.(장준하, 앞의 책)

김주석과 요인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이, 탑승하여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차례로 이들의 표정을 눈여겨 보았으나, 한 평생 생애를 다 바쳐 투사가 되신 그 위엄 앞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수송기의 소음이 나에게 이런 생각을 갖게 했는지 모른다. 다만 굳어지는 안면근육의 움직임으로 무쇠 같은 의지와 신념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앞의 책)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아…아, 보인다, 한국이!" 라는 외마디 외침이 들리고,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기체 안에서 애국가가 합창되었다.

나는 마치 한 소년처럼 여울지는 가슴을 느끼며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뒤에 기대고 있을 뿐, 눈물을 닦으려 하시지도 아니했고, 입을 비죽거리지도 않았으며,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하나의 거대한 돌부처처럼, 우는 돌부처처럼, 그런 모습으로 주먹을 쥐어 무릎 위에 얹은 채 새로운 앞 일을 감당하고 있었다. 상해의 강만비행장에서 우리를 보내던 환송인사의 모습이 빠른 환상으로 엇갈린다. 너무 기뻐서 우는 사람들의 감격 속에 그들이 빠진 것 같아 우리는 곧 서글픔을 느낀 것일까. 기쁨이 지나쳐서 서글프기까지 한 것일까.(앞의 책)

덧붙이는 글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실록소설 장준하]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실록소설장준하#장준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할 말이 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