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재명(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준석 개혁신당, 권영국 민주노동당,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18일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재명(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준석 개혁신당, 권영국 민주노동당,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18일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센터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민주화 이후 첫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과 구속, 극우 폭동과 대통령 파면, 선거를 코 앞에 둔 유력 후보의 파기 환송 등 숨 고를 틈 없이 진행되어 온 후 진행된 첫 대선 토론회가 끝났다. 대선이라는 무게감 때문일까? 아니면 이재명의 독주를 뒤집을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경제 분야라는 한정된 주제 때문이었을까?

4명의 후보는 예측했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그래서 밋밋했던 첫 토론회를 마쳤다. 선거 토론회는 각자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 상반된 관전평이 오고 가는 것이 통상적이라 평가도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틈에서 발견된 것은 현재 보수가 처한 위기의 근원이다.

무난했던 이재명과 존재감 보여준 권영국

AD
우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살펴보자. 이재명 후보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토론에서 잠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침착하고 유연하게 대처했다. 정파적 이견이 없을 수 없는 서민과 자영업,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과 대책을 중심에 두고 실용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응했다.

진보에서 공격받을 수 있는 차별금지법은 "방향은 맞지만 현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논쟁과 갈등이 심화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고 대응했고, 보수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한미동맹은 '국익'을 내세우며 은근슬쩍 넘어갔다.

특히 불법 대북 송금 재판에 대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공격에는 김 후보와 관련된 불법 정치자금 사건과 연결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첨단산업과 재생에너지, 문화 산업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경제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 비전도 제시했다. 지지율 1위 후보는 무난한 토론이 곧 승리라는 점에서 1차 관문을 잘 넘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역시 진보정치의 존재감을 부각해 다른 후보와 차별화하고, 배제되어 온 여러 의제를 제기했다. 성장 패러다임을 버리고 불평등 타파에 주력해야 한다거나, 적극적인 부자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다른 후보들이 결코 말하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의제들이다.

또한, 양비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이번 대선이 명확한 심판 선거임을 강조하며, 김문수 후보에게 내란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따져 묻기도 했다.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제를 공약한 이준석 후보에 대해서는 각 주가 국가처럼 운영되는 연방제인 미국과 한국을 그대로 비교하는 불합리성을 효과적으로 공격했다.

결국 1차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는 무난했고 권영국 후보는 진보정치의 존재감을 잘 드러냈다. 문제는 보수를 자임한 후보들이다.

돌파구 못 찾은 보수

 국민의힘 김문수, 민주노동당 권영국, 개혁신당 이준석,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참석한 가운데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SBS프리즘타워에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토론회가 열렸다.
국민의힘 김문수, 민주노동당 권영국, 개혁신당 이준석,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참석한 가운데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SBS프리즘타워에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토론회가 열렸다. ⓒ 국회사진취재단

이번 토론회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보수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비상계엄 이후 위기에 몰린 보수는 비록 일부였을지라도 성찰과 혁신을 강조했던 2017년과 달리 '극우의 주류화', '극우 행동주의'로 돌파했다. 보수 개신교의 동력을 빌려 보수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적대적 진영 정치를 최대화하면서, 중도를 포기하더라도 보수의 영향력이 2017년 수준으로 떨어지는 건 막으려 했다.

그러나 대선 국면에서는 새로운 방향 수립이 필요하다. 지금 보수에게 필요한 것은 비상계엄과 내란에 대한 '심판' 프레임을 미래의 '비전' 문제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그래야 중도층의 신뢰를 회복하고 잃어버린 지지도를 만회할 기회를 노릴 수 있다. 그러나 두 보수 후보 모두 이런 노력은 해보지도 않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입만 터는 문과 출신들이 다 해 먹는 나라"라고 일갈해 화제가 됐던 이국종 교수의 말이 꽤 인상적이었던지 자신이 이과 출신임을 강조하고 이공계 출신 지도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재명 후보에게 구체적인 수치를 들이대며 전문 용어를 아는지 따져 묻고 반중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또한, 한미동맹과 실용주의 사이의 간극을 활용해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거나 '호텔 경제론'의 이론적 문제를 캐묻고, 주 4.5일제라는 정책 방향의 문제를 사이비종교 문제로 환치했다.

그의 전략은 명확했다. 자신이 똑똑하고 유능한데 상대 후보는 아마추어고 디테일을 모른다고 강조하려 했다. 게다가 요즘 보수의 트랜드인 반중 프레임에 상대 후보가 걸려들게 하거나 최소한 낙인을 찍고, 전통적 보수의 가치인 친기업, 친미 이미지도 끌어모아 자신이 진정한 보수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날이 선 칼처럼 무수히 휘두른 그의 발언에서 보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혁신을 선도할 메시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이 이재명 저격수로서 충분한 자질을 갖춘 후보라는 것을 부각하는 데 머물렀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방식에서 토론보다 말싸움으로 이기려는 특유의 집착이 드러났을 뿐이다.

더 심각했던 것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다. 가장 큰 약점이 될 비상계엄과 내란, 극우의 주류화에 대한 비판은 예상보다 강력하지 않았다. 권영국 후보가 내란의 책임을 강하게 따져 물었을 뿐이다. 그가 강조한 일자리나 경제 성장, 규제 완화, 한미동맹 등은 그동안 보수가 식상할 정도로 반복해 온 정책적 수사에 불과했고, 노동운동가와 노동부 장관 출신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반노동·친기업적 시각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보수의 새로운 철학이나 비전은커녕, 중도층에게 호소할 정책적 메시지도 없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악착같이 후보가 되려 했던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실종된 보수 혁신의 시도

두 사람의 토론이 기대보다 실망스러웠다는 것을 넘어 보수의 대표 주자라는 김문수 후보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이준석 후보에게서 보수 위기의 근원이 포착되었다. 보수의 진정한 위기는 단지 선거에서 몇 번 지고, 야당 탓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보수가 처한 위기의 근원은 스스로 시대를 선도하는 철학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로지 상대 후보의 반정립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전통적인 반공, 친미, 반중, 혐오의 감성에만 기대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보수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나름의 혁신을 시도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반공 보수가 통일방안을 내놓고 남북합의서를 만들어 냈고, 민주인사를 영입해 문민정부를 창출하기도 했다. 기업가 출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경영적 통치를 시도하거나 약탈적 시장 권력을 비판하며 경제민주화의 기치를 내걸기도 했다. 윤석열 영입도 공정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가치를 반영하려 했던 나름의 시도였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대국민 사기극이었다고 하더라도, 보수는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나름대로 시대에 부합하는 철학을 내세우고, 의외성을 지닌 혁신 정책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보수는 시대정신에 발맞춘 철학이나 가치, 정책을 제기하지 못하고 비상계엄과 같은 물리력 이외의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번 대선 토론회에서도 두 보수 후보는 새로운 보수의 철학이나 가치 대신 오직 유력 후보에 대한 반감을 최대한 동원해 반사 이익을 얻어 보겠다는 의지만 읽혔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미 적대 정치에 휩싸인 고정 지지층을 제외하고, 얼마나 더 확장할 수 있을까? 보수를 자임한 후보들의 전략은 그나마 남아 있는 지지층이라도 올곧이 지켜내거나, 그것이라도 나눠 갖자는 심산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 나라 보수는 아직도 자신들이 처한 위기의 근원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가장 극우에 가까운 후보가 가장 큰 보수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면서 예고된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것이 보수의 위기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전적 경쟁 관계로 전개되어야 할 한국 정치가 여전히 퇴행적 갈등 관계에 계속 발목 잡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았다. 보수의 맹주와 그 맹주 자리를 노리는 이들에게 기대를 갖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인가? 남은 두 번의 토론회에서 다시 확인해 보자.

#대선토론#보수위기#김문수#이준석#2025대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