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무엇인가? 이 짧은 질문에서 나는 삶의 두께와 방향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2023년 9월 발간)는 단순한 철학 해설서가 아니다. 중년이라는 인생 2막의 출입구 앞에서, 무거워진 어깨와 복잡해진 감정을 껴안고 있는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또 답하게 만드는 내밀한 거울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강용수(지은이) ⓒ 유니북스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인간 삶의 본질로 보았다. 듣기에 어둡고 비관적으로 느껴지지만, 오히려 그 통찰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고통이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불필요한 불평과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욕망을 좇는 삶은 필연적으로 불행을 낳는다"는 그의 말은, 소비와 성취에 중독된 현대인의 일상을 정면으로 비추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고통은 열의 쾌락에 맞먹는 힘을 가졌다.(46쪽)
현자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47쪽)
책은 쇼펜하우어 철학을 현대의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독자의 마음에 쉽게 스며들게 한다. 저자 강용수는 그 난해한 철학을 일상의 구체적인 예시로 연결하며, 마치 인생 멘토처럼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들려준다. 이 책은 철학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책이었다. 나에게는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선택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놓아야 할 지를 알게 되었고, 무엇을 향해 마음을 모아야 할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쇼펜하우어는 결코 삶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삶의 본질을 꿰뚫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이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길이 바로,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삶"인 것이다.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면 갈등과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57쪽)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그리고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면 이외의 것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58쪽)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깊이 이해하고,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생 2막의 심리 안내서'라 할 만하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욕망을 절제하며, 스스로를 관조하는 삶. 어쩌면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귀한 고독' 속 진정한 행복의 모습일지 모른다.
철학이 삶을 위로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마흔'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인생 문턱에서 찾아왔다. 작가로서, 중년의 독자로서, 나는 이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조금은 배운 듯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아니 대단히 고맙다.
40대 부터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웃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무엇보다 운동을 통해 건강을 챙겨야 한다.(88쪽)
윌리엄 제임스의 명언을 읊어 본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이 말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나이가 들수록 '비교'는 무례해진다. 젊을 땐 비교로 에너지를 만들고, 중년이 되면 비교로 자존감을 잃는다. 삶의 통증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자란다는 말이 왜 이리 무섭도록 정확한지. 책의 후반부에서 나는 가장 오래 머물렀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행복도를 낮추는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사회적 비교가 심한 편이며 그것에 따라 행복도가 낮아지는 경험은 노인층이 가장 많다고 한다.(182쪽)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타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명예, 지위, 명성, 출세 등으로 나타난다. 나도 남을 평가할 수 없고 남도 나를 평가할 수 없다. 그리고 호감가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라고 경고 한다.
타인의 평가에 속아 자신의 건강이나 목숨을 바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바탕에는 탐욕과 집착이 자리잡고 있다. 결국 그런 노력이 아무런 실속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된다.(195쪽)
"허영심이 들면 말을 많이 하고 자긍심이 들면 과묵해진다"는 구절이 죽비처럼 나를 깨운다. 말과 존재, 겉과 속, 보여주기와 살아가기의 본질적인 차이를 알려주는 지혜이다. 오늘날 SNS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서 과도하게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많아진 것도 이 구절과 연결이 된다. 허영은 화려하고 시끄럽지만, 자긍심은 조용하고 깊다.
우리가 세상의 고통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타인에 대해서도 늘 당당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을 빼앗아 가는 것은 운명밖에 없다. 죽는 순간까지 우리가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에서 배워야 할 점들이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이 내 삶을 지나간다는 경험을 주는 책이다. 무작정 긍정을 외치기보다, 삶의 결을 함께 건너는 동반자를 찾는 이들에게 나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