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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9 11:01최종 업데이트 25.05.19 11:01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귀하신 손님

강화 들녘에 찾아온 천연기념물 저어새 무리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모내기철입니다. 예전 농촌에선 논에 모를 내는 시기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였는데, 요즘은 기계화 영농으로 농번기가 따로 있나 싶을 정도로 지나갑니다.

그래도 들녘에 트랙터 써레질 소리가 요란합니다. 이른 벼는 이양기로 벌써 모를 냈습니다. 찰랑찰랑 물이 들어찬 무논엔 밤이면 어디 숨어 있다 나타나는지 개구리가 시끄럽게 떠듭니다.

자연의 순환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생물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놀랄 일입니다. 참 신비스럽습니다. 뒷산에 "뻐꾹 뻐뻐꾹" 뻐꾸기가 노랠 부릅니다. 사촌간인 검은등뻐꾸기도 "홀딱벗고 홀딱벗고" 야릇한 소리로 맞장구를 칩니다. 요 녀석들은 때맞춰 짝짓기하고, 어디에다 탁란(托卵)할지 두리번두리번 서두를 것입니다. 박새나 딱새와 같은 작은새 둥지를 골라 얌체 짓을 할 게 뻔합니다.

어, 저어새 녀석들, 올핸 이르게도 왔네​

 천연기념물 저어새가 강화군 남단 화도면 들녘에 찾아왔습니다.
천연기념물 저어새가 강화군 남단 화도면 들녘에 찾아왔습니다. ⓒ 전갑남

때를 알아챈 게 또 있네요.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 종인 저어새가 나타났으니까요. 무논 들녘을 찾은 천연기념물 205호인 귀한 손님 저어새가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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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가랑포들녘. 진강산 양도면과 마니산 화도면 사이에 있는 드넓은 벌판입니다. 인근에는 소루지마을 갯가가 가까이 자리 잡았습니다. 며칠 전, 모를 낸 논에 흰색 새떼가 멀리 보입니다.

처음엔 '저 녀석들 백로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녀석들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긴 부리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논바닥을 휘젓고 있지 않은가! '저어새가 틀림없다!' 예년에는 모내기가 다 끝나 갈 무렵에 목격했는데, 올핸 좀 일찍 찾아온 것 같습니다.

 강화들녘을 찾은 저어새. 올핸 예년에 비해 일찍 찾아온 듯싶습니다.
강화들녘을 찾은 저어새. 올핸 예년에 비해 일찍 찾아온 듯싶습니다. ⓒ 전갑남

나는 반가운 마음에 휴대폰을 들고 녀석들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열 마리 남짓 저어새가 부지런히 먹이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멀뚱멀뚱 고개를 들고 먼 산을 쳐다보는 백로도 보입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먹이를 찾는 저어새에 비해, 백로는 눈에 띄는 것으로 먹이를 해결합니다. 두 개체 간 생존방식이 다릅니다. 그러고 보면 부지런함에 있어 저어새가 본받을 게 많은 것 같습니다.

건강한 자손을 많이 퍼트려라​

주걱 모양의 부리가 특징인 저어새는 가까이서 보면 몸짓이 상당히 큽니다. 몸길이가 75cm 정도 되니까요. 흰색이고 부리와 다리는 까맣습니다. 긴 부리를 이용 좌우로 저으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 때문에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여진 게 아닌가 싶네습니다.

저어새는 주로 얕은 바닷가가 있는 갯벌에 서식합니다. 또 갈대밭이나 논에서 물고기, 개구리, 수생곤충 등을 잡아먹습니다. 혼자보다는 작은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그리고 5월에 알 4~6개를 낳습니다.

 경계심이 많은 저어새가 하늘로 납니다. 기품이 있습니다.
경계심이 많은 저어새가 하늘로 납니다. 기품이 있습니다. ⓒ 전갑남
 유유히 하늘을 선회하는 저어새.
유유히 하늘을 선회하는 저어새. ⓒ 전갑남

올해 들어 모를 낸 논에서 처음 만나는 저어새! 천천히 다가서는데, 경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발길을 멈추자 녀석들은 다시 뒤뚱뒤뚱 앞으로 나아갑니다.

나도 같은 속도로 살금살금.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녀석이 신호를 보냈는지 일제히 하늘로 솟구칩니다. 휴대전화 줌을 당겨 얼굴을 크게 찍으려는 찰나를 놓쳤습니다. 산란기 때 생기는 목 주위 노랑 띠를 담지 못했습니다.

녀석들 혼비백산하는 것 같더니 유유히 하늘을 선회합니다. 공연히 먹이 사냥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귀한 손님 저어새가 우리 고장에 찾아왔으니 사는 동안 자손을 많이 낳고 개체수가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저어새>

나지막한 물가
저희가 사는 곳이에요
남들이 뭐라 하든
앞만 보고
주걱 부리로 휘저어요
고개가 아프지 않으냐고요?
소중한 일상이니까
행복하기만 한걸요
- 자작시

#저어새#천연기념물저어새#강화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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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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