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갖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 월간 옥이네
사람이 사는 곳, 아니 그냥 지나치는 곳이라도 쓰레기는 늘 존재해왔다. 자급자족이 일상이던 농촌도 예외는 아니다. 생활 쓰레기와 농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산물은 밭 한가운데 모아 태우거나 퇴비로 활용했다. 지금과 같은 '도시적' 쓰레기 처리 체계가 아직 농촌까지 닿지 않던 시절, 이는 주민들이 스스로 고안한 실질적인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소각은 더이상 적절한 쓰레기 처리방법이 아니다. 특히 지난 3월 전국을 휩쓴 산불 이후, 산림청은 농촌 쓰레기 소각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군서면 사양리에도 길게 나부끼는 '산불 심각' 현수막이 곳곳에 붙었다. 지난 4월 9일, 충북 옥천군 군서면 사양리를 찾아 농촌 쓰레기 문제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더 편해졌지만, 해결된 건 아니다

▲각종 쓰레기들이 쌓여 있다. ⓒ 월간 옥이네
군서면 사양리는 약 130가구가 거주하는 마을로, ▲마랑골 ▲서성골 ▲마실미 ▲뱀골 ▲논골 5개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여느 농촌 마을이 그러하듯 사양리 역시 생활 쓰레기는 종량제봉투 또는 일반봉투(재활용)에 담아 집 앞, 마을 어귀 등 자연마을별 각기 다른 규칙을 적용해 내놓고 있다. 매주 수요일은 재활용 쓰레기 수거 차량이, 목요일은 일반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들어와 이를 수거한다.
수거 차량이 방문하기 전날 또는 당일에는 집 앞에 배출하고 수시로 쓰레기를 내놓을 땐 마을 입구와 같은 공동 배출장소를 이용한다. 마랑골에 거주하는 정정강(83)씨는 쓰레기 수거 차량이 오는 날을 맞춰 집 앞에 쓰레기를 내놓곤 한다.
"며칠 전에 버스에서 내려오다가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주저앉았어. 병원에 가보니 퇴행성 관절염이라네. 요즘 걷기가 힘들어졌는데, 집 앞에 쓰레기 내놓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야. 한 오전 9시 전후로 수거차량이 와서 집 앞에 내놓은 쓰레기를 가지고 가. 수요일에는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같은 거, 목요일에는 노란 봉지(종량제봉투)를 내놓지."

▲충북 옥천군 군서면 사양리에 종종 나타난다는 고물상 트럭. 재활용이 안 되는 고철류는 고물상 트럭에 실어 보낸다. ⓒ 월간 옥이네
별도의 분리수거함이 설치되지 않은 사양리지만, 정정강씨는 쓰레기 배출에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들어오지 않아 고향을 찾은 자녀들의 손에 쓰레기를 들려 보내곤 했던 6년 전에 비하면 말이다.
"6년쯤 전엔 재활용 쓰레기 수거차량이 안 들어왔어. 그래서 아들딸이 오면 우리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다 가져갔지. 유리 깨진 것도 꼭꼭 싸가지고 자기네들 사는 아파트에 버렸어. 응, 그게 얼마나 불편해. 이제는 애들이 버려준다고 해도 필요 없다고 하지. 그때랑 비교하면 편해졌어."
길 위에서 20일, 방치된 쓰레기

▲마을 공적비 아래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가 쌓여 있다. ⓒ 월간 옥이네
김종범(60) 이장은 "주민들도 현재의 쓰레기 배출방식에 익숙해져 큰 어려움은 없지만, 문제는 외지인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라고 토로했다.
"오는 길에 방치된 쓰레기 더미 보셨어요? 오늘이 재활용 쓰레기 수거 차량이 오는 날이었는데, 계속 남아 있는 거예요. 수거 차량이 와도 기준에 맞는 것만 수거해가니까 오래 방치되는 쓰레기가 생기죠. 저거 대부분이 외지인이 버리고 간 쓰레긴데 방치된 지 20일도 넘었어요."
마랑골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마을 공적비가 외지인들이 쓰레기를 자주 투기하고 가는 장소다. 지난해 김종범 이장은 '불법 쓰레기 투기 금지. 벌금 50만 원'이라는 문구를 붉은 글씨로 복사해 마을 공적비 옆에 붙여뒀다. 한동안 버리는 사람이 없어져 경고 문구를 뗐더니 그사이를 못 참고 또 쓰레기가 쌓였단다.
"다시 경고 문구를 붙이던지, CCTV를 설치하던지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아요. 오래 방치된 쓰레기는 면사무소에 요청해서 처리해 달라고 해요. 그런데 요청한다고 금방 처리되는 게 아니라 또 한참 기다려야 하죠."
집에서 3분 이내 거리에 분리수거장이 마련돼 있고, 배출만 하고 나면 그 이후 과정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도시와 달리 농촌 마을은 수거 차량 방문 시간에 맞춰 쓰레기를 내어놓고, 그 공간을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것도 주민들의 몫이다. 이전과 비교해 편리해졌다지만 여전히 쾌적한 쓰레기 배출과 거리가 먼 현실이다.
폐비닐과의 불편한 동거

▲충북 옥천군 군서면 사양리 도로 한편에 영농폐기물이 방치돼 있다. ⓒ 월간 옥이네
사양리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한다. 농사를 지으며 발생하는 각종 영농폐기물과 농업부산물 배출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고추 농사도 짓고 옥수수도 짓고 하지. 빈 땅 안 놀리려고 계속 농사짓는 거야."
마랑골 마을 공적비를 지나다 만난 연재목(81)씨가 영농 폐기물 배출법을 일러준다.
"농약병은 씻어서 회관이나 경로당에 있는 수거함에 넣고, 폐비닐은 포대에 담아 상중리 도로변에 있는 폐비닐 공동집하장에 둬야 해. 거기 말고는 안된대. 경운기로 가면 10분 조금 넘게 걸리나?"
폐비닐은 이웃 마을인 상중리에 마련된 폐비닐 공동집하장에 배출해야 한다(옥천군에는 99개의 폐비닐집하장이 있다. 이 중 군서면에 위치한 폐비닐집하장은 단 2곳뿐이다). 비닐이라 가볍다고 생각하면 오산. 흙과 물이 잔뜩 묻은 데다 그 양도 많아 무시할 수 없는 무게와 부피다. 서성골에서 농사짓는 성영모(65)씨도 말을 보탠다.
"요새는 비닐 없이 농사를 못 지어요. 그런데 영농기가 끝나면 수거해 버려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예전에는 비닐도 많이 안 썼고, 밭에 두고 소각해 처리했는데, 지금은 그러면 큰일 나죠."
그나마 농약병과 폐비닐은 근처에 수거함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재활용이 안 되는 폐기물(차광막, 모종판, 토양피복재 등)은 더욱 처치곤란이다. 성영모씨는 "재활용 안 되는 폐기물은 (군북면) 추소리 폐기물종합처리장에 가져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많이 모이면 트럭이나 화물차에 실어서 추소리까지 가야 해요. 부피도 크고, 마을에서 차를 타고 20~30분이 걸리니 경운기로는 못 옮기죠. 다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거라, 큰 차가 없거나 고령 주민들은 비교적 젊은(60~70대) 주민한테 부탁해야 하죠."
'덜' 배출할 방법도 고민해야

▲군서면 곳곳에서 모인 폐비닐이 상중리 폐비닐 집하장을 뒤덮고 있다. ⓒ 월간 옥이네
여성 농민 김경준(83)씨는 봄만 되면 폐비닐 때문에 늘 고민이 많다.
"고랑 치는 데 쓴 비닐 수거하는 차는 마을로 안 들어와. 비닐 치우려면 상중리까지 가야 하는 데, 내가 경운기 운전을 할 줄 알아? 비닐이 무겁기는 얼마나 무겁다고. 여자 혼자 농사지으면 처리를 못 해. 남자들한테 아쉬운 소리하고 좀 싣고 가라고 그러지."
영농폐기물이 많이 나오는 봄철에 군서면사무소 또는 새마을회에서 폐비닐을 대신 수거해주기도 하는데, 이 또한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김경준씨의 고추밭에도 그렇게 오도 가도 못한 비닐 더미가 여전히 쌓여있단다.
"어떻게 할지 방법을 알려주고 (소각)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무작정 태우지 말라고만 하면 나같이 혼자 농사짓는 여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 쌓인 비닐을 보면 저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한숨만 나오지."
봄을 맞아 색색의 꽃이 피어나는 사양리 곳곳에서 쓰레기 더미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서성골 전우문(72)씨는 "쓰레기 처리로 곤혹스러워하는 이웃이 많다"며 "무작정 개인에게 쓰레기 처리를 요구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썩는 비닐 같은 친환경 자재를 일반 농가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해 줘야 영농폐기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어요? 그걸 쓰면 따로 비닐을 처리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잖아요. 우리 마을에서 면에다가 그 비닐 다섯 묶음 달라고 신청했는데, 겨우 한 묶음 나오더라고. 쓰레기를 덜 배출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해요."

▲옥천군 산림과가 붙인 현수막 뒤, 미처 처리하지 못한 비닐이 방치돼 있다. ⓒ 월간 옥이네
사양리의 고민,옥천군의 답은? |
- 고령·여성 농민을 위한 영농폐기물 처리 지원 사업은 없나요?
환경과 : "농번기 전후로 읍면별 순회 수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개별 농가 방문은 어려워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합니다. 모든 마을을 상하반기 한 번씩은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재활용 불가 폐기물은 군북면 추소리 폐기물종합처리장에서 무상 배출이 가능합니다. 2023년 제정된 '옥천군 영농폐기물 수거처리 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 근거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7천만 원 예산으로 148톤(2023~2024년 폐기물 수거량 평균값) 수거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 일반 농가에도 친환경농자재를 지원해 영농폐기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농촌정책과 : "2023년부터 일반 농가에 생분해성 멀칭필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생분해성 멀칭필름은 기존 비닐과 다르게 자연 분해되어 영농폐기물 수거·처리 부담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올해는 군비 3천500만원으로 160개 농가를 선정해 공급 중입니다(4월 25일 기준). 벼, 과수, 임산물 농가를 제외한 모든 농가가 읍면사무소를 통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
월간옥이네 통권 95호(2025년 5월호)
글 사진 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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