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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6 16:12최종 업데이트 25.05.16 16:12

극단주의와 결별하기

극단주의자들이 어떻게 제도권 정당을 장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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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에서 촬영된 사진
광장에서 촬영된 사진 ⓒ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보수 대 진보'에서 '민주 대 반민주'로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이 내린 계엄령은 이 땅의 민주주의에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이 계엄령을 통해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극단주의자들이 거침없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극단주의자들의 말과 행동, 폭력을 여당인 국민의힘이 승인하고 동조하는 현상까지 보였다는 점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헌법재판소가 계엄령에 대해 위헌이라고 명확하게 결정했음에도 극단주의가 여전히 정치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한마디로, 우리 민주주의가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다. 앞으로 당분간, 아니 상당 기간 우리 정치지형은 보수 대 진보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민주 세력 대 '반' 민주 세력의 대결이 될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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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대 진보의 구도에선 '중립'이라는 지형도 있을 수 있지만, 민주 세력 대 '반'민주 세력의 대결에선 중립이 있을 수 없다. 현실 정치에서 '중립'이란 정치적 입장이 허용되는 곳은 오로지 민주주의밖에 없다. 한마디로 민주주의가 없다면 중립도 없다.

무엇보다 반민주세력의 핵심인 극단주의자들이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유일하게 허용하는 중립은 '정치적 침묵' 뿐이다. 그런 정치적 침묵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건 중립주의자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이들, 나만 괜찮으면 상관없는 이들에 불과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극단주의자들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에 중립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극단주의자들이 어떻게 제도권 정당을 장악하는가

극단주의자들이 정치를 장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을 알려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는 미국이다. 지금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극단주의자와 그 극단주의자와 손잡은 공화당, 그 공화당의 지지자들이 미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하여 이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정치를 장악해 나간 과정을 살펴보면, 더욱 우리 안의 극단주의자들에 강력히 대응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트럼프와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정치를 장악해 나가는 과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저작이,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교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The Tyranny of Majority)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극단주의자들이 정치에 등장하게 되는 배경으로 자체적으로 선출직 공직자 후보를 내놓을 수 없는 무능한 정당을 꼽는다. 자체적으로 이 능력을 상실한 정당이 외부에서 인기가 좋은 아웃사이더를 영입하는데, 주로 이렇게 영입된 정치인들이 정당을 삼키고 극단주의적 정치를 하는 경우가 잦다. 히틀러가 대표적 인물이다.

인기 있는 아웃사이더를 영입하는 정당은 새로이 영입된 인사를 자기 통제 아래 둘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자체적으로 선출직 공직자를 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정당이 이들을 통제한다는 건 대단한 착각이다. 아웃사이더는 자신의 인기를 활용해 정당을 장악해 버린다. 사례는 멀리 있지 않다. 정확하게 국민의 힘에서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일이다.

극단주의자들이 어떻게 '다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이런 극단주의자들이 무너뜨리는 건 정당만이 아니다. 이들은 '다수' 민주주의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들이 다수 민주주의를 엉망으로 만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시작은 언제나 소수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할 때 일어나는 세 가지 전형적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선거 결과를 부정한다.
둘째, 평소에 멀쩡해 보이던 정당이 극단주의자들이 행사한 폭력을 옹호한다.
셋째, 극단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정당이 극단주의자들과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결탁하여 지지한다.

트럼프는 2016년 자신이 이긴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제도가 자신에게 불리하다며, 선거에 진다면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주장은 거짓말이었다. 실제 트럼프는 국민이 행하는 보통선거에서 힐러리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공화당의 기반인 인구가 작은 주, 시골 주에 유리한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 때문에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오히려 선거제도의 피해를 본 건 힐러리였다.

그럼에도 201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자 선거가 사기라는 주장을 펼쳤고,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하자 트럼프는 자신의 거짓 주장을 반복했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는 패배에 승복하지 않고 대통령 선거 결과를 승인하려는 의회를 공격하라고 부추겼다.

여기서 더 놀라운 건 공화당의 반응이었다. 공화당은 의회가 침탈당했음에도 폭동을 일으킨 이들을 옹호했다. 오히려 트럼프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의회 침탈 이후 행해진 트럼프 탄핵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들을 당 지도부에서 쫓아내 버렸다.

놀라운 건 레비츠키와 지블렛이 묘사한 이 전형적인 세 가지 현상이 계엄 전후 우리나라에서 똑같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서부지법 폭동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여당이 폭동을 부추기고 옹호했을 뿐 아니라, 전광훈을 비롯한 극단주의자들과 손잡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극단주의자들은 제도와 관행을 존중하지 않는다

극단주의자들이 정당과 정치에서 영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국가의 제도와 관행이 무너져 내리는 건 시간문제이다. 극단주의자들이 제도와 관행을 이용할 뿐,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엄 이후의 상황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이런 경향을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우선 12월 7일,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는 국회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국민의 힘이 투표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소추표결 자체가 성립하지 못했다. 입법부의 대표자들이 입법부를 침탈한 계엄을 두고 판단하길 거부한 것이다. 12월 16일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몫으로 선출된 헌법재판관인 마은혁 임명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1월 16일엔 대통령 체포를 두고 헌법에는 있으나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체포적부심 심사가 있었다. 더하여, 1월 19일엔 서부지법 점거 폭동사태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여당 소속 의원들이 폭동을 부추기고 옹호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3월 7일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이 취소되었는데,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석방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이후 검찰이 즉시항고, 일반항고를 모두 포기하는 또 한 번의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에도 이례적인 일은 계속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한덕수 권한대행이 내란 피의자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사건이 펼쳐지는 내내 국민의힘이 극단주의자들이 펼치는 부정선거론에 동조하고, 다른 헌법기관인 사법부 및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계속 공격하는 데 힘을 보탰다는 사실이다. 제도와 관행을 유리하면 이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격하는 것은 극단주의자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방식이다. 이에 국민의힘이 동조하고, 지지하고, 더 나아가 때로 주도한 점은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다.

극단주의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민주적 시민들은 극단주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첫째, 부정선거론과 명확하게 단절해야 하며, 부정선거론을 믿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과도 명확하게 단절해야 한다. 부정선거론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출발하는 체제다. 만약 선거가 부정하다면 체제가 내리는 모든 결정 자체가 부당한 결정으로 이어지는데, 정당하지 못한 대표자가 정책 결정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승자가 이기는 게임이기도 하지만, 패자가 승복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패배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평화적으로 넘겨주는 규범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둘째, 극단주의자들의 위헌적 행위나 폭력에 대해 관용하지 말아야 한다. 1981년 이전 스페인은 군사쿠데타 등 정치변동에 시달리는 국가였다. 하지만 1981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이를 주도한 세력을 모두 찾아내 30년형이라는 확고한 처벌을 가한 뒤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었다. 반면, 의회 폭동을 주도하고도 살아남은 트럼프는 다시 권력을 잡아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이 되었다. 우리가 계엄을 일으킨 세력, 계엄에 동조해 폭동을 일으킨 세력을 철저하게 찾아내 처벌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를 정치보복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국가를 전복할 수 있었던 범죄적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두고 정치보복이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일이다.

셋째, 극단주의와 손잡은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에 극단주의 세력과 단절할 것을 요구하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협상의 여지를 주어선 안 된다. 특히 극단주의 세력이 요구하는 사안은 절대 협상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더하여 극단주의 세력을 온전히 제어하여 고립시킬 수 있을 때까지 민주적 세력이 연대를 강력하게 유지해야만 한다. 극단주의와 손잡은 정치인과 정당은 선거를 통해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극단주의와 손잡은 정치인들을 낙선운동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더하여 이보다 더 좋은 대응방식을 찾을 수 있도록 극단주의에 맞서는 활발한 정치토론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12.3 계엄으로 대표되는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은 진보이든, 중도이든, 보수이든, 민주적 세력으로 규합해 반민주 세력을 고립시켜야만 할 때이다.

 2024년 12월 7일 ‘민주주의와 희망으로 새롭게 칠하자’ 행사에서 작성된 피켓
2024년 12월 7일 ‘민주주의와 희망으로 새롭게 칠하자’ 행사에서 작성된 피켓 ⓒ 범청년행동

〈참여사회〉 보러 가기!
📌본문이 포함된 〈참여사회〉 2025년 5-6월호는 다음 링크를 통해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eoplepower21.org/magazine/1991415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에서 발간한 〈참여사회〉 2025년 5-6월호에 실렸습니다. 필자는 김만권 정치철학자입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극단주의#민주주의#정당#반민주세력#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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