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준비공판에 출석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5.5.16 ⓒ 연합뉴스
"시작도 윤석열, 끝도 윤석열이다. 대통령의 격노에 의해서 시작된 사건이기 때문에 외압과정을 밝히려면 몸통이자 주체인 윤석열에 대한 증인신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윤석열에 대해 증인신청을 보류한다고 했는데 안타깝다."
박정훈 대령(해병대 전 수사단장) 변호인 김규현 변호사가 16일 오전 박 대령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사건 2차 공판준비기일을 마친 뒤 기자들 앞에서 한 하소연이다.
김 변호사는 "(윤석열이) 전 대통령 신분이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이렇게 채택이 안 될 이유 전혀 없다"며 "법 앞의 평등이 누구 앞에서 지켜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채택 결정이 내려지길 바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그랬을까? 이날 서울고등법원 형사4-1부(부장판사 지영난·권혁중·황진구)는 박 대령 측의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 증인 신청에 대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 명령의 배경을 확인하고 싶어서 (박 대령 측에서) 신청한 걸로 보인다"며 아래와 같이 입장을 밝혔다.
"명령의 배경을 확인할 필요성도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심판의 대상은 국방부 장관이나 해병대 사령관의 피고인에 대한 보류 명령이 있었는지, 중단 명령이 있었는지를 가려야 한다. 명령이 있었다면 명령 자체로 적법한지 판단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 또 수사외압과 관련해서 공수처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니 이 부분은 다른 증거를 조사해서 필요성 여부는 추후 판단하기로 하고 증거신청은 보류하겠다."
이날 박 대령은 군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았다.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지만, 박 대령은 자신을 응원하는 해병대 전우를 비롯한 수십 명의 시민들과 함께 법정을 찾았다. 재판에 앞서 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와 박주민·전현희·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함께 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준비공판에 출석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5.5.16 ⓒ 연합뉴스
"공소사실 특정되지 않는다" 조목조목 따진 재판부
이날 재판부는 공판 시작과 동시에 군검찰을 향해 "지난 4월 30일 군검찰에서 공소장 변경 신청을 냈다. 당초에는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한다고 했는데, 공소장 자체를 추가하는 걸로 변경 신청했다"라고 말한 뒤 "변경된 공소장에는 구체적 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재판장인 지영난 부장판사는 군검찰이 변경해 제출한 공소장에 대해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발언을 일곱 차례나 반복했다.
"변경된 공소 사항, 줄 쳐진 부분을 보면 해병대 사령관 김계환과 해병대 부사령관 정종범으로부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이첩 보류 명령을 전달받았다고만 추가됐다. 김계환과 정종범은 전달자인 거지, 지시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종섭) 장관이 언제 어떻게 명령을 했는지가 특정이 돼야 하는데, 공소사실 변경서에 의하면 이 부분이 전혀 특정이 안돼 있다."
재판부는 "전달자로 적시된 김계환과 정종범이 피고인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하면서 전달을 했다는 것인지 적시가 돼야 하는데 공소장 변경 신청서는 이런 부분이 특정이 안 돼서 (공소장 변경에 대해) 허가 여부를 저희가 결정할 수 없다"며 "(군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하겠다는 입장이면 이런 부분을 명확히 해서 다시 한번 보완을 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박 대령 측이 신청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에 대한 문서송부 촉탁신청도 기각했다. 재판부는 "신청한 취지는 결국 대통령의 어떤 개입이 있었는지 관련한 주장 증거로 요청한 거 같다. 노상원 수첩 기재 자체가 대통령의 격노여부 판단과 관련이 있다고 보긴 어려울 거 같다. 재판부 협의 결과 이 부분 증거신청은 기각하겠다"고 했다.
재판부는 내달 13일 오전 10시에 첫 공판기일을 열어 공소장 변경 허가 여부를 정리한 뒤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어 같은 달 27일 오후 2시 김계환 전 사령관을, 7월 11일 오전에는 이호종 전 해병대참모장, 오후에는 이종섭 전 국방장관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 대령은 지난 2023년 10월 6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기록 민간이첩 보류 명령에 따르지 않고 항명했다는 혐의로 국방부 감찰단에 의해 기소됐다. 지난 1월 중앙지역군사법원은 사건 당시 박 대령에게 명확한 이첩 보류 명령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첩 실행 때는 중단 명령이 있었지만 이는 정당하지 않은 명령으로 항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23년 8월 보직 해임된 박 대령은 수사와 재판 기간 무보직 상태로 있다가 1심 선고 뒤인 지난 3월 해병대 인사근무차장으로 보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