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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9 11:07최종 업데이트 25.05.19 11:07

탄소중립을 돈으로 사는 것이 맞을까?

기후 위기 시대, 금융의 역할 ④

기후 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하고 중차대한 사안이다. 기후 위기와 금융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돈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가에 따라 위기를 증폭시킬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글은‘기후 위기 시대, 금융이 수행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과학 기반 목표 행동(Science-based Target Initiative, 아래 SBTi)이라는 기구가 있다. 기업과 금융회사가 기후 위기에 맞설 수 있도록 돕는 국제단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zero)을 달성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어떻게 줄여가면 되는지 목표와 지침, 도구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

이 단체의 '인증'을 받으려면 온실가스 규약(GHG protocol)의 범주 기준(scoup 1/2/3)에 맞춰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이행 실태를 검증받아야 한다. 2023년 말 기준, 4200곳이 넘는 회사가 인증을 받았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 아니지만, 2024년 말 기준 인증 기업 수는 7천 곳이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SBT 인증을 받은 기업 누계 (2015∼2023) SBTi Monitoring Report 2023
SBT 인증을 받은 기업 누계 (2015∼2023)SBTi Monitoring Report 2023 ⓒ SBTi

SBTi 인증을 받으려는 기업 수가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이 인증서가 소비자는 물론 투자자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어 기업 가치를 높이는 지렛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회사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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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관점에서, 인증서 획득의 가장 큰 걸림돌은 세 번째 범주(Scoup3)다. 세 번째 범주란 기업의 가치사슬 전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말한다. 이 범주는 다른 범주(1,2)보다 훨씬 많은 가스가 방출되지만, 추적과 측정이 힘든 데다가 감축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걸림돌을 간단히 제거할 방법이 있다. SBTi가 '탄소상쇄'를 인정해 주면 된다. 탄소상쇄(carbon offset)란 기업이 탄소 발생을 줄이는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을 탄소중립 성과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투자의 대가로 받은 크레딧(credit)이 감축에 기여한 '증거'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약 1년 전쯤 SBTi 이사회가 탄소상쇄를 세 번째 범주(Scoup3)에 포함하겠다고 발표(24.4.9)해 큰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다. 기업들이 세 번째 범주 실행을 힘들어하니 탄소상쇄 방식을 받아들여 탈탄소화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 취지였다.

발표 직후, 전 세계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 조치는 돈으로 기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이고, 탄소 배출 억제를 위한 기업들의 자구 노력을 촉진하기는커녕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SBTi 직원들과 외부 자문위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한편, 이 조치를 반기는 부류도 있었다. 이들은 'SBTi의 접근법은 복잡한 가치사슬을 가진 기업에 적용하기 어려운 만큼 탄소 거래 시장을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접근법'이라는 주장을 폈다. 탄소 거래 시장(VCM)이란 정부 규제 없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탄소배출권 등을 거래하는 공개시장을 말한다.

논란이 확대되자 SBTi는 '탄소배출권 사용이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를 외부 전문가에 의뢰했다. 3명의 기후 전문가가 작성한 보고서(24.7.30)에 담긴 요지는 '탄소배출권 사용이 온실가스 감축 등 기업의 탈탄소화 노력을 지연시킬 위험이 크다'라는 것이었다.

현재 SBTi는 이 논쟁을 매듭짓지 못하고 결정을 유보한 상태다. 확실한 결론을 내릴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기업 탄소중립 표준(Corporate Net-Zero Standard Version 2.0) 초안'을 공개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만일 범주(3)에 탄소상쇄 방식이 허용된다면, 기업들은 특별한 탄소 감축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시장에서 탄소배출권을 구매함으로써 감축 성과를 인정받게 된다. 누가 어디서 줄이든 탄소 감축량은 차이가 없을 것인데, 어째서 환경단체들은 탄소상쇄 방식을 격렬히 반대하는 것일까.

탈탄소화와 기후 정책을 연구하는 유럽 기반 싱크탱크 카본마켓워치(Carbon Market Watch)의 벤자 팩스(Benja Faecks) 연구원은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이 1톤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맞먹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업이 얼마나 많은 배출권을 사든, 절대 배출량은 줄지 않고 있다"라고 말한다(25.4/CMW 누리집).

이뿐만이 아니다. 과학저널 네이처커뮤니케이션즈에 실린 '탄소배출권 프로젝트의 배출량 감축에 대한 평가보고서(24.11)'에 따르면, 조사한 프로젝트(총 2346건)에서 발행된 탄소배출권 중 불과 16%만이 실제 배출량 감축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84%는 아무 기여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탄소상쇄 달성률 추정치 (estimated offset achievement) Systematic assessment of the achieved emission reductions of carbon crediting projects
탄소상쇄 달성률 추정치 (estimated offset achievement)Systematic assessment of the achieved emission reductions of carbon crediting projects ⓒ Nature Communications

이 보고서는 '탄소 거래 시장이 활성화되면 투자 수익을 노리는 사냥꾼(carbon cowboy)이 늘어나고 기만적인 위장술(green washing)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탄소 거래가 기후 변화에 기여하려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결론을 맺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힘을 통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탄소 가격제, 탄소 배출권 거래가 대표적인 방식이다. 탄소에 가격을 부과하면 온실가스 배출이 억제될 것이고, 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시장을 만들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지구온난화 방지에 앞장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탄소 가격은 세계 탄소 배출량의 고작 24%에 대해서만 값이 매겨진다(2022, 세계은행). 나머지 76%는 공짜로 쓰고 있다는 뜻이다. 값이 매겨진 탄소도 톤당 가격이 5달러 미만인 나라도 있고, 100달러가 넘는 국가도 있다. 시스템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탄소배출권 거래가 활발해지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허구라는 증거가 속속 제출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년을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1.5도를 넘긴 첫해로 기록했다. 자연에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발상을 비웃듯, 지구는 생태계 파괴의 징후를 통해 인간의 오만함에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탄소배출권거래#그린워싱#과학기반목표행동#SBTI#탄소상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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