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책 <소년이 온다>를 총 세 번 읽었는데, 한 번은 이야기 중심으로, 그다음은 연필로 밑줄 긋고 메모하면서, 또 그다음은 장소를 특정하며 읽어보았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이곳을 지도로 연결하면서 역사적인 곳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느낌이 느껴질 즈음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았다(관련기사 :
<소년이 온다> 배경인 이 병원, 5월 한 달만 개방한답니다) .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얼른 228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의자에 앉아 영화 <택시운전사>를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문화전당역 정류장에 도착했다. 하차 후 도보로 10분 정도 지나니 도착할 수 있었다.
5·18 사적 11호이자 옛 광주적십자병원이 한 달간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을 5·18 민주화운동 제 45주년을 맞아 광주광역시(시장 강기정)는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기간은 5월 3일부터 5월 31일 까지며,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5·18기념재단 소속 오월 안내 해설사의 무료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이번에 개방되는 구간은 주차장, 응급실, 처치실, 1층 복도, 중앙 현관, 뒷마당 등이다.
<소년이 온다> 배경, 45주년 맞아 개방

▲옛 광주 적십자병원의 응급실 입구.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가장 가까운 이 병원으로 환자들이 이송 되었다. ⓒ 김민지
이 병원은 1965년 신축되어 1974년 광주적십자혈액원 설립과 1979년 종합병원 승격을 통해 지역의료의 현장 중심에 있었다. 1980년 5·18 당시 시민군과 부상 당한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곳이다. 이후에도 계속 부상자들을 따뜻하게 치료해주며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활동을 펼친 곳이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1996년부터는 서남대학교병원으로 운영되다가 2013년 12월 9일 휴진, 폐쇄 이후 약 11년 동안 그대로 시간이 멈춘 곳에 지난 13일 다녀왔다.

▲응급실 안에 있는 '처치실' 이곳에서 영상 전시물을 시청하고 있는 학생들. ⓒ 김민지
응급실 안쪽 처치실의 동영상 전시물에서 당시 박미애 수간호사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절대 잊을 수가 없다면서 그날을 회상했다.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다고 하죠. 사람이 끝없이 밀려 들어왔어요"라면서 당시 5월 19일부터 계엄군이 강력하게 광주 시민을 잡아가고, 무차별한 폭행을 당한 시민들은 전남도청에서 가장 가까운 광주적십자병원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옛 적십자병원의 뒷마당에서 본 병원의모습.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건물이 당시 영안실이다. ⓒ 김민지
5·18기념재단 소속 오월 안내 해설사 이혜숙씨에 의하면, "정말 모든 게 멈춰 있어요. 시계도, 달력도, 원무과 책상도, 병원게시물들도요. 아까 다녀간 학생들은 자판기 안에 있는 커피 가격이 200원이라고 발견했지요. <소년이 온다>를 읽어보면 시신 위에 태극기를 덮고 애국가를 불렀어요. 폭도였으니까요"라면서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가 박용준 열사의 마지막 일기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를 읽고 소설의 방향을 잡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병원 뒷마당 그늘에서 들려주었다.
또한, 이 해설사는 20대부터 한강 작가의 깊은 고뇌였던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뒤집어야 한다고 깨닫게 된 순간을 소개하기도 했다.

▲옛 광주적십자병원의 전경. 약 11년만에 개방된 이곳의 전시는 5월 3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다. ⓒ 김민지
이번 전시를 기획한 모이즈(MOIZ, 대표 이준호)와 전화 인터뷰에 의하면, 야외 창작물을 다양한 방식을 통해 만드는 창작집단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를 시작하게 된 계기로는 "이곳이 일반 매각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여기가 팔릴 수 있다고. 그래도 되나." 이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모이즈의 여러 공연 중 '미래의 기념비 탐사대'를 준비하면서 "5·18을 겪지 않은 우리 세대가 이것을 표현해도 되나"라는 마음으로 만든 공연이었다고.
또한, '콘크리트 보이스'라는 공연도 선보였는데 이 공연을 감명 깊게 본 5·18 기념재단이 사적지에 관련된 공연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으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사전답사를 하는 중에 광주광역시 민주보훈과의 협력을 통해 지금 이곳으로 오게 되기까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약 11년 만에 개방하는 이곳의 첫 인상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는 마음가짐으로 "3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쉬지 않고 달리며 한 달반 정도가 소요 되었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이 건물에서 광주 민주보훈과 직원들과의 첫 만남을 꼽았다. 예전에 공연을 준비하며 이곳에 미리 와본 적이 있는데, 도착할 즈음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처분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했다. "이 건물의 지금 모습까지도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어 우리가 이 전시를 맡지 않으면 앞으로 리모델링이 진행되면 실제 모습을 우리가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옛 광주적십자병원의 1층 복도 환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 이곳 복도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했다고도 한다. ⓒ 김민지
1층만 개방하는 이유로는 아직 병원이 폐쇄만 되었지, 폐원 절차를 밟지 않아서라고. 약제품, 의무환자 기록지, 의료도구들이 있어 위험하고 개인정보에 관한 의료 자료들이 남아있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2층에는 산부인과, 정신과, 간호사실이 있고, 3층에는 수술실이 있다고.

▲당시 모습을 중앙일보 이창성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담은 모습을 1층 중앙현관에서 볼 수 있다 . ⓒ 김민지

▲518민주화운동 당시 중앙일보 이창성 기자가 찍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한 헌혈하는 모습 . ⓒ 김민지
위급한 상황 속에서 의료진과 시민들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혈에 임하는 모습을 당시 중앙일보 이창성 사진기자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생생하게 담아내 그때의 모습을 짐작게 했다. 이 사진들은 1층 중앙현관에서 볼 수 있다. 한편, 병원의 도면과 사진 자료를 살펴보면서 헌혈한 장소를 308호로 추정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이번 주말 5·18 민주화운동 제 45주년을 맞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펼쳐보면서 그날의 함성과 목소리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와 현재를 금실로 이어주고, 또한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의 기억에서 작별하지 않도록 가족들과 함께 16일부터 광주시가 운행하는 '소년 버스'를 타고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홍준 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여기가 이런 병원이었어?"라고 알게 될 우리들과 둘러보면서 제2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함께 응원 했으면 한다.

▲518사적지 11호 - 맞은 편에 보이는 교통표지판과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공존하는 우리를 떠올려 보았다. ⓒ 김민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순매일신문에도 실립니다.네이버 블로그(mjmisskorea, 북민지), '애정이 넘치는 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