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박9일 동안 포르투갈을 여행했다. 리스보아를 포함한 남부 지역, 코임브라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 포르투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이다. 이들 지역의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역사, 자연과 지리, 문화와 예술 그리고 사는 이야기 등을 살펴볼 것이다.
리스보아에서 신트라 가는 길

▲리스보아 시티투어 버스 ⓒ 이상기
에두아르드 7세 공원 인근 식당에서 우리는 바칼라우로 점심식사를 한다. 바칼라우는 소금에 절인 반건조 대구를 말한다. 생선을 취급하는 식당이라 그런지 벽에 멋진 생선 그림이 걸려 있다. 바칼라우를 이용한 음식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이를 줄여 그냥 바칼라우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구를 스테이크 형식으로 구운 뒤 밥을 곁들여 제공하는 가장 간단한 음식이다. 일종의 볶음밥으로 좀 뻑뻑한 편이다. 샐러드를 좀 곁들이면 훨씬 맛있을 것 같다.
우리 일행은 식사 후 버스를 타고 신트라로 향한다. 신트라 가는 길에 벤피카(Benfica)팀의 홈구장인 이스타디우 다 후스(Estádio da Ruz)를 만난다. 붉은색 철골 구조물이 인상적인 구장으로, 2003년 10월 개장되어 64,642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벤피카의 상징동물은 독수리고, 상징색은 빨간색이다. 1904년 만들어졌으니 그 역사가 무려 120년이나 된다. 이 구단 출신의 가장 유명한 축구선수는 에우제비우(Eusébio da Silva Ferreira)다. 그는 1965년 발롱도르상을 수상했고, 1966년 포르투갈을 월드컵 3위에 올려놓았다.

▲알 칸타라 계곡의 수도교 ⓒ 이상기
한편으로는 알칸타라 계곡에 놓여 있는 수도교(Aqueduto)를 볼 수 있었다. 18세기 리스보아에 만들어진 상수도 공급시설로 그 길이가 18㎞나 된다. 1731년 사업이 시작되었고, 1744년 알칸타라 계곡에 941m의 아치형 다리가 놓이게 되었다. 35개의 아치가 세워졌고, 가장 높은 곳의 교각은 65m나 되었다. 1748년에는 이 수도교를 통해 리스본에 물을 공급할 수 있었고, 1755년 지진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았다.
1880년대 들어 알비엘라(Alviela) 강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하면서 그 중요성이 감소했고, 1968년 그 사용이 중단되었다. 현재는 물박물관(Museu da Água)이 되어 역사와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도교와 다른 쪽 저 멀리로는 4월 25일 다리와 두 개의 현수교 주탑이 보인다. 그 너머로 테주강 건너 예수상도 보인다. 우리는 신트라와 카보 다 호카를 관광한 다음 테주강 하구로 돌아와서 다리와 예수상을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볼 것이다.
신트라 궁전에서 만난 포르투갈 왕들의 흔적

▲신트라 궁전 ⓒ 이상기
신트라는 포르투갈 왕들의 여름궁전이 있는 산악지대다. 삼림이 우거져 있고, 산꼭대기에는 중세 무어인들이 만든 방어성이 있다. 산 중턱에는 1854년 낭만주의풍으로 만들어진 페나 궁전이 있다. 산 아래에는 16세기 마누엘 양식과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어진 신트라 궁전이 있다. 신트라 역사지구와 이들 문화유산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이들을 보기 위해 우리는 신트라 공화국 광장 앞에서 차를 내린다. 그리고 먼저 신트라 궁전으로 간다. 궁전 가는 길에는 목련꽃이 피어 있고, 노란색 봄꽃도 우릴 반긴다.

▲신트라 궁전에서 바라본 신트라 산성(방어성) ⓒ 이상기
신트라 궁전(Palácio de Sintra)의 역사는 중세 무어왕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리스보아 지역을 다스리는 무어왕의 거처로 처음 지어졌다. 아라비아 지리학자 알 바크르(Al-Bacr)가 신트라 궁전을 언급하고 있다. 12세기 포르투갈왕 알퐁수 1세가 무어인들을 물리치고 이 궁전을 빼앗아 왕의 여름궁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고딕과 무데야르 양식 그리고 마누엘 양식으로 변형되거나 신축되었다. 현재 궁전은 15/16세기 마누엘 양식의 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백조실의 천정 ⓒ 이상기
가장 오래된 건축은 1300년 전후 디니스 1세 때 만들어진 예배당이다. 나무로 만든 천정의 장식, 기하학적인 문양 등에서 무어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신트라 궁전은 주앙 1세 때인 1415년부터 새롭게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주 건물과 중정이 만들어졌고, 대표적인 것이 까치실(Sala das Pegas), 백조실(Sala dos Cisnes), 안마당이다. 천정에 까치 그림이 있는 까치실은 주앙 1세가 사용했다. 백조실은 그의 딸인 이사벨라(Isabella)가 젊은 시절 사용했다.
주앙 1세의 아들로 왕위를 물려받은 두아르티 1세도 이 궁전을 좋아해서 궁전에 대한 많은 기록을 남겼다. 두아르티의 아들인 알퐁수 5세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죽었다. 알퐁수 5세의 아들인 주앙 2세는 이 궁전에서 왕으로 등극했다. 이처럼 신트라 궁전은 15세기 포르투갈의 왕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항해시대를 연 마누엘 1세는 1497년부터 1530년까지 마누엘 양식으로 궁정을 신축하거나 아줄레주 장식으로 내부를 치장했다.

▲문장실의 천정 ⓒ 이상기
이때 해럴드 홀과 마누엘 홀 그리고 창문과 테라스 같은 외부 시설이 마누엘 양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졌다. 헤럴드 홀은 마누엘 1세 때 만들어졌으며, 신트라 궁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방이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가문의 문장 72개가 그려져 있어 문장실(紋章室: Sala dos Brasões)이라고도 불린다. 천정에 문장이 있고, 사방벽은 푸른색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다. 타일의 그림은 포르투갈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풍속화로 보인다. 남쪽 창으로부터는 햇빛이 밝게 들어온다.
이런 커다란 홀 외에도 침실, 갤러리, 회의실 등이 있다. 침실로는 황금의 방, 알퐁수 6세의 방, 왕족의 방이 있다. 갤러리는 왕족의 내실(Camarim)로 쓰던 방으로 현재 수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 역사와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 종교화, 정물화 등 다양하다. 그 중 예수와 성 가족,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같은 성인, 철학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젊은이 등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외 가구와 도자기도 전시되어 있다.

▲신트라 궁전의 원뿔 형태 굴뚝 ⓒ 이상기
신트라 궁전에서 특별한 장소는 부엌과 주방이다. 장식이 없이 단순한 형태의 부엌은 대리석 바닥과 흰 타일을 붙인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쪽으로 화덕과 조리대가 있고, 가운데 조리용 도구와 기구들이 걸려 있다. 부엌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원뿔 형태의 굴뚝이다. 높이가 33m나 되는 굴뚝이 두 개 나란히 있으며 부엌에서 꼭대기 구멍을 볼 수 있다. 부엌이지만 빛이 잘 들어 상당히 밝은 편이다. 주방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이 식사할 수 있다.
낭만주의풍의 페나 궁전 이야기

▲신트라 문화유산 조감도: 위쪽으로 페나궁전(왼쪽)과 신트라 산성이 보이고, 가운데 신트라 중심가가 있다. 중심가 오른쪽으로 굴뚝이 두 개 있는 신트라 궁전이 보인다. 페나 궁전 왼쪽으로 카보 다 호카와 대서양이 보인다. ⓒ 이상기
페나 궁전은 신트라 산 중턱 바위 위에 지어진 기념비적 건물이다. 중세 때 순례자들을 위한 수도원으로 처음 지어졌고, 1755년 리스보아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버려졌다. 19세기 중반 페르디난드 2세 왕이 수도원을 확장해 왕가의 여름궁전으로 만들기로 하고 독일군 장교이자 광산기술자 에쉬베게(Wilhelm Ludwig von Eschwege)에게 건축을 의뢰했다. 그 결과 마누엘 양식, 이슬람 양식, 르네상스 양식에 낭만주의 양식을 가미한 복합적 건물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1910년 공화주의 혁명으로 궁전이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
페나 궁전은 신트라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그것은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궁전 전면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축학적으로도 낭만주의 시대의 이국적인 취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나 궁전은 수도원 구역과 궁전 구역으로 나눠진다. 그리고 궁전을 요새 형태의 외벽이 감싸고 있다. 성벽 밖으로 난 두 개의 문을 지나면 숲으로 이루어진 공원이 있다. 페나 궁전에서는 서쪽으로 대서양을 조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