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4일과 17일, 조국혁신당 핵심 당직자가 같은 당 여성 당직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에 피소됐다. 당 내부에서는 피해자의 보호보다는 사건 축소에 초점이 맞춰졌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조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신고 내용이 가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가운데, 해당 정당이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은 여러 시민사회로부터 문제 제기를 받고 있다.
비단 한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한 달 사이 시흥, 인천, 미아, 이천 등지에서 발생한 연쇄적인 여성 대상 폭력 사건들은 가정폭력과 교제폭력, 여성혐오 범죄의 구조적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20일 앞둔 현재,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여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나 공약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놓여진 추모 물품들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피켓, 인형, 꽃이 놓여있다. ⓒ 뉴스앤조이
여성폭력 해결, 또 다시 '나중으로'
정치권이 여성폭력 문제에 침묵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연이은 자치단체장의 권력형 성범죄 이후 정치권 전반에서 젠더 감수성과 성폭력 대응에 대한 약속이 나왔지만, 대선 국면에 들어서며 이러한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지역구 여성 국회의원을 향해 "미스 가락시장"이라는 발언을 해 성차별 논란을 낳기도 했다.
여성과 관련된 주요 정치 아젠다는 대선판에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성평등 인사 확대, 젠더 기반 폭력 예방, 노동시장 내 성차별 해소 등의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고, 여성의 생존과 안전을 다루는 의제는 오히려 '분열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끊임없이 펼쳐온 차별과 혐오의 정치, 젠더 갈등을 조장해온 전략에 맞선 광장의 요구는 대선 국면에서조차 끝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탄핵 광장에서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외친 '윤석열OUT 성차별OUT 페미니스트들'의 제안 단체인 서울여성회는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이하 '페미연대')와 함께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성폭력에 책임지는 대통령을 선택하자는 취지의 캠페인과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페미연대'를 포함한 88개 여성시민단체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를 맞아 지속되는 여성폭력의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한 추모주간을 선포하고,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단지 과거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여성폭력이 반복되게 만드는 성차별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고자 한다.

▲응원봉을 흔드는 페미니스트들윤석열 OUT 성차별 OUT 페미니스트들 기자회견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서울여성회
지워지지 않기 위해, 다시 광장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며 광장을 메웠던 2030 여성들의 목소리는 이번 대선에서 철저히 지워졌다. 12월 3일 이후 매일, 탄핵 광장을 지키며 "성평등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고 외쳤고, 성차별적 언행과 정책에 항의하며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작 대선 정국에서 여성들이 마주한 것은 주요 정당과 언론이 여성 주권자의 삶과 목소리에 대한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여성들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말해야 하는 현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호명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정치권이 여성폭력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여성들은 다시 광장에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지난 12일 강남역에서 진행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 추모기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페미연대'의 제안단체인 서울여성회 박지아 성평등교육센터장은 "4월 4일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을 맞이하고는 기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다시 거리에 섰다"며, 그 이유로 "여성들의 일상은 일상적인 여성폭력에 맞서는 삶이었기 때문"임을 밝혔다.
그는 "오늘부터 일주일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추모하는 것은 우리의 힘을 모으고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우리는 더욱 강하게 모이고 외쳐서 서로를 지키고 여성에게 안전하지 않은 세계를 만드시 바꿔낼 것"이라는 다짐을 밝혔다.

▲발언하는 서울여성회 박지아 성평등센터장‘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 기자회견에서 박지아 서울여성회 성평등센터장이 발언하고 있다. ⓒ 서울여성회
추모를 넘어, 여성폭력 없는 사회로
오는 5월 17일 토요일 오후 6시,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 추모행동이 열린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라는 이름 아래 열리는 이번 행동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여성폭력 없는 사회를 위한 목소리를 모으는 자리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에 앞서 지난 5월 12일 오후 2시, '페미연대'를 포함한 88개 여성시민단체에서 여성폭력을 기리고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이들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를 앞두고 "운이 좋아 살아남는 사회가 아닌, 여성도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가 여성폭력 해결을 반드시 중요시 여겨야 한다"를 외치며 계속되는 여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만들기 위한 취지로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탄핵광장에서 칭송받던 여성들은 안티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파면되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다가와도 다른 세계를 꿈꾸지 못하고 있다'며,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세계를 희망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치일 뿐'이라고 외쳤다. 덧붙여 '지금보다 더 강하게 여성이라서 죽어야 하는 세계를 끝장낼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여성폭력에 희생된 여성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거리에 누운 참가자들은 "여성폭력을 책임지도록 만들기 위해 광장에 누웠다"며 "광장에 누워 이미 세상을 떠난 여성들을 추모한다. 그리고 추모를 넘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거리에 누워 외친다"라고 구호를 외쳤다.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 ‘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서울여성회
5.17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 추모행동은 현재 44개의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 '페미연대'와 44개의 여성시민단체의 공동주최로 진행된다. '페미연대'는 지난 4월부터 '2025 대선, 여성폭력 해결, 나중은 없다!' 온오프라인 서명 운동과 여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여성폭력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폭력 문제를 정치 의제로 환기시키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추모행동 당일인 5월 17일에도 '페미연대'는 캠페인과 '여성폭력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이-인(Die-in)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있는 참가자들'젠더폭력 해결 페미니스트 연대' 기자회견 이후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서울여성회
'여성폭력 다이-인(Die-in)' 퍼포먼스로 거리에 누운 여성들은 다음과 같이 외친다.
"거리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오늘도 어딘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여성이 죽어가는지 모릅니다."
"정치는 무엇을 했습니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치,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추모는 추모에 머물지 않고, 여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드는 힘이 될 것입니다."
정치는 여성의 생존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성평등 정치의 실종 속에서도 여성폭력 문제를 정치의 중심 의제로 다시 가져오기 위한 여성들의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다시 광장에 모여 9년 전 강남역에서 시작된 질문을 다시 던질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여성폭력 책임질 대통령에게 투표한다!’ 연서명 하러가기
▶여성폭력 다이-인(die-in) 퍼포먼스 함께하기
▶5.17 여성살해사건 9주기 추모 공동행동 참여하기
링크: tr.ee/2025voteforfemin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