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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죠. 고속버스 좌석 뒤에 재떨이가 붙어있었습니다. 고속버스 안에서 승객들이 담배를 피웠죠. 시내버스 운전기사들도 담배를 피우며 운전했고요. 에이, 거짓말. 아닙니다. 그때는 정말 그랬어요. 아버지들은 집에서 "재떨이 가져와라" 하고는 담배를 피우셨고요. 가끔은 저도 헷갈립니다. 진짜 그랬던가? 지금 세상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이렇게 과거와 괴리가 큰 것 중 하나가 은행 금리입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극 중 은행 직원인 성동일(성동일 분)은 최택(박보검 분)이 바둑 대회에서 우승해 받은 상금 5000만 원을 은행에 예치하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 물론 뭐~. 금리가 쪼까 떨어져가꼬 뭐, 한 15%밖에 안 하지만…. 아~ 그래도 따박따박 이자 나오고 은행만한 곳처럼 안전한 곳이 없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극 중 은행 직원인 성동일은 최택이 바둑 대회에서 우승해 받은 상금 5000만 원을 은행에 예치하라고 말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극 중 은행 직원인 성동일은 최택이 바둑 대회에서 우승해 받은 상금 5000만 원을 은행에 예치하라고 말한다. ⓒ tvn

은행 예·적금 금리가 1~2%대인 지금과 비교해 보면 입이 쩍 벌어질 금리입니다. 15%라면 요즘으로 치면 주식, 코인, 파생상품 등 고위험 투자 수익률입니다. 그런 수익을 "안전하게" "따박 따박"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자는 경제가 발전해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과정에서 점차 낮아집니다. 제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사회가 안정되어 가면서 투자처가 마땅치 않다 보니 개발도상국보다 돈에 대한 수요가 적기 때문입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고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이에 따라 1~2%대 정기예금 이자는 어찌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정기예금 계좌 해지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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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가는 높고 집값은 치솟고 있습니다. 잘하면 대박을 터뜨릴 코인이나 주식과 같은 투자 상품도 있습니다. 아무리 저금리가 자연스럽다 해도 물가상승률보다 낮고 고수익 상품보다 훨씬 수익률이 떨어지는 정기예금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 정기예금은 2022년 3346만 8000계좌에서 2023년 2909만 1000계좌, 2024년 2314만 7000계좌로 2년 사이에 1000만 개가 넘는 정기예금 계좌가 해지되었습니다. 해지한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해외주식을 포함해 코인 등 수익이 높은 상품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투자자가 순매수한 해외주식은 총 152억 8803만달러(약 21조 원)어치입니다. 작년 같은 기간(58억2457만달러)보다 162% 늘어났습니다[1]. 물론 생활비에 쓰려고 예금을 깬 사람들도 많겠지요.

 서울 시내의 ATM 모습. 2025.5.5
서울 시내의 ATM 모습. 2025.5.5 ⓒ 연합뉴스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돈이 이동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돈의 가치는 해마다 떨어집니다. 2020년 직장인 점심값 평균은 6260원이었습니다[2]. 지금은 점심값 평균이 1만 원이 넘습니다[3]. 그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물가가 계속 오르는 인플레이션 사회에서 돈을 그대로 갖고 있기만 하면 실제 돈은 줄어듭니다.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수익을 내는 투자를 해야 돈이 줄지 않고 조금이라도 늘어납니다. 정기예금 이자가 물가상승률보다 낮으니 여기에 넣은 돈도 줄어드는 것이고 그러니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옮겨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주가지수 5000시대를 열겠다"라고 공약한 것도,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중산층 자산 증식을 위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지원 확대,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허용을 공약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고물가 속에 국민의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현실을 타개하는 한 방안일 수도 있습니다.

저축은 고사하고 쓸 돈도 없다

문제는 투자나 저축은 고사하고 들어오는 대로 생활비로 다 써야 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입니다. 정부 통계 사이트인 '지표누리'에 올라온 가장 최신 '가계 저축률'은 2023년의 4.0%입니다[4]. 최근 10년 사이 가장 낮습니다.

 가계저축률 추이. 2023년 가계저축률은 4.0%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계저축률 추이. 2023년 가계저축률은 4.0%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 지표누리

가계 순저축률이 4.0%라는 말은 가계가 벌어들인 돈 중에서 4%만 저축하고 나머지 96%는 다 써버렸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순저축률이 낮으면 생활이 빠듯하고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대출을 받아 투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국제금융협회(IIF)가 발표한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7%로 세계 38개국 중 2위였습니다(1위는 캐나다). 또 한국은행과 통계청,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 국내 가구당 평균 부채는 9128만 원이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소득의 40.6%를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습니다. 번 돈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원리금 갚는 데 쓰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6].

이런 판국에 자산 증식은 언감생심입니다. 주식 시장 등 자산 시장은 일부만 혜택을 보는 시장입니다. 청년들이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이는 자산 증식보다는 생존하려는 몸부림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 격차가 크다 보니 일해서 번 돈으로는 집마련은커녕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합니다. 근로소득으로는 살길이 막막하니 투자로 한방에 만회하려고 주식이나 코인에 번 돈을 쏟아붓는 청년들이 늘어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주식이나 코인 시장 활성화도 좋지만 그보다는 살려고 주식이나 코인에 올인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 정책을 집중해야 할 때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공공임대를 확대해 국민의 주거 비용을 낮추고 소득은 늘리는 정책을 강화하고, 시장경제만이 아니라 공공경제, 협동경제, 지역순환경제, 돌봄경제 등 대안 경제도 함께 설계해 다원적이고 포용적인 경제를 만들자는 것입니다[7].

21대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입니다. 내란 종식에 모든 담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내란에서 극우 세력이 판친 것도 먹고 살기 힘든 사회 때문이라는 진단이 있습니다. 국민 다수가 잘 사는 경제를 설계해야 할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출처

[1] 한국경제, <믿었던 '국민통장'의 몰락…2년 만에 1000만개 날아갔다>
[2] 조선일보, <올해 직장인 점심값 평균 6,260원, 코로나19 영향으로 구내식당에서 식사 비중 늘어나>
[3] 동아일보, <“만원으로 밥 먹기 어렵다”…평균 점심값 1만원 첫 돌파>
[4] 지표누리, 한국의 사회지표 가계저축률
[5] 동아일보, <한계 내몰린 ‘영끌족’… 서울 주담대 연체율 두달 연속 최고치>
[6] 연합뉴스, <'영끌' 한계 달했나…서울 주담대 연체율 두달 연속 최고치 경신>
[7] 오마이뉴스, <"주가 5000" 이재명 공약에 빠진 중요한 질문 하나>


#은행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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