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선 정국 속 에너지 정책이 다시금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동해안 화력발전소의 환경 파괴 문제가 정책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안 침식, 조망권 훼손, 해양 생태계 파괴 등 심각한 환경 문제를 유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다.
화력발전소의 사각지대, 정권 변화 속 동해안의 숨은 문제

▲강원도 삼척시 한국남부발전 삼척빛드림본부 ⓒ 진재중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추진됐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원자력 에너지 확대가 중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권 교체에 따른 에너지 정책의 급격한 전환 속에서, 과거 정부가 추진해 건설한 동해안 화력발전소들은 사실상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다.
특히 강원도 삼척, 강릉 등 동해안 지역에 건설된 대형 석탄화력발전소는 주변 해안 침식, 인근 해양 생태계의 변화, 어업권 피해, 관광산업 위축 등의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강릉안인화력발전소송전선로 부족 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 화력발전소 ⓒ 진재중

▲해안사구 붕괴안인화력발전소 해상공사로 군 시설물 및 해안사구가 무너지고있는 현장 ⓒ 진재중
강원도 강릉시 안인해변 일대, 주민들에 따르면, 발전소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모래 유실과 해안선 후퇴 현상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바람과 파도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온 해안사구가 점차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서, 생활 터전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릉 안인에 사는 한 어촌계원은 "방파제와 냉각수 방류 설비 같은 인공 구조물이 해안의 자연 흐름을 왜곡시켜 연안 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수온 변화 등으로 인해 해양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해안가 주변에 사는 마을 주민은 "해안사구는 단순히 모래 언덕이 아니라,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자연의 방패입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방치해 둔다면 앞으로 남는 건 마을이 잠기는 것 뿐일 겁니다"라고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화력발전소 인근해역인 등명해변에서 50년 넘게 어업을 해온 정상록(80)씨는 최근 몇 년 사이 바다가 변해버렸다고 말한다. 변화의 원인으로 그는 인근 화력발전소의 방파제 시설물을 지목한다. 정씨는 "예전엔 미역도 풍성했고, 가자미도 철마다 넉넉히 잡혔습니다. 그런데 방파제가 들어서고 나서부터 해류가 달라졌는지, 바닷속에 모래가 쌓이고 물고기도 해조류도 눈에 띄게 줄었어요"라고 토로했다.
하얀모래 대신 백색 콘크리트로 덮이다

▲해안사구 침식화력발전소 해상공사로 인해 환경부에서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안인, 하시동 해안사구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장(2023/8) ⓒ 진재중

▲미역수확현장강릉시 등명해변에서 미역을 수확하고 있는 어부 ⓒ 진재중
강원도 삼척시 맹방해변. 비취빛 바다와 백사장이 어우러진 이 해변은 오랜 시간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포스파워 석탄화력발전소의 석탄 수송을 위한 방파제 건설이 진행되면서 마을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주민들은 방파제 건설로 인해 연안의 자연 흐름이 차단되고 경관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바다와 백사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조망이 펼쳐졌지만, 이제는 대형 인공 구조물이 시야를 가리고 있다. 한 주민은 "우리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해안을 보호하길 원하지, 해변 전체를 인공 구조물로 덮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주민은 "해안 침식을 막겠다고 설치한 구조물들이 오히려 바다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있고, 결국 콘크리트만 남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민들은 이러한 개발이 해안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연안의 자연 흐름을 차단하고, 지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상인들에게는 생계 위협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해안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해안 침식을 막는다며 진행되는 개발 사업이 오히려 관광지로서의 가치와 지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관광객이 점점 줄고 있어요. 예전처럼 해변을 걷거나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도 없고, 이젠 가게 앞 풍경이 회색 콘크리트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 김명호씨는 '아름답던 모래 백사장이 사라지고, 다양한 해안 구조물들이 전시된 듯 흉물스럽게 들어서 있어 실망스럽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장기적 에너지 전략의 부재, 피해는 고스란히 동해안 주민에게

▲삼척 맹방해변 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연안침식 방지를 위한 이름모를 구조물들이 줄지어어 서 있다. ⓒ 진재중

▲삼척 맹방 화력발전소석탄수송을 위한 방파제 공사와 연안침식 방지를 위한 공사 현장 ⓒ 진재중
하지만 다가오는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이 내세운 에너지 공약을 살펴보면, 화력발전소 관련 정책은 사실상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비율 조정에 대한 논쟁은 활발하지만, 이미 지어진 석탄화력발전소의 처리 방안이나 생태 복원 계획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최근 강원도 연안을 중심으로 화력발전소 건설로 인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임승달 전 강릉원주대 총장은 현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 부족과 환경 대응의 미비함을 지적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전 정부의 사업이나 시설은 정치적 유산으로 치부돼,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분위기마저 느껴집니다."
임 전 총장은 정치적 변화에 따라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급격히 달라지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단기적인 이익이나 정치 논리에 따라 수립된 정책은 결국 지역사회와 환경에 고스란히 부담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권의 색깔을 떠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된 국가 에너지 전략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합니다."
그는 특히 해안 지역에서 발생하는 연안 침식, 어업 피해, 해양 생태계 훼손 문제를 단순한 지역 민원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국가적 차원의 대책과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해안침식 전문가 K 박사는 화력발전소 중단 이후에도 체계적인 모니터링과 연안 관리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중단된 발전소 주변 연안에 대한 정밀 조사와 생태 복원 계획이 함께 마련되어야 제2의 해안 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동해안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해안사구붕괴안인화력해상공사로 인한 연안침식이 발생, 환경부가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안인, 하시동 해안사구가 붕괴위험에 처해있다. ⓒ 진재중

▲송전선로송전망 구축이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어 동해안 지역의 발전용량(원전8기와 석탄발전 8기)을 초과해 송전선로가 포화상태다. ⓒ 진재중
화력발전소가 들어설 당시, 주민들은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생계 대책은 물론 해안 침식과 해안 환경 훼손에 대한 아무런 대응 없이 정책 방향만 바뀌는 현실에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결국 이곳에 남은 건 차가운 콘크리트 구조물과 상처 입은 해안선, 그리고 오랫동안 외면당한 지역 사회뿐이다. 한때 희망을 안고 들어섰던 화력발전소는, 깊은 흔적만을 남긴 채 조용히 강원도 동해안을 떠나고 있다.
남겨진 사람들과 바다는, 이제 그 상처 위에 말없이 버텨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