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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 혹은 편집자도 시민기자로 가입만 하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북한은 위기가 일상화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매일 전해지는 북한 뉴스는 그들의 위기를 증명하는 사건, 사고로 채워진다.

특히 북한의 경제는 정상적인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위기'라는 단어가 함께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이어졌고 고립된 북한은 무너질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렇게 북한은 언젠가 붕괴할 나라로 여겨져 왔다.

북한경제,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장거리포ㆍ미사일 체계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2025.5.9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장거리포ㆍ미사일 체계 합동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2025.5.9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하지만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상상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하루하루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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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식량난 속에 등장한 시장은 돌이킬 수 없는 생존공간으로 북한 사회에 자리 잡았다. 기업은 북한식 시장경제에서 이익을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비공식 인력시장은 일상의 한 장면이 되었다. 멈춰버린 듯한 북한이란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북한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애써 외면했는지 모른다. 남북관계가 중단된 지도 5년이 넘었다. 북한은 이제 남남으로 살자며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내놓았고 우리 국민의 대북·통일인식 또한 '최악'을 경신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공연히 '왜 북한을 연구하느냐?'는 질문도 늘어나고 있다. 남북관계가 중단되고 북한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북한 연구 자체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문화가 학계와 우리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책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의 필자들은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상관없이, 아니 그 인식이 더 악화될수록 북한 연구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북한은 우리 미래에 가장 큰 변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7명 공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한 이 책은 죽어가는 줄만 알았던 북한의 경제를 분석한다. 구체적으로 김정은 시대의 북한경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핵심적인 분야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단순히 '북한'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단순화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층적인 변화가 현재 진행 중이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것일까?

7개의 주제로 북한경제 톺아보기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표지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표지 ⓒ 정일영

이 책은 김정은 시대 북한경제를 읽는 7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로, 김정은 시대의 경제정책을 국가발전전략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국가재정을 핵무기와 재래식 무력 개발에 우선 투자했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의 경제정책은 한쪽으로 핵무기 개발을 하면서도 경제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전략, 다시 말해 핵 개발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방'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그 결과 북한은 전에 없었던 김정은식 '개발 있는 독재'가 시작되었고 전 국가적인 산업개발과 주택개발 등 발전전략이 진행되고 있다.

두 번째로, 북한경제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기업에 대해 알아본다. 계획경제에서 당의 통제하에 있었던 기업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통해 새로운 경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북한의 기업은 생산을 위한 자금과 원자재를 스스로 확보하고 더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기술을 개발할 뿐 아니라 마케팅에도 신경써야 한다. 더 많은 권한을 얻어낸 만큼 더 많은 책임으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세 번째로, 이제 북한 주민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공간이 된 소비재시장을 분석했다. 1990년대 중앙공급체계가 붕괴된 이후 북한 전역에 400여 개의 종합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2000년대까지 북한 시장을 중국 제품이 장악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북한 상품이 함께 경쟁하고 있다.

상품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투자가 이뤄지며 고객의 수요를 고려한 상품이 소비재시장에 늘어나고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리모델링된 백화점은 상류층의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 모습(자료사진).
북한 주민들 모습(자료사진). ⓒ thoeva on Unsplash

네 번째로, 북한의 숨어 있는 시장, 노동시장을 찾아간다. 북한의 노동시장은 여전히 당국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불법의 영역이다. 북한 당국은 노동력의 상품화를 강력히 거부하며 노동시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시장화의 진전 속에 노동시장이 대다수 북한 주민의 필수적인 생계 수단이 되고 있다. 노동시장은 또한 노동자들의 근로소득을 보장해주고 노동계획의 경직성을 완화해주는 등 여러 측면에서 체제 보완적인 역할도 감당한다.

다섯 번째로, 북한경제의 돈 줄기, 금융에 대해 알아본다. 북한은 중앙은행(조선중앙은행)이 예금, 대출 등 상업은행 기능까지도 담당하는 '단일은행제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시장화에 따라 주민들의 자금 수요가 늘어나면서 내부 유휴자금을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고, 김정은 집권 이후 상업은행들이 생겨나면서 금융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또한 개인 간 현금거래가 증가하면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전자결제카드 사용을 권장하고 있으며 북한 원화보다는 달러와 위안화 등 외화를 선호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여섯 번째로, 최근 북한이 강조하고 있는 지방경제에 대해 분석했다. 북한은 정권 수립부터 지방경제 발전을 외쳤지만 성과는 미비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시기의 지방경제 정책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김정은 시대에 북한은 「지방예산법」, 「시, 군 발전법」 등의 법 제정을 통해 지방경제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였고 '새시대 농촌혁명강령', '지방발전 20×10 정책' 등을 통해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지방경제에 새로운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일곱 번째로, 북한경제를 옥죄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북한경제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응해 이전에 없던 대북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여기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북한경제는 밀봉에 가까운 고립상태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과 미-러의 갈등 속에 대북 제재 동맹이 느슨해지고 있다. 이제 북한은 러시아와 안보, 경제협력을 통해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답답한 남북관계, 그래서 더 북한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집필진들은 이 책에서 무자비한 정치체제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북한경제의 다양한 변화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노력했다. 남북관계가 파국을 맞은 상황에 무슨 북한 연구냐는 비판을 마주하면서도, 그래서 더 힘을 냈다. 그들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 또한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을 통해 북한의 공장에서, 시장에서, 지역의 농촌에서 스스로의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을 만나보자. 딱딱해 보이는 제도와 그 뒤에 가려진 삶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북한의 변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리빌딩 전략 2025>,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을 집필했습니다.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김영희, 황주희, 선슬기, 장혜원, 최재헌, 윤세라, 정일영 (지은이),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2025)


#북한경제#김정은#시장#기업#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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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정일영 연구교수입니다. 저의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리빌딩 전략 2025], [한반도 오디세이], [평양학개론], [북한경제는 죽지 않았습니다만], [속삭이다, 평화],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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