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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좋은 선생, 좋은 교육기관이 되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미처 몰라서 놓치는 실수들이 얼마나 많을지, 그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늘 고민이다. 그래서 더 많이 배우고, 더 자주 돌아보려 한다. 내게 배움을 주는 이들을 만나면 나만의 스승으로 삼고 조용히 따르려 애쓴다. 그런 만남은 나를 그저 유아교육기관의 운영자에 머물게 하지 않았고, 진짜 선생이 되기 위한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다가오는 스승의 날을 맞아, 내 삶을 키워 준 스승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1. 곽은득 목사님 : 눈을 뜨게 해 준 스승

곽은득 목사님은 1983년 10월 30일, 종교개혁 주일에 대명동에서 민중목회를 시작하셨다. 노동자들의 벗이 되어 그들의 애환을 함께하며, 이후 1999년에는 농촌으로 들어가 생명목회로 전환하시며 경북 군위군 효령면 매곡리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리고 2014년 원필선 목사님께 책과 호미를 선물하며 원로목사로 은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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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작은 교회 30년 이야기 <기억에서 예언으로>에서 "성공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진리를 내 몸으로 실천하는 교회를 만들고 싶은 소박한 생각뿐이다. 한국교회가 어물어물 내다버린 가난을 되찾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땅의 '작은 자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2007년, 인문학 공부를 하러 우연히 그곳에 갔다가 내가 사는 세상,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얻게 되었다. 아마도 그런 걸 '눈이 뜨인다'고 할 것이다. 곽 목사님은 시골 교회에서 농사를 짓고, 목공을 하고, 그릇을 만들어 구우며 기독교 영성을 토대로 인문·예술·생태·농업 교육을 실천하셨다.

목사님을 만나며 성공한 원장이 되기보다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실천하고 돌보는 원장이 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 따라 학부모들 눈에 반짝이는 행사를 기획하고,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학습을 하며 소모적인 것을 과시하는 일을 멈출 수 있었다.

누군가 가꾸어 놓은 밭에 가서 수확만 하는 체험 대신,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농사 짓는 일이 아이들의 삶의 일부가 돼야 함을 배웠다. 논과 밭에서 몸으로 뒹굴며 길가에 핀 꽃 하나에도 감동받으며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나에게 맡겨진 소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2. 원필선 목사님 : 겸손하고 단단하게

곽 목사님께 세상을 보는 눈을 배웠다면, 원필선 목사님께는 제 자리를 겸손하면서도 단단하게 지키는 법을 배웠다. 원 목사님은 곽 목사님의 뒤를 이어 매곡리의 작은 교회를 맡아 사역하고 계신다.

여전히 농사를 짓고 가꾸며, 교회의 역할을 교회 안에만 가두지 않고 가난한 시골 교회 안에서 생명과 평화,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우리 교회를 출석해야만 교인이고 돌봄을 실천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

시골 마을의 외로운 어르신, 평화를 찾아 오는 어느 낯선 이에게도 한결같은 태도로 존중하고 나누신다. 자연학교를 찾는 어린이집들의 공동체인 매곡자연학교 아이들을 대하는 일도 사명으로 여기시며,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삶을 배우는 교육을 실천하고 계신다. 아직은 보수적인 장로교회 안에서, 여성 목사로서 누가 뭐라 해도 세상에 이롭다고 믿는 길을 겸손하고 꿋꿋하게 걸어가고 계신다.

매곡리 작은 교회 봄의 매곡리 자연학교
매곡리 작은 교회봄의 매곡리 자연학교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3. 서영예 선생님 : 실천하는 사람

서영예 선생님은 화왕산 군립공원 안에서 '숲속애 자연학교'를 운영하신다. 매년 교사교육과 부모교육을 부탁드릴 때마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전해 주신다. 내가 살아가는 땅,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땅에 해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전하신다. 실천도 철저하셔서 때론 유난스럽다는 눈총을 받기도 하신다.

예전에 수백 명이 모인 연수 자리에서, 도시락을 다 먹지 않고 버린 쓰레기 더미를 보시고는 그 자리에서 남은 음식들을 꺼내 드셨다. 그 이후 나는 선생님 앞에서는 절대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아이들과 화왕산에 나들이를 가면, 음식 남기지 않도록 조심한다. 남겼다가는 나더러 다 먹고 가라 하실 게 분명하다. 숲속애 자연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 메뉴는 직접 만든 유기농 자연식이라 늘 건강하고 맛있다.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삶과 배움, 삶과 일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실천의 힘이다.

서영예선생님 화왕산 숲속애 자연학교에서
서영예선생님화왕산 숲속애 자연학교에서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4. 이오덕 선생님 : 삶을 가꾸는 글

이오덕 선생님은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스승으로 삼았다. 선생님의 글은 어렵지 않은 말로 쓰였지만 마음 한구석을 콕 찌르며 불편함을 주었다. 아마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말하고 글을 쓰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평생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시며 아이들의 말과 삶을 글로 지켜오신 분이다. 아이들이 자기 삶을 자기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하셨고, 그렇게 쓰는 것이 바로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고 하셨다.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삶을 가꾸는 글쓰기> 같은 책에서는 아이들이 쓴 글을 가감 없이 보여주시며, 어른들이 얼마나 아이들의 삶을 함부로 말하고 판단해 왔는지 깨닫게 해주셨다.

선생님은 글을 가르친 분이 아니라 삶을 보여주신 분이었다. 선생 답게 말하고, 선생 답게 사는 법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끄러움과 존경이 동시에 남아 있는 그런 스승이다.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 이오덕

얘들아, 불러라 너희들의 노래를.
사람은 누구든지 제 목소리로 자라난단다.
나도 너희들의 노래를 부르면서 어린 아이로 살고 싶단다.
아, 이 세상 모든 어른들이 아이들이 노래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되겠지.
틀림없이 천국이 되겠지.

5. 윤태규 선생님 : 기다려주는 리더

윤태규 선생님은 이오덕 선생님의 제자다. 스승의 삶과 교육 철학을 곁에서 지켜보며, 글쓰기와 교육을 삶 안에서 실천해 오신 분이다. <우리 아이들, 안녕한가요> <똥교장 선생의 초등 교육 이야기> 같은 책을 통해 통해 그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말 한마디, 습관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으며, 가르치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임을 보여주셨다.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퇴직 후, 우리 원에 졸업반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내기 전 부모교육을 위해 방문하셨을 때였다. 부모들에게 "공부보다 똥 잘 싸는 아이, 건강한 습관을 가진 아이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셨다. 그 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끔 찾아 뵙고 연락을 드리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오랜 세월 교사와 교장으로 일하셨지만, 선생님은 언제나 교사 곁, 아이 곁, 부모 곁에 가까이 서 계신 분이었다. 높은 조회대에서 긴 훈화를 하던 교장 선생님이 익숙했던 내게,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부모를 학교 활동에 참여시키며,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오늘도 재미있게 보내라"는 아침 편지를 띄우던 모습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고 옆에서 손 내밀고 기다려주는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선생님의 모습을 따라 나 또한 기관을 운영하며 목표를 세우고 방향을 정할 때,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고 받쳐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6. 임재택 교수님 : 길을 만드는 사람

생태유아교육을 말할 때 임재택 교수님의 영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교수님은 생태유아교육의 선구자로,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이며 이론과 실천을 정립해 온 분이다.1995년 국내 최초 대학부설 어린이집을 설립하셨고, 2002년에는 생태유아공동체와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를 창립하여 친환경 급식 운동과 학술 활동을 활발히 이끌어오셨다. 현재는 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교수님은 자연의 섭리, 사람의 도리, 생활의 지혜에 기반한 우리 선조들의 오천 년 생명·생태적 육아 지혜를 오늘의 유아교육 현장과 가정 양육에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를 연구해왔다. 생명존중의 삶을 바탕으로 한 아이들의 양육 방식을 교육 현장에서 직접 실천하며,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길을 잃은 우리 육아 현실 속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자연, 놀이, 그리고 아이다움을 되찾아주는 새로운 패러다임—자생적 한국 유아교육인 '생태유아교육(K-Eco Early Childhood Education, K-EECE)'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한평생을 바쳐왔다.

학회나 모임에서 교수님을 자주 뵐 기회가 있었고, 우리 기관에서는 교사교육과 부모교육을 부탁드리며 직접 모시기도 했다. 그때마다 교수님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짚어 주셨고, 제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길을 잃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안겨주신 분이다. 언제나 고마운 스승이었다.

선생은 단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가르침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내가 가르치는 이들이 그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사람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그런 선생이 되어가고 있는가. 나를 이끌어 준 스승들의 뒷모습을 따라, 나 역시 누군가의 길 위에 따뜻한 빛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배운 것을 실천하며 그 길을 함께 걷고 싶다.



#움사랑생태어린이집#스승의날#대구생태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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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생태유아교육 중심 어린이집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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