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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인 1170년부터 1270년까지 100년 동안, 무신(군인)들이 문인 지배체제를 뒤엎고 권력을 장악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신정권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입니다. 무신정권 초기인 1198년에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노비 해방을 부르짖으며 '만적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모의 단계에서 발각되어 실패로 끝났지만, 당시 만적이 외친 구호는 8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빛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는 절규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만적의 용어로 풀어 쓰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걸 선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조문이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느닷없는 비상계엄령 선포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내란 사태가 이런 의문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고학력·금수저 기득권세력이 도발한 4개의 '내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세 번재 공판을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세 번재 공판을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 사회는 내란의 연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섯 달 동안 무려 네 차례의 크고 작은 내란이 터졌습니다. 앞으로 어떤 내란이 또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간 큰 내란 두 건과 작은 내란 두 건이 있었습니다. 12·3 비상계엄과 5·1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 큰 내란이고, 한덕수와 최상목의 헌재 재판관 임명 거부와 5·10 국민의힘 후보 강제 교체 파동이 작은 내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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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4개 내란을 꿰뚫고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요? 저는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냐'를 다투는 싸움이라고 봅니다. '정(정치)-관(관료)-재(재계)-검(검찰)-법(법원)-언(언론)'의 과두 연합 기득권세력은 그들이 한국을 지배하는 실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에는 국민이 주인이라고 쓰여 있지만 그건 형식일 뿐 실질적으로는 고학력·금수저 기득권세력인 그들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고 앞으로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득권 체제를 흔들 가장 강력한 존재가 나타나자, 기득권세력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소동이 바로 내란 사태인 거죠.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흔들 흙수저 서민 출신 이재명 후보가 절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네 차례의 내란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시민이 나서 저지했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막판에 몰린 그들이 선거유세 때 이 후보를 물리적으로 제기하려 할지 모른다는 경계의 소리가 나오는 것도 절대 과장이라고 볼 수 없는 배경입니다.

기득권세력이 획책하는 내란은 크게 두 개의 전선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후방 지원까지 포함하면 전방위 싸움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전장은 정치의 마당입니다. 윤석열의 계엄령 발동과 한덕수·최상목의 헌재 재판관 임명 개입,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파동이 정치의 장에서 벌어진 내전입니다. 6·3 대통령 선거가 정치 내전의 최후 결전장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득권세력은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 있는 사법 마당에서도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지귀연 판사의 '악마의 계산'과 심우정 검찰총장의 '즉시 항고 포기' 합작으로 이뤄진 내란 수괴 윤석열의 '합법적 탈옥' 조치가 첫 도발이었습니다. 이어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이 선거등록일 직전에 이재명 후보 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2차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이때마다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기득권 언론은 '객관 보도'와 '불편부당'이라는 탈을 쓰고 교묘하게 내란 세력을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시민의 저항으로 저지했지만, 안심은 금물

 조희대 대법원장과 심우정 검찰총장
조희대 대법원장과 심우정 검찰총장 ⓒ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다행스럽게 기득권세력이 꾀한 4차례의 내란은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윤석열이 직접 지휘한 12·3 내란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의 기동력 있는 대처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저항, 군인들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이라는 삼박자 덕에 무산됐습니다. 이어 내란 수괴의 대행을 연달아 맡은 한덕수, 최상목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장난을 부리면서 내란 수괴의 파면을 막으려고 몸부림쳤지만, 이런 기도도 시민을 등에 업은 헌재의 철퇴를 맞았습니다.

두 번째로 큰 내란인 조희대의 사법 내란도 뿔 난 시민의 힘으로 간신히 불은 꺼놨습니다. 이틀 만에 1백만 명이 달려들어 대법원의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 시민이 결사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조희대는 '사법부의 권위' '국민의 선택권' 운운하며 6월 3일 대선 이전에 이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했을지도 모릅니다. 파기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도 대법원으로부터 서류를 받자마자 항소심 기일을 정하고 소환장 집행에 나서면서 조희대의 사법 내란에 발을 맞췄습니다. '대통령은 주권자가 뽑는 것이지 법관이 정하는 것이다'라는 시민의 항의와 법관들의 신랄한 내부 비판이 없었다면, 항소심 재판부가 첫 재판을 선거일 뒤로 미루지 않았을 겁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바꿔치기 '한밤중 쿠데타'를 저지한 것도 결국은 시민의 힘이었습니다. 전당대회에서 뽑힌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고 사실상 한덕수 한 사람만 등록할 수 있도록 새벽에 단 1시간의 여유를 주고 32개의 복잡한 서류를 제출하도록 한, 반정당민주주의·반민주주의적 작태가 국힘 당원을 떠나 전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국힘 당원들에 영향을 끼치면서, 내란 공범 한덕수의 '꽃가마 무임승차' 등극이 좌절됐습니다.

고학력·금수저 귀족 기득권세력과 흙수저 서민 반기득권 세력의 연이은 싸움에서, 흙수저 서민 세력이 연승을 거둔 것은 대단한 성취이자 기적입니다. 권력과 부, 지식을 전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금수저 세력에 거둔 승리인지라 더욱 값집니다.

6월 3일은 '한국의 진짜 주인' 가리는 역사적인 날

하지만 결코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윤석열이 포문을 열고 기득권 연합 세력이 총력전을 펴는 내전은 아직 완전히 진압된 게 아닙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내란 실행 주범들인 군 장성들이 비공개 재판을 받는 현실이 웅변해 주는 바입니다. 심지어 윤석열은 한덕수 국힘 후보 만들기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바로 김문수 지지 뜻을 밝히며, 이재명 저지를 위한 대회전의 선봉 노릇을 자임하고 나섰습니다.

윤석열의 집요함은 6월 3일 대선이 한국 역사에서 결정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우쳐 줍니다. 단순하게 한 사람의 지도자를 뽑는 게 아니라,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리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공식적인 대선 운동 시작과 함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는 800여 년 전 만적의 절규가 거리 곳곳에서 "대통령 자격이 따로 있느냐"로 되살아나고 있는 듯합니다. 이번 6·3 대선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라고 생각하는 금수저 세력과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믿는 흙수저 세력 간의 대회전입니다. 만적이 이루지 못한 꿈을 21세기 대한민국 시민이 이뤄낼 수 있느냐를 묻는 역사적인 결전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6월3일대선#이재명#만적#금수저#2025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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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ohtak) 내방

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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