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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꽃▲ 5월 내내 나뭇가지에 온통 하얀 꽃잎을 덮은 이팝나무는 5월 영령을 추모하는 듯하다. ⓒ 윤현정
5·18이 다가오면 광주 시내의 공원과 가로수에는 어김없이 이팝나무꽃이 만개한다. 쌀밥처럼 생긴 하얀 꽃잎이 가지에 수북이 쌓여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5월의 따뜻한 햇볕을 온몸으로 가득 담아 반짝인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너무도 청순하고 아름답고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모를 애절함이 배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팝나무꽃은 5월 영령들을 추모하는 분위기와도 어울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양동시장5월 초순 이른 아침 광주 양동시장 모습 ⓒ 윤현정
아침 7시, 광주 양동시장 안에 있는 국밥집 골목길에 들어서니 불빛이 대낮처럼 환하다. 통로 양옆으로 늘어선 식당 앞 매대에는 푸짐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솥에서는 하얀 김이 무럭무럭 솟구쳐서 위로 옆으로 퍼져나간다. 말끔하게 단장한 삶은 돼지 머리가 미소를 짓고 있다.

▲하나분식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하여 식사한 국밥집 ⓒ 윤현정
가게 앞에서 일하고 있는 아낙네들은 손을 쉬지 않고 놀리고 있다. '어느 식당으로 들어 들어가야 할까?' 하고 망설여지는데 마침 '노무현 대통령 드신 국밥집'이란 큼직한 간판이 눈에 띈다. 안으로 들어서니 식당은 넓은 편인데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손님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다. 식탁 한쪽 자리에 '노무현 대통령 국밥 드신 자리'라는 글이 눈에 띈다.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자, 금방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여성이 무럭무럭 김이 나는 먹음직스러운 '모둠국밥'을 식탁에 차려 준다. 뚝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솟아난 나는 서둘러 뜨거운 국밥을 접시에 조금씩 덜어 훌훌 불어 가면서 한 입 삼킨다.
그 다음, 토종 된장에 싱싱한 고추와 양파를 찍어 먹고 나서 삶은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 새우젓에 적셔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뭔 국밥이 이렇게 맛있어?' 금방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속이 따뜻해지고 포만감을 느낀다. "아~ 배부르게 잘 먹었다." 저절로 혼잣말이 나온다.
이곳 식당들은 밥, 콩나물, 깍두기, 새우젓 등 모든 음식 재료를 순 토종으로 골라 요리하는 곳이라 현지인의 신용을 얻어 손님들이 붐빈다. 다른 고장을 탐방할 때도 잘 아는 음식점이 없으면 오일시장이나 전통시장 부근에 가서 식당을 찾는다. 그러면 뜻밖에 가성비 있고 현지인이 즐겨 찾는 식당을 발견하고 식도락을 즐기곤 한다.

▲벽에 걸린 사진들식당 벽면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즐비하다. ⓒ 윤현정
대동 정신을 발휘한 광주 양동시장 상인들
벽에는 식당을 방문하신 노무현 대통령 일행, 문재인 대통령 일행, 송가인 가수 등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즐비하다. 이곳 양동시장은 특히 선거철이면 입후보자들이 꼭 들르는 선거 운동 필수코스다. 요즘 언론에서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써 많은 여야 후보가 양동시장을 방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왜 정치인들이 유독 광주 양동시장을 자주 찾는 것일까? 다 아는 바와 같이 양동시장은 '5·18 민중항쟁사적지'이며, '신분을 초월하여 하나로 뭉친 대동정신을 발휘했던 나눔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가슴 뜨겁게 타오르는 공동체 사랑의 상징인 주먹밥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도 5월이 되면 양동시장을 비롯한 광주 시내 곳곳에서 주먹밥 행사가 펼쳐진다. 항쟁 기간 양동시장 상인들은 생업을 뒤로하고 십시일반 돈과 쌀, 반찬 등을 자진해서 내놓고 음식을 만들어 시위대가 지나가면 그들을 접대했다.
당시 시위대에게 나눠주던 주먹밥은 바쁘고 정신없이 만들었기에 얼마나 영양가 있고 맛있었겠는가마는, 목마르고 허기진 시위대에게는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고 시민들의 아낌없는 격려와 동참에 용기가 솟고 새삼 고마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 당시 시위에 참석했던 이들과 이들에게 아낌없이 정성 어린 음식을 대접했던 상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벌써 45년이란 세월이 흘러 대다수가 노인이 되셨을 것이고 돌아가신 분들 또한 많을 것이다. 투쟁의 현장에서 나는 죄송스럽게도 국밥을 먹으면서 그분들을 상기한다.
자신의 한 몸을 돌보지 않고 일부 정치군인들의 폭거에 항거한 시민들과 자신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한 양동시장 상인들의 순수하고 숭고한 5월 정신이여! '행동하는 양심이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에게 알려주는 본보기다. 우리는 이분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행동해야만 할 의무를 갖고 있다.

▲광주항쟁에 대한 외국인 평가전일빌딩 245 9층 기획전시실에 게시된 5?18 광주 항쟁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 ⓒ 윤현정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나는 고귀한 피를 흘리는 현장에 함께하지 않았다. 당시 청년의 나이로 서울 한복판에서 안정된 직장인으로 편히 살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5·18 광주 뉴스를 들었다. 동료들이 일손을 놓고 삼삼오오 TV 앞에 모였다. 모두 얼굴이 어두워지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 또한 왜 할 말이 없겠는가마는 이 직장은 정치적 중립이 의무화된 공공기관이다. 아니 이 직장만이 아니다. 사회 모든 분위기가 그랬다. "입 다물고 조용히 있어! 떠들면 김일성이 쳐들어와!" 나는 다른 동료들처럼 이미 침묵을 강요하는 군사정권에 길들어져 있어서 반사적으로 '입조심 해!'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묵묵히 뉴스를 듣고 있을 뿐이다.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이 막을 내린 지 이제 겨우 6개월을 넘겼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수많은 청년을 죽이고 고문하고 감옥에 넣고 국민을 억압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정권이 다시 돌아온단 말인가?' '뉴스에서 폭도로 부르는 이들은 곧 용감한 젊은이요 용기를 내서 나선 양심을 가진 우리 국민 모두의 분신이다.'
나는 뉴스에서 주입하려는 의도를 뻔히 알면서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TV 화면에 등장한 군사 쿠데타 정권 주역이 살기 어린 표정으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지껄이는 말을 들어보니 기가 찰 노릇이다.
나는 뉴스를 보면서 당시 실세들의 의도를 알아채고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나는 불의를 보면서도 정면에 나서지 못하는 비겁자였다. 변명하자면 평범한 소시민이요, 안정된 생활을 추구하는 직장인일 뿐이었다. 나의 마음은 대다수 우리 국민 모두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광주의 오월에 빚을 졌다. 언젠가는 꼭 갚아야만 할 마음의 빚을~

▲님을 위한 행진곡전일빌딩 245 9층에 전시된 님을 위한 행진곡 중 일부 가사 ⓒ 윤현정
올해 5·18 45주년이 유독 더욱 뜻깊은 이유
항상 가지고 있는 이런 마음의 빚을 진 모든 국민은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가 오자 곧바로 떨쳐 일어났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못하고 마음의 빚을 지고 있던 밀레니엄세대와 MZ 세대는 그동안의 정치에 대한 관망세를 접고 위대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모든 힘을 다해 궐기하였다.
또한 여성들이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들고 일어났다. 여성의 몸으로 낮에는 물론 심야의 시간에도 살을 에는 영하의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며칠 밤 몇 날밤을 지새우며 투쟁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반인권적, 반국민적, 반민주적 행태가 되풀이되는 현상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모든 국민은 일치단결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하여 용기 있게 대항했다. 우리 군인들도 더 이상 부도덕한 쿠데타 정권에 협력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광주 5·18의 교훈을 되새기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 있는 재외교포들의 함성도 들불처럼 불타올랐다. 세계 모든 사람도 놀라운 뉴스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한국의 쿠데타를 보면서 '역시나 후진국!'이라고 외쳤던 이들이 일순간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대한민국 국민의 용기에 감동하고 격려했다. "과연 민주국가 KOREA!"라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한강작품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한강 작가 작품 번역본을 전시하는 광주광역시청 ⓒ 윤현정
동방의 조그만 나라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데 대한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벌어진 영화 같은 사건은 우리나라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비롯한 문학 작품을 번역하고 출판하고 구독하는 열풍을 다시 한번 일으켰고 이를 통해 1980년 광주 5·18 정신을 마음속 깊이 각인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명실공히 세계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 내국인과 재외 교포들은 518 민주 항쟁 주역에 대해 죄스러움과 미안함과 빚을 조금이나마 떨쳐내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했다. 엄동설한부터 시작된 쿠데타 세력과의 싸움은 봄이 되어서야 쿠데타를 좌절시키고 내란 수괴는 파면되는 승리의 나팔 소리가 울렸다. 이 기간에 특히 젊은 청년들은 비로소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소중한 경험과 자부심과 자신감을 어느 세대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정의는 승리한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고귀한 가치다!' 이제 올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5주년을 맞아 국내외 모든 국민과 뜻있는 세계 모든 사람은 어느 5·18 때보다 더 뜻깊은 날을 보내고, 깊은 감회에 젖으며 각오를 새롭게 할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이 다 함께 민주주의 승리의 기쁨을 한껏 누리며 춤추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광주항쟁사적19 양동시장 기념탑찾길 옆 인도에 서 있는 ‘5?18민중항쟁사적19 양동시장 기념탑’ ⓒ 윤현정
식사를 끝내고 국밥집 바로 인근에 있는 양동시장 찻길 옆 인도에 섰다. 그곳에 '5·18민중항쟁사적19 양동시장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기념탑에 씌어 있는 글을 읽으며 이제까지 맞이한 어떤 5·18 민주 항쟁 기간보다 벅찬 가슴을 안고 역사의 현장에 선다.
지금은 기념탑만 덩그러니 찻길 옆에 옹색하게 들어서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언젠가는 넓은 부지를 확보하여 기념탑을 옮기고 어엿한 기념관이 들어선 기념광장을 만들어 시민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양동시장의 그날을 생생하게 회상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평화와 민주를 기원하는 세계 모든 이들의 순례길이 되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만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