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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로 1박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치악산 구룡사와 운곡솔바람숲길 등을 걸으며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지난 어린이날, 원주 치악산 구룡사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날이 초파일임을 문득 깨달았다. 도대체 요즘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이리저리 치이며 정신없이 사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듯했다. 시간이 가는지, 연휴가 이어지는지 도통 가늠하지 못한 채 어지럽게 생활한 듯하다.

그러다 마주한 치악산 구룡사(龜龍寺)로 가는 길.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연하디 연한 초록잎들이, 귀엽고 앙증맞은 황매화 꽃송이가, 신선한 산공기와 어우러져 나의 정신을 맑게 하였다. 시름을 다 빨아버리는 듯한 숲 속에서 걸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상쾌함 덕분에 날아갈 듯한 가벼운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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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 절마당은 오색 연등으로 하늘을 덮었다. 저마다의 소원과 기도가 바람을 타고 부처님의 가피를 기다리는 듯 너울거렸다. 오전에는 불자들로 가득했으려나.

오후 3시에는 한적한 바람만이 가득 불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아기 부처님에게 목욕을 시키는 일을 경건한 마음으로 수행했다. 속세의 때를 벗고 밝은 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정수리에 조심씩 감로수를 얹었다. 번뇌와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석가탄신일을 맞아 아기 부처님의 몸을 씻어내리는 관욕식을 수행하고 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아기 부처님의 몸을 씻어내리는 관욕식을 수행하고 있다. ⓒ 한현숙
 석가탄신일을 맞아 절마당에 수많은 연등이 바람을 타고 부처님의 가피를 원하고 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절마당에 수많은 연등이 바람을 타고 부처님의 가피를 원하고 있다. ⓒ 한현숙

신라시대 지어진 사찰답게 아담하고 예스러운 구룡사 대웅전. 오랜 세월을 품은 사찰은 언제나 운치가 깊고 고즈넉해서 더 좋다.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하여 현재의 명칭인 구룡사(龜龍寺)로 이름이 바뀌었음을 안내문에서 확인한다.

정성스럽게 삼배를 올리고, 잠시 앉아 부처님의 기운을 받아본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온 세상에 자비가, 내 마음에 불심이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사천왕문 양쪽을 지키는 사천왕의 모습(비파와 보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 용과 여의주를 쥔 광목천왕, 비파를 들고 튕기는 지국천왕, 노한 표정으로 칼을 들고 있는 중장천황)
사천왕문 양쪽을 지키는 사천왕의 모습(비파와 보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 용과 여의주를 쥔 광목천왕, 비파를 들고 튕기는 지국천왕, 노한 표정으로 칼을 들고 있는 중장천황) ⓒ 한현숙

구룡사의 사천왕문을 나오며 사천왕 손마다 다르게 들린 보탑, 비파, 용, 여의주, 칼 등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빌기 위한 도구라 하기에 무섭지 않은 걸까? 형형색색의 거대한 사천왕의 모습에서 두려움보다는 친근감 심지어 귀여움이 느껴졌다.

역시 공손히 합장 후 무탈과 안녕을 빌었다. 절 입구의 부도군을 지나고, 치악산 일대의 송림을 무단으로 벌채하는 것을 금하는 표식인 황장금표를 지나며 구룡사를 벗어났다.

 치악산 정기를 타고 구룡사가 자리하고 있다.
치악산 정기를 타고 구룡사가 자리하고 있다. ⓒ 한현숙

다음날 찾은 원주 '운곡 솔바람 숲길'도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공간이었다. 무성한 초록잎과 폭신한 황톳길, 완만하고 아름다운 숲 속 오솔길로 이루어진 힐링 숲이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은 솔향으로 신선하고, 맨발 걷기로 다져진 황톳길은 굽이굽이 잘도 휘어져 지루할 새 없이 전체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시간만 여유 있다면 몇 바퀴든 더 돌고 싶은 곳, 1시간 내내 공기 청정한 곳에서 호흡하니 머리도 가슴도 맑아져 마음이 온화해졌다.

고려말 조선초의 은사(隱士-벼슬하지 않고 숨어 사는 선비)로 청구영언에 실린 시조, 회고가로도 유명한 선비인 운곡 원천석. 조선이 세워졌을 당시 고려 왕 씨를 위하여 절개를 지킨 이로 유명한 포은(정몽주), 야은(길재)과 더불어 지조와 의리의 상징인 위인이었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 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 년(五百年)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하노라

시조를 읊조리며 운곡의 묘역과 영정을 모신 사당 창의사 주변을 둘러보았다. 치악산에 은거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던 선비의 올곧은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원주시가 '원주의 얼'을 대표하는,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인물로 운곡선생을 선정하여 이곳을 의미 있게 조성한 것이다.

태종의 여러 스승 중 어떤 불상사도 없이 생을 살다 간 유일한 인물이라 하니 운곡의 생을 지켜낸 것은 청빈과 무욕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운곡 원천석 선생의 동상과 사당인 창의사 입구. 주변으로 운곡솔바람숲길이 조성되어 있어 맨발걷기 최적의 황톳길을 걸을 수 있다.
운곡 원천석 선생의 동상과 사당인 창의사 입구. 주변으로 운곡솔바람숲길이 조성되어 있어 맨발걷기 최적의 황톳길을 걸을 수 있다. ⓒ 한현숙

점심을 먹고 들른 곳은 '원주한지테마파크'였다. 원주시를 내려다보기 좋은 언덕에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차는 물론 입장까지 무료라 부담이 없었다. 비까지 보슬거리니 관람하기 더 좋은 분위기가 되었다. 원주에 예부터 닥나무가 많이 났다니, 박물관 마당에 심어진 닥나무가 그저 신기하고 고비를 이겨낸 모습이 기특하기만 했다.

1층 로비에 닥종이 인형으로 우리나라 사계절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색감이 은은하고, 질감이 부드러운 듯, 닥종이 특유의 개성을 드러냈다. 닥종이 인형의 표정마다 웃음과 행복이 넘쳐나 푸근해 보였다. 둥글둥글한 곡선미와 포동한 살결이 정겨워 웃음 짓게 만들었다.
각 전시실을 돌며 한지의 유래와 역사, 종이의 발견과 전파과정, 한지 관련 유물까지 꼼꼼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한지를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시청할 수 있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대한민국한지대전 수상작품을 보니 그 우수성과 가치를 더 가늠할 수 있었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부드러우면서도 흡수성이 뛰어난 한지! 한지의 우수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1층에 있어 다양한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고 한지뜨기 체험공간도 이용할 수 있어 어린이와 함께 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원주한지테마파크 1층에 자리한 닥종이 인형의 모습, 정겨운 옛 모습이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긴다.
원주한지테마파크 1층에 자리한 닥종이 인형의 모습, 정겨운 옛 모습이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긴다. ⓒ 한현숙

1박 2일, 원주에서 머문 짧은 여행이었지만 머리를 식히며 힐링하기에 충분했다. 자연과 숲이 주는 대단한 치유의 힘을 얻었다. 점심을 먹고 들른 원주 카페에서도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 전통미를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많이 웃으며 심신의 안정을 취했다.

불현듯 심란한 마음이 다시 살아날 때도 있었다. 힘들어도 지난 3~4월엔 잘 버텨왔는데, 지난 금요일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진심이 전달되지 못할 때 또는 왜곡되거나 오해가 쌓일 때의 상처와는 다른 고통이었다. 있지도 않은 일로 직장에서 덤터기를 쓰는 일이 있었다. 내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나 버렸다.

어설프게 사과하고 인사하고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연휴 내내 나를 괴롭혔다. 교사로서 많이 흔들리고 마음이 어지러웠다. 점점 학교생활이 어려운 이유가 늘어나니 마음이 더 괴로워졌다.

근심이 쌓일 때 가라앉아 칩거하기 쉬운데, 힘을 내 일어나 특히 자연 속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기분이 정화되고 다시 살 만한 힘이 생겼다. 어두운 마음이 점점 희석되어 안정을 찾아가니 다행이다.

그래서 햇빛, 바람, 풀, 나무, 숲을 지키고 가꿔야 하리라. 먼 곳이 아니어도 좋다. 아름다운 계절, 자연이 주는 혜택을 놓치지 말자! 심란할 때 적극적으로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일이 참 중요하다. 지치고 힘들 때 특효약으로 자연의 품 속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감사한 발걸음이었다.

 한옥 카페의 예스러운 아름다움과 운치, 마음이 차분해진다.
한옥 카페의 예스러운 아름다움과 운치, 마음이 차분해진다. ⓒ 한현숙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원주#치악산#구룡사#운곡솔바람숲길#한지공예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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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국어 교사, 다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가족여행, 반려견, 학교 이야기 짓기를 좋아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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