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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은 세종보 천막농성 1년이 되는 날이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맞이해 기획 기사와 함께 러닝타임 53분의 미니다큐 영상도 제작했다. 이 기사가 마지막 회이다.
[미니다큐] ‘윤석열 환경부’에 맞선 세종보 천막농성 1년... 말 없는 강이 말을 했다 김병기
 오마이뉴스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박은영 집행위원장
오마이뉴스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박은영 집행위원장 ⓒ 김병기

말 못하는 강이 그에게 매일 말을 걸었다.

"강은 사람의 말을 하지 않죠. 그런데 강과 함께 흘러가는 바람, 새들, 갈대와 나무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저에겐 큰 위로를 줍니다. 세종보에 물을 채웠을 때 잠겼던 얘들인데요, 자기 모습을 잃지 않았거든요. 수문개방으로 물이 빠지자 다시 살아났어요. 이렇게 변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그 어떤 사람의 말과 위로보다 더 큰 힘이 됩니다."

세종보 천막농성장에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은 박은영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집행위원장(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이 전하는 지난 1년 싸움의 원동력은 자연이 주는 위로였다.

[365일 풍찬노숙]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

 세종보 앞 여울
세종보 앞 여울 ⓒ 김병기
 사계절을 지나 다시 봄을 맞는 세종보 천막농성장
사계절을 지나 다시 봄을 맞는 세종보 천막농성장 ⓒ 김병기

사계절을 지나 다시 봄이다. 지난해 4월 29일 박 위원장은 임도훈 보철거시민행동 상황실장과 함께 세종보가 재가동되면 수몰되는 하천부지에 천막을 쳤다. 당초 환경부가 세종보 재가동을 예고했던 5월이 되기 이틀 전, 한두리대교 교각 밑이다. 천막이 두 번이나 물에 떠내려가 다시 쳤고,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강변에서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도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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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위원장에게 붙은 별명은 '초췌 은영'. 허리를 부여잡고 어기적거리며 무거운 짐을 들고 가파른 둔치를 오르내렸고, 자주 병원 신세도 졌다. 농성 이전에 공청회 단상을 점거했다가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 갇히기도 했고, 고발을 당해 법정에 들락거리면서 녹색 천막을 지켜왔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을 파면하면서 그의 쿠데타를 '국민에 대한 배반'으로 규정했는데, 4대강사업 망령을 부활시키려던 윤석열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우리도 매번 집회 때마다 윤석열의 탄핵을 외쳐왔는데, 막상 헌재 판결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시작인 거죠."

그 순간, "문재인 정부 때의 지난한 과정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제1기 국가물관리위원회는 2021년 1월 18일 세종보 해체 등을 골자로 한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심의·의결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 임기 초인 2017년 6월에 시작된 모니터링 기간을 포함하면 무려 3년 6개월이 걸렸다. 환경단체들은 그 과정이 지지부진해서 문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도 냈다.

그런데 국가물관리위는 때늦은 결정을 하면서 보 해체 시기는 주민과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하라고 얼버무렸다. 완전히 매듭을 짓지 못한 미완의 결정. 결국, 4대강사업의 계승을 주장했던 윤석열 정부는 단, 15일 만에 전임 정부의 보 처리방안을 취소하고, 지난해 5월부터 세종보를 재가동하기 위해 30억 원을 들여 보수공사까지 마쳤다.

박 위원장은 "다음 정권은 윤석열보다는 나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 보아왔던 과정들이 있기에 안도할만한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세종보가 해체되고 후퇴했던 물정책이 제자리로 되돌아오려면 많은 투쟁의 시간이 필요하고, 더 잘 싸워야 한다"는 각오를 밝혔다.

[초췌은영] 물속에 처박히고, 수갑 차고... 참담했다

 2023년 공주보 수중농성 장면
2023년 공주보 수중농성 장면 ⓒ 김병기
 2023년, 공주보에 친 천막이 뜯기는 장면
2023년, 공주보에 친 천막이 뜯기는 장면 ⓒ 김병기

그가 '초췌은영'이 되기까지 여러 전사가 있다. 사실 세종보에 농성천막을 친 까닭은 악몽과 같았던 실패의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2023년 9월, 백제문화제를 앞두고 공주보 수문 담수를 막으려고 천막을 치고 저항하다가 매맞고 찢기고 물속에 뛰어들어 7시간 동안 수중농성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단다.

당시 보철거시민행동은 공주보 담수를 막으려고 천막을 쳤다. 하지만 100여명의 공주시 공무원들이 천막을 뜯어냈는데, 물러서지 않았다. 비닐 한 장 뒤집어 쓰고 비박투쟁을 했다. 이 상황에서 환경부는 수문을 닫고 물을 채웠다. 10여명의 환경운동가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수중농성을 벌였다. 가슴께까지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도 수문은 열리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저체온증으로 나와야했고, 수문은 완전히 닫혔다.

"국가 권력은 폭력적이고 잔인무도했습니다. 백제문화제 행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참석을 해서 더욱 그랬나 봅니다. 당시에는 당황스러웠는데, 나중에 많이 울었습니다. 다시 수문이 열리고 고마나루에 쌓인 펄을 아이들과 함께 걷으면서 너무 참담했어요. 세종보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겁니다."

그해 11월부터 세종보 재가동을 위한 보수공사가 시작됐다. 박 위원장은 11월 29일, 한화진 환경부장관이 보수공사 현장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2~3분 가량 차량을 막아서며 피켓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집시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천막농성 와중에 몇 차례 법원에 불려갔는데 1심에서 1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환경부는 우리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장관 면담도 요청했지만, 응해주질 않았어요. 그래서 세종보 현장에서 의견서를 전달하려고 한 것 뿐인데... 저흰 벌금을 낼 생각이 없습니다."

2023년 8월 25일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을 위한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공청회 때 단상을 점거했다가 6명의 여경에 둘러싸여 강제로 끌려나온 뒤 구속되기도 했던 박 위원장은 "폭력적인 공청회에 항의했던 사례들이 많았는데, 경찰이 강제 진압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면서 "수갑을 찬 채 구치소에 수감될 때 정말 참담했다"고 말했다.

[희노애락] 두 번 물속에 잠긴 천막 보면서 "마음이 꼬깃꼬깃 구겨졌다"

 세종보 천막농성장 앞쪽에서 알을 품는 흰목물떼새
세종보 천막농성장 앞쪽에서 알을 품는 흰목물떼새 ⓒ 김병기

인상 깊었던 장면도 많을 것 같았다. 그는 전투 장면보다 작은 생명을 떠올렸다. 세종보 농성천막을 치고 첫 기자회견을 열었던 작년 4월 30일, 바로 앞쪽 하중도에서 발견된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인 흰목물떼새였다. 또 농성천막 바로 위쪽 교각 기둥의 작은 구멍에 둥지를 튼 박새 가족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박 위원장은 "환경운동을 해왔지만, 흰목물떼새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장면을 직접 목도한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면서 "생명이 우리들 곁에 있고, 농성을 하면서 내가 그 생명을 지키고 있구나, 특히 생명이 잉태되고 성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가는 과정을 천막에서 함께하면서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또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 중에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박카스 한 박스를 건네주고 훌쩍 가버린 분들, 우리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인천과 대구 등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신 분들도 많았다"면서 "그런 분들이 1년 동안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일도 많았다. 박 위원장이 첫 번째로 꼽은 건 농성 천막이 두 번이나 떠내려갔을 때였다. 세종보 담수 때문이 아니라 장마와 폭우로 인해 겪은 일이었다.

"떠내려가는 천막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우리 천막이 세종보 가동으로 저렇게 되면 어쩌나였습니다. 우리가 싸움에서 질까봐... 마음이 꼬깃꼬깃하게 구겨져서 울었습니다. 갑자기 대청댐 방수량을 늘여서 흰목물떼새알이 떠내려갔을 때도 안타까웠죠. 이제 곧 태어날 아기들인데, 멸종위기종을 보호해야할 환경부가 아무런 생각 없이 수장시킨 겁니다."

외로운 때도 있었단다. "보철거시민행동 집행위원장으로서 능력이 되지 않는 내가 계속 버티면서 천막을 유지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섭기도 했고, 사실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심적 부담이 저를 더 괴롭혔다"는 박 위원장은 "하지만 제 곁에 임도훈 실장과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있었고, 천막을 지지방문하고, 멀리서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견뎌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이 즐거웠던 일 중 하나로 꼽은 것은 유튜브 생중계 '슬기로운 천막생활'(김병기의 환경새뜸 채널)이다. 그는 "사실, 힘들게 버텼지만 얼가니새(이경호 처장)와 나귀도훈(임도훈 실장)과 함께 시시덕거리며 우리 싸움의 결과들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경험이 가장 행복했다"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면서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들이 살아있는 순간이 생중계에 담겼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글쓰는 환경운동가] 한 평 남짓 천막농성장은 '글 감옥'

 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 박은영 처장이 농성일지를 쓰고 있다.
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 박은영 처장이 농성일지를 쓰고 있다. ⓒ 김병기

한 평 남짓한 천막농성장은 박 위원장에겐 '글감옥'이기도 했다. 보트 위에 앉아서, 텐트 안에서, 바람부는 날 간이의자에 앉아서, 많은 사람들이 행사를 하면서 웃고 즐길 때에도 그는 구석진 곳에서 쉴 새 없이 타이핑을 했다. 박 위원장은 120여편의 '천막농성 일지'를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렸다. 원고지로 치면 200자 원고지 400매에 달하는 분량이다(천막농성 일지 바로 가기).

박 위원장은 "싸움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환경운동이라고 조언을 해주신 분이 있어서 시작을 했는데, 제가 글쓰기는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썼고, 주로 이곳에 사는 생명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면서 "천막에 앉아만 있었던 날에는 쓸 것이 없어서 괴로웠지만, 우리의 기록이 누군가가 벌이는 미래의 싸움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글을 통해 연대의 마음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대전충남녹색연합의 사무처장으로서 전체 살림살이를 총괄하고 있는 그는 여러 환경 영역 중 기후운동 부문의 담당자이기도 하다. 소위 '4대강의 교두보'인 천막농성과 기후운동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박 위원장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리의 산과 강, 자연을 착취하는 사회구조가 결국은 기후위기를 불러왔는데, 우리의 천막농성도 이를 막으려는 활동과 일맥상통한다"면서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 등을 고발해서 개선시키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산과 강은 그대로 존재해야 하고, 이곳에 깃든 생명들도 마땅히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할 때 탄소흡수원을 늘이는 대안을 중시하는데, 지금 존재하는 강과 산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정부는 자연을 파괴하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데, 무분별한 하천준설이나 세종보 담수 등의 퇴행적인 물정책을 고집한다면 온실가스를 감축할 기반을 없애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슬기로운 천막생활] 현장에 답이 있었다

 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 진행된 유튜브 생중계 '슬기로운 천막생활'.
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 진행된 유튜브 생중계 '슬기로운 천막생활'. ⓒ 김병기

20년 차 환경운동가인 박 위원장에게 세종보 천막농성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운동을 하면서도 자신있게 '이곳이 나의 현장이다'라는 곳이 없었는데, 금강만은 반드시 지킨다는 생각을 갖게됐다"면서 "대전충남녹색연합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면서 보철거시민행동의 연대활동을 이어가고, 이런 힘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박 위원장은 "사무실에 앉아서 금강을 지켜야한다고 떠들기는 너무 쉬운 일"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을 지키려면 자기의 삶과 연결이 되어야 하고, 그게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다른 운동을 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내가 직접 이곳을 손으로 만져보면서 내 삶을 던져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에겐 아주 큰 행운이었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선배들의 말이 이제야 절실하게 와닿습니다."

박 위원장을 지금껏 버티게 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그는 "환경운동을 하면서 그만 두고 싶었던 때도 많았는데, 그 대답을 지금 내 앞에서 흐르고 있는 금강이 다해준 것 같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했다.

"우리 강은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더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세종보 천막 농성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물은 이용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강물을 좀 이용해서 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시각이나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될 시기라고 생각을 해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우리의 삶을 위해서도,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산이나 강이나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다, 마땅히 그 자리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는 생명들이다, 그리고 존중해야 되고 배려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삶과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이고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이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천막농성 1년 기획 기사]
1편 : "금모래빛 강변..." 이재명 후보의 이 말 기억한다 https://omn.kr/2dakk
2편 : 그의 소름 돋는 유언... "강은 멈추면 죽어요" https://omn.kr/2dbro
3편 : 낙동강 점령한 '조용한 살인자'... 정략이 과학을 죽였다 https://omn.kr/2ddpv
4편 : 365일 동안, 1만5천명이 '녹색 알' 품은 까닭 https://omn.kr/2ddqk
5편 : 죽이고 또 죽이는 끔찍한 현장... 그래도 승리합니다 https://omn.kr/2dfw2

#세종보#금강#박은영#보철거시민행동#4대강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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