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물과 햇빛, 바람처럼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공공재다.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이윤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때 그 피해는 사회 전체로 번진다. 전기와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곳에 제대로 공급되어야 할 자원이, 지금은 누가 돈을 더 낼 수 있느냐에 따라 배분되고 있다.
극단적인 날씨가 잦아지고 있다. 여름이면 기록적인 폭염이, 겨울이면 살인적인 한파가 반복된다. 그런데 이런 날씨가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위협받는 건 에너지 취약계층이다. 냉방도, 난방도 맘대로 틀 수 없는 사람들. 미납된 전기요금 때문에 단전 위기에 놓인 사람들. 에너지가 없어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이 상황은 에너지가 공공재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누구에게나 안정적으로 전기가 공급되어야 한다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곧 생존권이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조건이다. 그런데 지금의 전력 체계는 그런 공공성을 거의 담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는 필요한 곳에는 모자라고, 필요 없는 곳에는 넘쳐난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전기요금 걱정에 국가에서 설치해준 에어컨을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쪽방의 서민이 있는가 하면, 대형 백화점과 고급 상업시설에선 냉기가 새어 나올 정도로 에너지가 낭비된다. 누구는 살기 위해 아껴 쓰고, 누구는 남는 에너지로 이윤을 만든다.
여기에 더해, 데이터 센터와 AI 기술 경쟁에 쏟아붓는 전력 소비도 무시할 수 없다. 시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빅테크 기업의 전력 과소비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전기는 상품이 아니어야 하고, 전기를 만드는 노동자도 쓰다 버리는 물건 취급 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에너지 체계는 그런 공공성을 거의 담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를 어떻게 만들고, 누구의 손에 맡기며,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방향과 구조를 결정짓는 정치적 판단이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

▲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재생에너지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피켓시위. ⓒ 청소년 기후행동
2025년 12월, 석탄발전소 폐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내세우지만, 그 전환의 방식은 뻔하다. 노동은 배제되고, 공공성은 해체되며, 재생에너지마저 자본의 이윤 논리에 맡겨진다. 누구를 위한 전환인가. 이 물음에, 가장 앞에서 답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발전소 노동자들이다.
현재 석탄발전소에는 83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위험한 작업과 외주화된 업무를 도맡아온 이들이다. 이 중 2036년까지 폐쇄대상 발전소에 일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2천여 명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고작 몇 주 짜리 재취업 교육을 내밀고 이후 노동자들의 고용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민간 대기업들은 그 틈을 타 재생에너지 산업에 뛰어들었다. 한화, SK, 두산. 익숙한 이름들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규제를 풀어주고, 세금도 깎아준다.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이 쏟아지지만, 그들이 생산한 전기가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 고용은 얼마나 창출되는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 에너지 생산이 아니라 이윤 생산이 중심이 된 구조다. 대기업은 땅을 선점하고, 사업 인허가를 빠르게 따낸다. 정부는 시민이 아니라 자본의 손을 먼저 잡는다. 공공의 자원을 활용해 사적 이윤을 쌓는 이 구조가, 지금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민영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제물'이 되고 있다.
발전공기업들은 공공기관임에도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며 비정규직 구조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이제 석탄을 멈추는 상황에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현장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건 단순하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면, 그 일을 해왔던 노동자들이 계속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요구가 외면받는다. 이 구조 자체가 문제다.
그래서 싸움이 시작됐다. 발전노동자들은 석탄발전소 폐쇄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총고용 보장이다. 자신들의 생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에너지 전환이 공공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책임을 회피하지 않도록 묻는 싸움이다. 누구도 버려지지 않는 전환. 말로만 정의로운 전환이 아니라, 현실에서 쟁취하는 정의로운 전환이다.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과 자원이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다. 지금처럼 자본 중심의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평등을 더 키운다. 전기요금은 오르고, 일자리는 줄고, 접근성은 나빠진다. 기후위기를 해결한다며 벌이는 전환이, 사실은 위기를 재편하는 일로 끝날 수도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이 비어가지 않게 하려면, 그 말이 실제로 구현되는 장면이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이윤 중심이 아닌 공공 중심의 구조 재편이다.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발전노동자들의 요구는 바로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들의 싸움은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531 노동자 시민 대행진은 이 싸움을 드러내는 자리다. 충남 태안, 경남 창원. 폐쇄가 눈앞에 닥친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먼저 걸음을 뗐다. 총고용 보장, 공공재생에너지. 이 요구는 발전소 담장을 넘는다.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키는 싸움이다. 선언으로 정의로운 전환은 오지 않는다. 싸움으로 만들어진다. 지금, 그 싸움이 시작됐다. 우리는 그 길에 함께 서야 한다.

▲오는 31일 기후 위기 시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531정의로운전환-대행진'이 열린다. ⓒ 정의로운전환2025공동행동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플랫폼C 활동가이자 기후정의동맹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