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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고령화와 충분치 않은 노후대비는 노후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1955년생, 은퇴 후 전업 살림을 하는 남편으로서의 제 삶이 다른 퇴직자와 은퇴자들에게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은퇴 후 쪼들리는 살림에 늘어나는 축의금은 부담스럽다.
은퇴 후 쪼들리는 살림에 늘어나는 축의금은 부담스럽다. ⓒ 픽사베이

요즈음 경조사비용으로 고민할 때가 많다. 5월에 받아둔 결혼청첩만 해도 벌써 서너 건이다. 가정의 달로 모임도 많다. 모두 피할 수 없는 자리다.

재작년, 작은 아들이 결혼하면서 혼주로서 느낀 게 적지 않았다. 은퇴 이후 처음 맞는 경사인데 예상보다 많은 하객이 식장에 왔었다.

은퇴 이전에는 될수록 경조사를 챙기는 편이었지만, 이후에는 뜻하지 않게 병치레하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했다. 그래서 잊고 지낸 사람이 많았다. 자연히 아는 사람들과도 연락이 끊기고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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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예식에 내가 초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축의금을 보내와, 적잖이 당황 했었다. 감사한 마음에 식이 끝난 뒤 그분들에게 별도로 음료쿠폰을 보냈다.

누군가는 내게 덕담을 건넸다. "당신이 평소 경조사에 많이 찾아가니 하객들도 많이 온 것 같다"고.

쪼들리는 살림에도... 장례식은 되도록 간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게도 몇 가지 원칙은 있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결혼식엔 참석하지 않고 축의금만 보내고 있다. 사이가 애매하다면, 오히려 가지 않는 게 혼주를 돕는 것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반면 장례식은 결혼식에 비해 드물지만, 가능하면 빠지지 않고 거의 참석하는 편이다. 기본 부의금은 10만 원이다. 고인과 친밀하면 액수를 더 준비한다.

 내게도 몇 가지 원칙은 있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결혼식엔 참석하지 않고 축의금만 보내고 있다. 장례식은 드물지만 가능하면 꼭 빠지지 않고 거의 참석하는 편이다.
내게도 몇 가지 원칙은 있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결혼식엔 참석하지 않고 축의금만 보내고 있다. 장례식은 드물지만 가능하면 꼭 빠지지 않고 거의 참석하는 편이다. ⓒ nate_dumlao on Unsplash

과거 은퇴할 무렵에는 축의금 5만 원이면 그런대로 무난했다. 하지만 지금은 10만 원을 내도 눈치를 봐야한다. 그만큼 물가가 대폭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신한은행이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 평균 축의금은 11만 원으로 나타났다. 예식장에 가지 않고 축의금만 보내는 경우는 평균 8만 원이었다고 한다.

내 경우 경조사는 한 달 적으면 1건, 많을 때 5건도 있다. 한 달 평균이 2~3건이다. 한 달 평균 경조사비는 최소 20만~30만 원이다.

문제는 경조사비를 여기서 더 줄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타 쓰는 용돈이 20만 원 정도인데, 따로는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이게 고스란히 경조사비로 나가는 일이 4~5월 다반사이다. 물론 용돈으로 교통비와 간단한 식사비 등으로 지출하지만, 나가는 경조사비가 내 용돈을 늘 상회한다는 뜻이다.

'기브 앤 테이크'가 전부는 아니니까

나는 은퇴 즈음 모든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기고 용돈도 타 쓰고 있는 입장이다. 해서 작든 크든 경조사비는 아내와 상의하고 있다. 아내는 내게 용돈을 대체 어떻게 쓰고 있는 거냐고 핀잔을 준다.

"자기 살림 처지도 모르고 기마이('선심 쓴다'는 일본어) 쓴다"는 얘기다. 즉 상대가 품앗이하지 않았는데 왜 굳이 인사하느냐는 것이다. 축의금 대장을 보고, 받은 만큼만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기브 앤 테이크' 식이다.

물론 일리는 있는 말이다. 사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긴 하다. 그러나 친소관계를 떠나,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생긴다. 때로는 일부러 찾아 돕는 조그만 정성도 필요하다고 본다.

5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동네에서 서로의 아버지끼리 가까워 알던 분이 있었는데, 그분의 장모가 돌아가셨다. 나는 뒤늦게야 이 소식을 접하고 아버지 명의로 그에게 부의금을 전했다.

오며가며 얼굴 아는 처지라 자식으로서 뜻을 조금 전한 것뿐인데, 그는 "동네 사람 중 부조한 사람은 아버지뿐이다"라며 크게 감동했다. 이게 더불어 사는 정 아닐까. 가급적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일부러 찾아 돕는 조그만 정성도 필요하다. 동네 지인의 장모 부고, 오며가며 얼굴 아는 처지라 자식으로서 부의금을 전했는데, 그는 "동네 사람 중 부조한 사람은 아버지뿐이다"라며 크게 감동했다.(자료사진)
때로는 일부러 찾아 돕는 조그만 정성도 필요하다. 동네 지인의 장모 부고, 오며가며 얼굴 아는 처지라 자식으로서 부의금을 전했는데, 그는 "동네 사람 중 부조한 사람은 아버지뿐이다"라며 크게 감동했다.(자료사진) ⓒ zyljosa on Unsplash

은퇴 이후 과거 직장시절 사람들은 대부분 관계를 정리했지만, 나는 여전히 고등학교 동창과 몇몇 친구들은 여전히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은퇴 후 수입은 거의 없고 100만 원도 안 되는 연금으로 쪼들리며 사는 처지라서 경조사 비용은 부담스럽다. 이에 친구들은 내게 무조건 경조사와 거리를 두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한 대학동창은 "부모를 여의고 자식들 모두 혼인시킨 후 이를 계기로 대부분 관계를 정리했다. 이제 더 이상 경조사비를 주고받을 일도 없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시원하게야 들리지만, 그러나 이런 뜻대로만 할 수 없는 것이 경조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살면서 지금껏 받은 부조금은 대부분이 빚이나 다름없다. 우리 상부상조문화에서 그걸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5월엔 개인 용돈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마음의 빚을 지는 것만큼 초라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자료사진).
5월엔 개인 용돈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마음의 빚을 지는 것만큼 초라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자료사진). ⓒ krakenimages on Unsplash

그래서 5월 현재, 팍팍한 살림에 밀린 청첩장을 받고 묘안을 궁리 중이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지금으로선 내 개인적으로 쓰는 비용과 용돈을 줄일 수밖에. 의례를 중시하는 형식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살다 보면 부득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살면서 남에게 미안하고 빚진 느낌에 무거워지는 그것, 마음의 빚을 지는 것만큼 초라한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축의금#청첩장#은살남#경조사비#부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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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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