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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2 11:01최종 업데이트 25.05.12 11:01

부담스러운 가정의 달, 이것만 전해도 충분해요

한국의 어버이날과 미국의 마더스데이를 다 경험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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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전 국민이 가장 바쁜 달을 꼽자면 5월이 아닐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누군가를 챙기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달이다. 그리고 '가정의 달'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가족을 돌아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해마다 5월이 되면 한국의 5월 풍경이 떠오른다. 문방구 앞에 가득한 카네이션, 어떤 편지지를 고를까 고민하던 손, 어버이날 아침마다 들뜨면서도 조금은 어색했던 '감사합니다'라는 말까지.

여기 미국에도 이와 닮은 날이 있다. 바로 마더스데이(Mother's Day).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마더스데이로 정하고 있는데, 한국보다 13시간 느린 이곳은 바로 11일이 마더스데이다. 이 날은 온 나라가 '엄마'를 중심으로 하루를 보낸다. 한국처럼 어버이 '둘'을 챙기기보다는, 오로지 엄마를 위한 날이다(Father's Day는 따로 있으며, 매년 6월 셋째 주 일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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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데이는 처음에는 어머니의 헌신을 기리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거나 엄마에게 작은 선물이나 꽃다발을 전하는 날로 자리 잡았다. 한국처럼 정형화된 '의무감'보다는, 엄마의 존재 자체를 따뜻하게 축하하는 분위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날 브런치를 즐기거나 외식을 하고, 아이들은 직접 카드를 만든다. 꽃집에는 하루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고, 카네이션보다는 장미나 튤립, 백합처럼 화려한 꽃다발이 인기다. 요즘은 기프트 카드, 향초 세트, 홈 베이킹 키트 같은 실용적인 선물도 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을 담는 방식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전하는 하루면 충분하다.

미국에서 처음 마더스데이를 경험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내게 "Happy Mother's Day!"라고 인사를 건넨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자신의 부모에게만 감사를 전하고, 나 또한 부모라 하더라도 나보다 연로한 분들께 공경을 표하는 분위기인데, 이곳은 다르다. 결혼한 여성이라면 자녀가 없더라도 축하를 받는다. 마트의 캐셔가, 옆집 할머니가, 아이 친구의 엄마가 다정하게 축하 인사를 건네올 때면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이상하게 따뜻해진다.

올해 마더스데이는 우리 집 뒷마당에서 조용히 보냈다. 딸들이 직접 햄버거 패티를 빚고, 남편은 그릴을 꺼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굽는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무슨 큰 파티나 선물이 아니어도 좋았다. 적당한 햇볕에 바람이 솔솔 불었고, 외로운 이국 땅에서 우리가 함께 였기에 그걸로 충분했다.

바베큐를 마치고, 저녁이 깊어질 무렵엔 노을 아래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날의 온도와 색감, 냄새와 소리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된 하루였다.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햄버거 패티, 그리고 버터 바른 옥수수까지.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햄버거 패티, 그리고 버터 바른 옥수수까지. ⓒ 오영주
 완성된 수제 버거
완성된 수제 버거 ⓒ 오영주
지금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곳에서 나도 '엄마'로 살아가며 부모님의 마음을 하루하루 배워가고 있다. 어릴 적엔 당연했던 사랑이 지금은 얼마나 섬세하고 고된 감정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런 날엔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그때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고.

그날 저녁,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걸었다. "여긴 오늘 마더스데이야"라고 말하자, 엄마는 웃으며 "그럼 나도 축하받아야겠네?" 하셨다. 짧은 통화였지만,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멀리 살고 있으면 표현이 쉽지 않다. 시차를 핑계로 전화 한 통, 메시지 하나도 미루게 되는데 그래도 이렇게 하루 쯤은 '고맙다'는 말을 꺼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예전에는 마더스데이나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뭘 해야 하지,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부터 했다. 하지만 지금은 꼭 선물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안다. 누군가는 카네이션을, 누군가는 장미를. 누군가는 정성껏 쓴 편지를, 또 누군가는 삐뚤빼뚤한 카드 한 장을 건넨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결국은 같은 마음이다. 그저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하루,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과 미국, 사는 곳은 다르지만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는 마음은 같다. 감사할 줄 아는 하루가 있다는 것, 누군가를 떠올리고 챙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5월은 의미 있는 달이다.

#5월#가정의달#MOTHE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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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주 (ohyj81) 내방

북미에 거주하며 일상의 단면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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