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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하고 중차대한 사안이다. 기후 위기와 금융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돈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가에 따라 위기를 증폭시킬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기후 위기 시대, 금융이 수행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기후변화대응지수(CCPI)라는 기준이 있다. 기후행동네트워크(CAN) 등 3개 국제환경단체가 국가별로 ① 온실가스 배출량(40%) ② 신재생에너지 비율(20%) ③ 에너지 사용량(20%) ④ 기후 정책(20%)의 네 가지 항목을 평가해 매년 발표하는 지수(index)다.

한국은 어디쯤 있을까. 2025년 점수는 26.42점으로, 조사 대상 국가 67개 중 63위를 기록했다. 항목별 순위를 살펴보면, ① 온실가스 배출량(13.26점)은 59위 ② 신재생에너지 비율(3.67점)은 50위 ③ 에너지 사용량(4.75점)은 64위 ④ 기후 정책(4.75점)은 57위다.

우리나라보다 점수가 낮은 곳은 러시아(64위), 아랍에미리트(65위), 사우디아라비아(66위), 이란(67위) 네 나라다. 모두 산유국이다. 사실상 꼴찌라는 뜻이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아래 그림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후변화대응지수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한국 기후변화대응지수 추이 (2016∼2025)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www.ccpi.org)
한국 기후변화대응지수 추이 (2016∼2025)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www.ccpi.org) ⓒ 문진수

왼쪽이 점수, 오른쪽이 백분율이다. 합산 점수는 2017년 이후 30점을 넘지 못 하고 있고, 백분율은 2021년을 제외하면 하위 10%에 묶여있음을 알 수 있다. 온실가스에 갇혀버린 지구처럼,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기후변화대응지수 항목별 추이 (2019∼2025) 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www.ccpi.org) : 2018년까지는 총점만 공개하다가 2019년부터 항목별 점수도 공개
한국 기후변화대응지수 항목별 추이 (2019∼2025)Climate Change Performance Index (www.ccpi.org) : 2018년까지는 총점만 공개하다가 2019년부터 항목별 점수도 공개 ⓒ 문진수

이 그림은 네 가지 항목의 점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빨강)은 확실히 좋아지고 있고, 에너지 사용량(노랑)은 답보 상태다. 신재생에너지(연두)와 기후 정책(파랑)은 우하향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면 신재생에너지 사용량이 늘어야 하는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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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은 엇갈린다. 정부는 원자력 발전량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환경단체는 경기둔화로 전기 사용량이 줄어든 탓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쪽 주장이 맞든,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한다고 신재생에너지 사용률이 증가(+)하는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네 항목 중 가장 안 좋은 흐름은 기후 정책(파랑)이다. 14.12점(2019년)이었던 점수가 4.75점(2025년)까지 추락했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방향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2023년부터 흐름이 좋아지다가 2024년을 지나면서 다시 나빠지는 형세다.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정부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해마다 기후행동네트워크(CAN)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서 기후변화협약을 방해한 훼방꾼을 뽑아 수상한다. 기후 환경 영역에서 가장 불명예스러운 상으로 평가받는 '오늘의 화석상(fossil of the day)'이다. 작년(24.11.18)에 열린 29차 총회에서 대한민국이 1위에 등극했다.

선정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깔려있지만, 화석 연료 수출이 으뜸일 것이다. 한국은 국제 화석 연료 개발에 캐나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는 국가다.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가 그 주역이다. 대한민국의 '공적수출신용기관(ECA)'이 지구를 망가뜨리는 일에 후견인 역할을 하는 꼴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탄소배출량 추이 (2016∼2022년) 2024년 한국수출입은행 ESG 경영소개서 : 2023년 탄소배출량 산출 내용이 누락됨
한국수출입은행 탄소배출량 추이 (2016∼2022년)2024년 한국수출입은행 ESG 경영소개서 : 2023년 탄소배출량 산출 내용이 누락됨 ⓒ 한국수출입은행

이 그림은 한국수출입은행의 탄소배출량 추이를 표시한 것이다. 분명 2024년도 보고서인데, 2023년도 실적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범주(1)과 범주(2)만 표시되어 있고 범주(3)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범주(3)은 가장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영역이다. 특히 금융은 다른 산업에 비해 범주(3)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탄소배출량 공시가 의무는 아니지만, 수출입은행은 온실가스 규약(GHG Protocol)에 맞춰 투명하게 자료를 공개해야 할 공적 금융기관이다. 그런데 자산(여신) 규모가 100조 원이 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외정책금융기관이 작성한 보고서라고 믿기 힘들 만큼 내용이 허술하다.

금융배출량도 늘고 있다. '적극적인 ESG금융 공급으로 환경·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우리나라의 탄소중립·녹색성장 목표 달성에 기여하겠다(2024 ESG경영 소개서)'라는 수사(修辭)가 무색해진다. 배출량이 줄기는커녕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5년 후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수출입은행은 202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잘못된 정보 제공으로 허위 공시 지적까지 받았다. RE100과 ESG가 시대정신으로 회자하면서 모든 기업·기관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엉터리로 작성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ESG 공시 의무화를 뒤로 미루고 있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을 집필한 생태경제학자 김병권은 "기후변화 대응 실패의 1순위는 기업 권력의 저항이며, 이들의 자율 규제를 믿고 가자는 주장은 순진한 발상을 넘어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개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언제쯤 기후 악당 국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가 앞장서기는커녕 역주행하는 현실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한 사실은 이 퇴행의 배후에 금융을 포함한 시장 권력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녹색금융의 성패(成敗)는 선언이 아니라 제도에 달려 있다고.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기후위기#탄소배출량#기후변화대응지수#기후행동네트워크#한국수출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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